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0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예수님과 바디매오 Jesus and Bartimaeus

마가복음 Mark 10:46-52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And they came to Jericho. And as he was leaving Jericho with his disciples and a great crowd, Bartimaeus, a blind begger, the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And man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And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And they called the blind man, saying to him, “Take heart! Get up! He is calling you!”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And throwing off his cloak, he sprang up and came to Jesus.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And Jesus said to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nd the blind man said to him, “Rabbi, let me recover my sight!”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And Jesus said to him,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saved.”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on the way.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맹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 이름도 나옵니다. 그 말은, 그가 특별히 기억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마가복음 전체에서 치유사역은 오늘 이 사람의 경우가 마지막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디매오(Bartimaeus)입니다. 디메오의 아들(son of Timaeus).

 

이 사람은 맹인이며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길을 따라 행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면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출발한 예수님의 가버나움-예루살렘 행진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에서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사람들과 그 사건들을 한 줄로 늘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세 번째 십자가-부활을 정점으로 둘로 꺾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래 도표는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길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평가

-

-

-

-

+

 

시작

도전-이혼

제자들이 물리침

재물

십자가

무리교육

무리

 

 

 

 

시험

 

바리새인

천국영접 1

 

어린이

걸림돌

 

부자

십자가-부활

 

세 번째 예고

대속물

야고보 요한

따르기

바디매오

 

천국영접 2

무리

 

성전개혁

성전

 

제자양육

열두 제자

 

 

 

 

 

마침

성전개혁

영접-호산나

명예

부활

평가

+

+

+

+

+

 

 

오늘 이 구조에서 보면 바디매오 사건은 이런 의미입니다. 1. 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무명의 청년 관리 부자는 예수님께 영생구했으나 슬프게 떠났습니다.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향하여 잠잠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환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길에서!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행진을 십자가의 길이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이라고 할 때, 어떤 청년 관리 부자와 바디매오는 대단히 서로 상충되는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스스로 예수님께 나왔다가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후자는 사람들의 소개로 예수님을 알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 나갔습니다. 고침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을 뵐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중에 인생이 하나님 뵐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로써, 우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자리에 오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But the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 Father is seeking such people to worship him.

요한복음 John 4:23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중 하나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주님의 복된 말씀입니다. 그를 찾아가 주셔서 그에게 예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으셔서 사마리아를 일부러 통과하시면서 그 여자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디매오를 만나 주신 주님께서, 예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디매오가 어떻게 예배를 드렸습니까?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나아옴으로써 참된 예배인간이 되었습니다. 참된 예배인간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And they came to Jericho. And as he was leaving Jericho with his disciples and a great crowd, Bartimaeus, a blind begger, the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17마일 동북쪽에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사해바다(Dead Sea)로부터는 10마일 북쪽입니다.

 

여리고는 해수면(sea level)보다 낮습니다. -764 피트입니다. -233m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입니다(dateandtime.info, 17 Sept 2020).

 

예루살렘은 해발 2,578 피트, 786m입니다(dateandtime.info, 17 Sept 2020.

 

학자들은 여리고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도시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주전 8천년 경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여호수아가 이끈 이스라엘 앞에 무너진 성읍이라는 것도 성경에서 증거 하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의 저주에 따라, 그 성읍은 다시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하였더라.

Joshua laid an oath on them at that time, saying, “Cursed before the Lord be the man who rises up and rebuilds this city, Jericho. At the cost of his firstborn shall be lay its foundation. And at the cost of his youngest son shall b set up its gates.”

여호수아 Joshua 6:26

 

예수님 당시에, 바디매오가 살던 그 여리고는 그 고대 고린도 잔재 근처 Wadi Qelt에 헤롯대왕이 세운 것입니다. 그가 죽은 곳이 여기 여리고입니다. 그 한 세기 이전, 주전 2세기 경에 하스모니안 왕조 때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eus)가 왕궁을 세운 바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일부러 들르셨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따랐는데, 이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목적보다는 이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따르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여리고에 들르신 목적은 바디매오를 만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리고에서 나가시던 길이라기보다는 여리고에 들어가시던 길에 바디매오를 만나셨습니다. 누가복음 19:1-10에 따르면 바디매오 이후 이후 여리고에서 한 가지 사건이 더 있습니다. 세리장이 삭개오를 구원하신 일입니다. 삭개오도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서클 중, 120 혹은 500, 아니라면 그 어딘가에 속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리고에 내려가셨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동안 233미터 내리막길과, 거기서 786미터 오르막길을 이어서 택하신 것입니다. 233+786=1,019미터.

