2020517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용서 받은 죄인 The Sinner Forgiven

마가복음 Mark 6:14-29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하고

King Herod heard of it, for Jesus’ name had become known. Some said, “Joh the Baptist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thses miraculous powers are at work in him.”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하되

But others said, “He is Elijah.” And others said, “He is a prophet, like one of the prophets of old.”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하더라.

But when Herod heard of it, he said, “John, whom I beheaved, has been raised.”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For it was Herod who had sent and seized John and bound him in prison for the sake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because he had married her.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하였음이라.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 Philip’s wife.”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And Herod had a grudge against him and wanted to put him to death. But she could not.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For Herod feard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kept him safe. When he heard him, he was greatly perplexed, and yet he heard him gladly.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But an opportunity came when Herod on his birthday gave a banquet for his nobles and military commanders and the men of Galilee.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하고

For when Herodia’s daughter came in and danced, she pleased Herod and his guests. And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me for whatever you wish, and I wil give it to you.”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하거늘

And he vowed to her, “Whatever you ask me, I will give you, up to half of my kingdom!”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라하니

And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For what should I ask?” And she said, “The head o John the Baptist.”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하니

And she came in immediately with haste to the king and asked, saying, “I want yo to give me at onc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er.”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And the king was exceedingly sorry,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guests he did not want to break his word to her.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And immediately the king sent an executioner with orders to bring John’s head. He went and beheaded him in the prison.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And brought his head on a platter and gave it to the girl, and the girl gave it to her mother.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When is disciples heard of it, they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오늘 말씀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모든 죄는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죄가 용서받으면 그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 죄의 값을 더 이상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가 그냥 남아 있다면, 즉 죄가 용서 받지 못한다면, 그는 다른 죄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그 속도도 빠르지만, 그 범위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그 죄의 파장의 폭은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exponential increase) 합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exponentially) 죄가 증가합니다. 손을 쓸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헤로디아(Herodia)의 죄입니다. 그녀의 살인행위입니다. 그녀는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자기의 딸이 헤롯의 잔치 자리에서 춤을 추어, 헤롯이 보상을 약속했을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한 그 약속의 빌미를 잡아, 딸에게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상급으로 달라는 요구를 헤롯에게 하게 한 것입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그것까지는 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헤롯의 죄를 생각합니다. 그는 헤로디아와 결혼한 죄가 있습니다. 그 죄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 용서받지 못한 죄는 급기야 세례요한을 감옥에 가두는 또 다른 죄를 짓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셔서 그에게 목숨을 걸고 의로운 말을 해 준 그 예언자를 감옥에 가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또다시 정면으로 거역한 죄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죄를 또 생각합니다. 그녀가 헤롯과 결혼한 데는 헤롯의 뜻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자의 뜻도 컸습니다. 본문을 행간까지 읽으면,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의로운 말로 도전했을 때,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일 생각까지 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거기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세례한의 말이 마음에 아팠지만, 그래도 즐겁게 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부분적으로는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회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헤로디아였습니다.

이 일에 헤롯은 방관자(bystander)였습니다. 비판을 달갑게 들었으나, 아직도 그를 감옥에 두었다. 그는 생각했겠지요. 헤로디아는 이 남자를 죽이려고 한다. 내가 그를 가두어 둠으로써 그를 지킨다. 사실 오늘 본문에 그렇게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For Herod feared John, knowing that he was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he kept him safe.

마가복음 Mark 6:20a

 

보십시오.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1. 알고, 2. 두려워하며, 3. 보호했습니다. 이것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의 열매를 맺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죄를 회개하지 못한 자가, 아직 그 죄 가운데 있으면서, 의로움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를 품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것으로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고, 그분의 사죄의 은총을 받기 전에는!

 

헤롯은 끝내 한 여자의 악한 계획 아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여자입니다.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빌라도도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무리의 외침과 위협! 무리에게 손들고 마는 그 정도 가지고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헤롯이 세례요한을 보호했다면 누구로부터 어떻게 보호했다는 말입니까? 헤로디아입니다.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을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을 들었겠지만, 그때마다 거절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대신 세례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겠지요.

 

헤로디아! 나도 그에게 대하여 분노해!

보라구. 나는 그래도 그를 감옥에 가두었어!

 

이건 불의한 자가 그가 실제로 소속한 불의에 대하여 스스로 정당화 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당시의 남자였고 그는 당대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간악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그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십시오. 믿음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바람에 밀려가는 안개, 광풍 앞에 먼지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These are waterless springs and mists driven by a storm. For them the gloom of utter darkness has been reserved.

베드로후서 2 Peter 2:17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The wicked are not so, but are like chaff that the wind drives away.

시편 Psalm 1:4

 

그러면서 그는 그것이 세례요한을 보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불의한 자가 그가 소속하지 못한 정의에 대하여 스스로 정당화 하는 방법이지요.

 

이 일은 구약성경에서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Reuben)의 행위를 연상시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루우벤은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한 사람입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는 벌을 내림으로써 그를 죽이려고 했던 다른 형제들에게 배반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몰래 구덩이에서 빼내어 아버지께로 돌리려는 다른 계획도 있었습니다.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And Reuben said to them, “Shed no blood. Throw him into this pit here in the wilderness, but do not lay a hand on him.” That he might rescue him out of their hand to restore him to his father.

창세기 Genesis 37:22

 

그러나 그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런 악한 계획은 연속하여 성취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에 유다가 주도하여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When Reuben returned to the pit and saw that Joseph was not in the pit. He tore his clothes. And returne to his brothers and said, “The boy is gone. And I, where shall I go!”

창세기 Genesis 37:29-30

 

이런 르우벤은 끝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헤롯도 그런 생각일지 모릅니다. 헤로디아 몰래 결국 세례요한을 살려내 보내려는!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르우벤 때처럼, 이번에도 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실시한 투옥이 헤로디아의 살인행위에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 또한 악한 자로서, 그의 악한 계획은 연속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헤롯은 결국 헤로디아의 공범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헤롯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죽인 세례요한에 대하여 깊은 영적 심리적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은 모두 옳은 말이거든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그는 곧 그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정신적 착란(mental confusion)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자기가 죽였지만 그는 정말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이런 경우 누가 이겼습니까? 죽인 사람? 혹은 죽은 사람?

 

루마니아(Romania)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25> (The 25th Hour, 1949)를 썼지요. 그가 쓴 다른 소설이 <키랄레싸의 학살> (The Death of Kyralessa, 1966)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정의로운 사람 보고밀을 죽였는데,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손에 피를 묻힌 자의 착란현상(confusion)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하여 다른 종류의 착란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엘리야”(Elijah)라고 했습니다. 죽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난 엘리야가 돌아왔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착란(confusion)은 그래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말라기서(Malachi)에 바로 그 엘리야가 돌아온다는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엘리야라는 것은 착란에 불과합니다. 성경 어디서도 메시야께서 엘리야와 동일인물로 묘사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라기가 선포한 그 엘리야는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여 오는 것이지, 메시야 자체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언자”(prophet)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 중 하나가 지금 내려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헤롯과 비슷한 것이, 엘리야를 제외한 모든 예언자들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그런 생각도 놀랍기는 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뜻에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죽은 예언자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이 새로운 일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어떤 때가 지금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죽었다가 살아난 분이 아닙니다. 더구나 엘리야가 내려온 것도 아니고, 과거 예언자 한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메시지는 아무래도 헤롯과 그의 정신병적인 착란”(mental confusion) 내지 영적인 혼돈상태”(spiritual chaos)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헤로디아를 집중 조명하겠습니다. 분명히 그 여자는 헤롯의 동생 빌립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남편을 버리고 시아주머니에게 시집 갔습니다. 헤롯이 추진했을 수도 있지만 이 여자가 더 열심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결혼을 반대한 세례요한에 대한 분노가 헤롯보다 헤로디아가 훨씬 더 컸다는 점이 이런 가능성에 더 많은 점수를 줍니다.