 

바디매오는 거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디메오입니다. 이들이 이름까지 알려진 것은 이후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은 데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바디매오는 구걸을 위하여 길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사람들이 지나는 중에, 어떤 예사롭지 않은 인물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바디매오가 들은 것은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사람들은 거기까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리 지른 것은 다윗의 자손 예수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메시야”(헬라어, “그리스도”)와 동격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이것은 그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전한 그대로 파악하지 않고, 자기의 믿음을 따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에 그의 입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선포한 사건입니다.

 

바디매오의 신앙고백은 예수님께서 나귀 타시고 호산나 입성하실 때 무리가 외쳤던 그 고백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And those who went before and those who followed were shouting,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Blessed is the coming kingdom of our father David! Hosanna in the highest!”

마가복음 Mark 11:9-10

 

이제 바디매오가 호산나 입성의 그림자역할을 맡은 것을 다음 도표로 보다 뚜렷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

예루살렘 무리들

1

다윗의 자손 예수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2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3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바디매오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영육간에 치유받게 된 것은 그의 고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주심입니다.

 

그를 부르라!

Call him!

 

우리는 아직 연약할 때, 곧 죄인 되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때는. 우리는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셨을 때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For while we were still weak, at the right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로마서 Romans 5:6

 

그러므로 바디매오의 사건은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입니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on the way.

마가복음 Mark 10:52b

 

여기서 다음 주에 설교 할 마가복음 11:9를 미리 앞당겨 읽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And those who went before and those who followed were shouting,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마가복음 Mark 11:9

 

보십시오. “뒤에서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 따르는 자들 중에 바디매오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적입니다!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And man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여기서 바디매오를 꾸짖은 많은 사람들중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연히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은 호산나 외치는 무리들을 꾸짖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는 고집을 부린 것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에서 거룩한 고집”(persistence)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자은 자야.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하시니.

An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마가복음 Mark 2:5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And Jesus stopped and said, “Call him!” And they called the blind man, saying to him, “Take heart! Get up! He is calling you!”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부르라!

Call him!

 

그러자 그들이 이제 맹인을 불렀습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Take heart! Get up! He is calling you!

 

보십시오! 이제 무리가 달라졌습니다. 그 맹인을 예수님께 초청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치 오천 명 먹이실 때와 사천 명 먹이실 때 의심하던 제자들을 섬기는 자들로 바꾸신 것처럼!

 

여기서 안심하라!”는 헬라어 다르세오(darseo)의 명령어 다르세이”(darsei)입니다. 신약에 모두 일곱 차례 나오는데, 모두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명령입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지요: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For they all saw him and were terrified. But immediately he spoke to them, and said, “Take heart! It is I! Do not be afraid!” (Darseite! Ego eimi! Me pobeisde!)

마가복음 Mark 6:50

 

여기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라!” 하신 명령을 받고 그들이 맹인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사실 예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And throwing off his cloak, he sprang up and came to Jesus.

 

보십시오. 이 맹인이 보인 반응을!

 

그는 겉옷을 내버렸습니다.

그는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

 

이 세 가지 동작을 즉시실시할 때, 그는 아직 맹인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는 조심스럽게 땅바닥을 두드리며 걷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넘어질 염려는 이미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앉아 있던 사람에게 이런 세 가지 동작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를 부르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an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will live!

요한복음 John 5:25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른 뼈들도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명령을 받으면 일어날 것입니다.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 앞에.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And Jesus said to hi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nd the blind man said to him, “Rabbi, let me recover my sight!”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즉각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물으셨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요청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왜요? “믿음을 심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r eyes upon Jesus, the author and the perfecter of our faith!

히브리서 Hebrews 12:1a

 

그러니까, 겉옷을 던져버리고, 뛰어, 달려 나온 그의 동기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 믿음을 창조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여기서 발견해야 합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이 질문은 앞선 이야기, 곧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청탁을 드릴 때 주셨던 질문과 같은 성격입니다.

 

여기서 바디매오(Bartimaeus)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Rabbi, let me recover my sight!

마가복음 Mark 10:51c

 

이것은 대화를 통하여 그에게 믿음을 심어주시는 예수님의 창조적 능력입니다. 소위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이 있습니다. 그는 제자들과 대화를 통하여 그들이 깨달음으로 가도록 유도했습니다. 무슨 물꼬를 트는 것처럼!

 

그런데 예수님의 대화는 어떤 진리로 이끄는 물꼬가 아닙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당신을 만나게 하시고 바라보게 하시고, 그리고 당신을 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주심입니다. 과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Let us fix out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the perfector of our faith.