 

헤로디아의 죄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 죄가 다른 죄를 불렀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헤롯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주도면밀하게 헤로디아는 딸에게 축하연 자리에서 춤을 추게 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그 여자의 어머니로부터 사주를 받았다는 추측은 본문 안에 근거가 있습니다. 헤롯이 상급을 약속했을 때 그 소녀가 곧바로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달려갔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그 여자의 각본에 이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제거해야 한다는 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헤로디아가 불법 결혼이라는 죄를 짓고,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살아오는 동안 또 다른 죄악을 기획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습니다. 이런 기회를 노리는 자에게는 마침내 때가 오고 마는 것입니다.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But an opportunity came!

마가복음 Mark 6:21a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헤로디아를 조명하면서 서술한 그녀의 마음입니다. “좋은 날!” 악한 일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에게 다가온 그 좋은 날이란 어떤 날이었겠습니까?

 

자기 딸에게 헤롯의 잔치 자리에서 춤을 추게 하고, 그 아이가 돌아와 내가 무엇을 요구할까요?” 물을 때,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달라고 하라!” 지시를 내리는 이 여자!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악독함은 어디에서 났습니까?

 

이런 어마어마한 죄 뒤에는 다른 죄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초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숨겨진 죄가 더 있었다는 말입니다.

 

헤롯과 헤로디아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죄를 용서 받으라. 용서 받지 못한 죄는 죄를 더한다.

죄를 멈추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더한다.

 

죄로 자기 영혼이 죽은 사람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윗의 죄를 기억합니다. 그는 남의 아내 밧세바(Bathsheba)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서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그 용서받지 못한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았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 우리야(Uriah)를 살인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봅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던 용사 우리야를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이미 국가적으로 위기를 초래하는 사건입니다. 우리야는 하나의 병사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고급장교였습니다.

 

헷 사람 우리아라.

Uriah the Hittite.

사무엘하 2 Samuel 23:39a

 

그를 전쟁 중에 집으로 불러들이고, 그에게 술을 먹인 다음, 그의 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부부관계를 하게하고, 그로써 아내가 임신한 것을 감쪽같이 우리야의 아이라고 속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1. 전쟁터에서 고급장교를 빼내는 죄. 2. 그리고 자기 아이를 남의 아이로 은폐하려는 죄.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다윗과 달리 우리야는 그렇게 거짓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들이 전장에서 피 흘리고 싸우는데 자기가 집에서 편히 잠자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거짓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정적인 죄악을 두 가지나 연속으로 기획했습니다. 그것은 1. 그를 죽여 없애는 것이며, 2. 그리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의 여자로 들이는 것입니다.

 

그 실행을 위하여 그는 1. 거짓 편지를 썼고, 2. 그 편지를 우리야의 손에 들려 요압 장군에게 전달하게 했으며, 3. 요압에게 명령하여 우리야를 전쟁터 깊은 곳에 보내고 이스라엘 군대를 뒤로 빠지게 하였으며, 4. 결과적으로 적군의 손에 우리야를 죽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5. 그는 군대장관 요압과 공모하는 죄를 더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던 요압이 살인죄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살인죄를 더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더 많은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그에게 말씀해 주시기까지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막아서셔서 그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비로소 그는 거기서 죄악을 멈추었습니다.

 

다윗은 성령님의 은혜로써 그의 죄를 멈추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의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한복음 17:3). 이에 따르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헤롯이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헤로디아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의 환생정도로 알았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사하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로 알았더라면, 그는 예수님 앞에 섰을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어떤 백부장처럼 그는 그의 입으로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는 세례요한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꾀임에 빠져 자기가 두려워하던 일을 결국 저지르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결국 이 헤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나섰습니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냈고, 헤롯은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헤롯은 빌라도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은 그 같은 죄인들고 동류가 되는 법입니다.