히브리서 Hebrews 12:2a

 

이제 바디매오의 반응을 봅시다.

 

여기서 선생님이여!” 한 헬라어를 주목합니다. ESV의 차음(transliteration) Rabbi와 달리 헬라어 본문은 랍보우니(Rabbouni)입니다. 이것은 랍비”(Rabbi, my lord/my master)보다 한층 높임말입니다. 오늘 여기 바디매오와 막달라 마리아가 유일하게 사용한 칭호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Jesus said to her, “Mary!” She turned and said to him in Aramaic, “Rabboni!” (Which means Teacher).

요한복음 John 20:16, ESV

 

여기서 한국어 번역 히브리말ESV아람어”(Aramaic)가 맞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상당히 유사하여 때때로 혼동합니다.

 

주님께서 즉시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마가복음 Mark 10:52b, ESV

 

여기서 ESVyour faith has made you well, 이렇게 번역했지만,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바른 번역입니다.

 

구원은 지금 당장 육체의 시력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 영과 육의 구원을 모두 포함하는 뜻입니다.

 

그가 ”(immediately)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he followed him on the way.

마가복음 Mark 10:52c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요청은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그에게서 믿음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시력이 회복되자, 그 길로 곧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 점에서 어떤 부자 관리 청년과 달랐습니다. 그는 무시 당하며 살던 바디매오와 달리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슬퍼하며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을 이렇게 네 서클(four circles)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해를 돕도록 편의상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님의 제자화 사역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3

12

120

500

누구

베드로 안드레 요한

열두 제자

오순절

오백여 형제(고전 15:6)

범위 추정

 

 

여인들, 예수님 형제들

바디매오?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바디매오?

 

 

나는 여기서 바디매오를 120명 서클이나 500명 서클 둘 중에 하나에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여러 성경학자들은, 예를 들어 Strauss 468, 사람들이 바디매오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초대교회에서 어떤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던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500, 잘하면 120에 들었을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그의 아버지 디메오도 초대교회에서 알려진 인물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이매오를 소개하는 것은 헬라어를 말하고, 아람어로 덧붙인 경우입니다.

 

디메오의 아들인 맹인 바디매오

 

이렇게 묘사한 데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보통은 먼저 아람어를 먼저 말하고, 헬라어로 설명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마가복음 3:17; 7:11, 34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라고 부른 ”(bar)는 아람어입니다. 그러나 디메오는 헬라어입니다.

 

예루살렘의 길, 십자가의 길 마지막 단계에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정말로 가파르게 높은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 하고 죽일 것이나,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And they will mock him and spit on him, and flog him, and kill him. And after three days, he will rise!

마가복음 Mark 10:34

 

우리가 당하고 있는 그것을 그대로 주님께서 당하신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 죄에 매여 있어서, “사냥군의 올무에 걸린 새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며 모든 조롱과 멸시, 고통과 죽임의 세월을 살던 우리를 풀어, 해방시켜주신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바디매오를 만나주셨습니다. 바디매오가 앉았던 길가를 지나가셨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를 찾아가 주신 것입니다. 천하고, 슬프며, 어둡고, 고독하게 살아가던 그 한 사람 바디매오를!

 

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을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게 하여 제자가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님!

 

바디매오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10:47b

 

무리들은 그에게 잠잠하라!” 질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던 길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그가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 사람, 그 맹인의 시각장애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를 새롭게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Who has believed what he has heard from us? And to whom has the arm of the Lord been revealed? For he grew up before him like a young plant, and like a root out of dry ground. He had no form of majesty that we should look at him, and no beauty that we should desire him.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en, a man of sorrows and cquainted with grief. And as one from whom men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esteemed him not.

이사야 Isaiah 53:1-3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Surely he was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t sorrows. Yet we esteemed him stricken, smitten by God, and afflicted.

이사야 Isaiah 53:4

 

이제부터 바디매오를 중심으로 이번에 주시는 성경말씀에서 제자의 도를 비교이해 하겠습니다. 모두 다섯 차례입니다.

 

1. 바디매오 vs 부자 청년

 

 

1

2

3

4

5

 

신분

구하기

자세

예수님 인식

결과

부자청년

부자 관리

영생

달려와 엎드림

선한 선생님

슬프게 돌아감

바디매오

거지 천대

보기

겉옷 벗고 달림

다윗의 자손 예수

보고 따름

 

보십시오. 바디매오는 부자 청년보다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유리했습니다. 그는 1. 가서, 모든 재산을 다 팔아, 3.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 세 가지 명령을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난하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에 이르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고난은 이로써 더욱 더 유리한 것입니다. 감사드려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It is good for me that I was afflicted. That I might learn your statutes.