 

생각합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상태입니까? 당신의 용서 받지 못한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계속 죄를 저지르며, 죄의 중독 상태에서 고통 받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상처내던 무덤 사이에 거주하던 사람처럼, 자기를 상처 낼 뿐 아니라, 괴성을 지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나크의 에세이입니다. 우리가 보는 죄를 용서 받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은, 본인들은 견디기 어려운 삶이겠습니다.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러나 보십시오. 그것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오늘 당신은 죄에서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 숨긴 죄악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는 콜롬비아, 중국, 러시아에서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적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떤 설교자가 회개하라!”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여자가 뛰어나오면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제 죄를 용서하옵소서.

제가 등에 업은 이 아이는 제 남편의 아이가 아닙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경악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의 뒷일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미래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저의 마음에 찾아온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그 여자도 그렇게 주님 앞에 죄를 용서받은 이후, 그녀의 삶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죄를 숨기고 있는 중에는 그 다른 남자가 계속 협박을 해도 견딜 수 없어 죄를 짓고 또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벗어난 이후, 그녀는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죄 사함 받은 이후의 삶! 이것은 기대되는 삶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엎드려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Have mercy on me, O God, according to your steadfast love. According to your abundant mercy blot out my transgressions.

시편 Psalm 51:1-2

 

다윗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간구드립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시편 Psalm 51:10

 

그는 구원이 새 창조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창조해 주시지 않고는 어떤 구원도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시편 Psalm 51:11

 

성령님께서 떠난 사람은 그 자체가 죽은 사람인 것, 그는 사울의 경우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즐거움이 얼마나 큽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회복시켜주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uphold me with a willing spirit.

시편 Psalm 51:12

 

그는 죄 사함 받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은 죄에서 자유함 받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중에, 어린 양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로 드려져서 자기의 죄악이 씻음 받은 기쁨을 누립니다. 그는 기뻐 뛰면서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세상에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도 사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다윗의 고백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the one whose transgression is forgiven, whose sin is covered.

시편 Psalm 32:1

 

죄가 그대로 있을 때 어땠습니까?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For day and night your hand was heavy upon me; my strength was dried up as the heat of summer.

시편 Psalm 32:4

 

이랬던 그가 이제 해방된 것입니다.

 

사람은 죄가 그대로 있을 때는 삶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고 슬픔뿐입니다. 바닷물을 마신 사람이 다시 바닷물을 마시듯이, 그의 죄악 사슬은 움직일수록 계속 조여오기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 보십시오. 그는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Deliver me from bloodguiltiness, O God. O God of my salvation. And my tongue will sing aloud of your righteousness.

시편 Psalm 51:14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그 죄를 벗어나서 예배인간이 된 것입니다.

 

새가 그물을 벗어나 창공을 날아오르듯이, 물고기가 낚시군의 손에서 빠져나와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듯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n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passed away. Behold the new has come!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5:17

 

오늘이 그 날입니다. 우리의 죄를 주님께 고백 드리는 날입니다. 다윗처럼 주님 앞에 물 쏟듯이 그 마음을 쏟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시편 Psalm 51:17

 

오늘 이 시간 그 죄악을 주님께 고백해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죄악에서 사함 받으십시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She said, “No one, Lord.” And Jesus said, “Neither do I condemn you. Go, and from no on sin no more!”

요한복음 John 8:11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An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마가복음 Mark 2:5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지나간 날들의 죄를 오늘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오늘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who lives in me.

갈라디아서 Galatians 2:20

 

죄 사함 받은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억하십시오. 헤롯의 이야기, 헤로디아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다윗에게서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간음의 현장에서 잡혔던 여자, 그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선포하셨던 예수님의 이야기, 거기서 당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중풍병자였던 당신을 죄 사하시고, 그 상을 들고 걸어가게 하신 예수님, 그분의 음성을 듣는 당신을 오늘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For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has set you free in Christ Jesus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로마서 Romans 8:1-2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죄악 중에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허락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을 입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은혜와 사랑으로써 오늘도 참 목자가 되어 양들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