시편 Psalm 119:71

 

조금 넓게 그림을 보면, 마가복음 8:22에서 벳새다에서 맹인 한 사람을 고치신 사건이 있습니다. 이 뱃새다 맹인과 여리고 맹인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닮았습니다.

 

 

2. 벳새다 맹인 and 바디매오

 

 

1

2

3

4

5

 

신분

추천

자세

치료

결과

벳새다 맹인

맹인

사람들

손 대시기

, 안수

밝히 봄

 

 

 

 

집으로

바디매오

맹인 거지

아버지?

겉옷 벗고 달림

 

밝히 봄

 

 

 

말씀

길에서 따름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맹인인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부자 관리들과 대비하여, 육신적으로 맹인이었던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 육신은 물론 영적으로도 그 눈을 떴습니다.

 

다음은 종교 지도자들제자들을 이들 맹인들과 비교한 것입니다.

 

 

3. 종교 지도자들 and 제자들 vs 벳새다 맹인 and 바디매오

 

 

1

2

3

4

5

 

신분

추천

자세

치료

결과

지도자들

고급

소문

세속적 비판적

해당무

원수

제자들

하류

부르심

소극적 세속적

결국은

제자화

벳새다 맹인

맹인

사람들

손 대시기

, 안수

밝히 봄

 

 

 

 

집으로

바디매오

맹인

사람들

겉옷 벗고

완치

밝히 봄

거지

아버지?

달리기

말씀

길에서 따름

 

 

우리는 바디매오를 보며, 우리 자신이 거기 여리고 길가에 앉아있는 자화상을 그려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 성경읽기는 대단히 남을 위한, 그러나 결코 나를 위하지 않은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4. 바디매오 and/or

 

 

1

2

3

4

바디매오

 

 

 

 

 

 

 

 

 

 

아무 공간도 채우지 않더라도, 그냥 바라보면서 예수님 생각에 잠기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증거 하는 바, 분명한 것은, 바디매오의 예수님은 오늘 나의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디매오! 그는 디매오의 아들이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등장한 것은, 그가 얼마나 고난이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맹인 아들을 둔 아버지. 그를 길가에 앉혀 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들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아버지. 멸시와 천대를 당하는 아들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그를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디매오입니다. 그 또한 우리의 자화상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길 맨 끄트머리에서, 예루살렘의 바로 앞 길, “여리고에서 예수님서 바디매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의 일평생 고난과 슬픔과 고독을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를 만나자마자 곧바로!”

 

그들은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 하고 죽일 것이나,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And they will mock him, and spit on him, and flog him, and kill him. nd after three days, he will rise.

마가복음 Mark 10:34

 

 

바디매오는 그의 인생에서 능욕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 당한 사람입니다. 이제 죽음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가 며칠을 더 살아보아야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어제는 오늘의 연속, 내일은 오늘과 결코 다르지 않은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였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그와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모든 것은, 곧 바디매오가 당한 것을, 그리고 남은 인생에서 당할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맡으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각장애, 그 슬픔과 고독과 고통의 근원을 맡아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찬송가 369 중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언덕길.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그 길을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와 동행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동행하게 된 정말 소수 중의 소수에 속했습니다.

 

그가 시력을 회복했다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사흘 동안 눈을 뜬다면그런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얼굴 뵙겠다거나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바디매오가 정말 마음 깊은 곳에 옵니다. 이 사람 바디매오는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에 친구로 와서 나와 함께 생각과 삶을 나누는 내 친구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 받았다면, 나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나는 예수님 안에서 친구입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나다!

I Am!

 

주님,

누구시옵니까?

O Lord,

Who are You?

 

주님, 저는 누구입니까?

Who am I?

Who am I to You?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And Jesus said to him,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him on the way.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기서 그의 믿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를 구원한 그 믿음은 그가 본래부터 지녔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본래 가졌던 그것은 주님께 소리쳐 부르짖은 데까지입니다.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부르라!” 하셨고, 무리들이 예수님의 용어를 사용하여 그에게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를 예수님께 초청했습니다. 이제 그가 예수님 앞에서 믿음을 가졌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바로 이 질문입니다. 그 사람이 들은 것은!

 

바로 그 때, 이 사람은 보게 되었습니다. “즉시로!”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길에서!”

 

예수님을 따를만한 믿음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여, 그의 마음에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 따뜻한 대화로써!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우리의 대답을 듣고자 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청취하십니다. 일생 살면서 누가 이런 따스함을 주었습니까? 예수님 이외에?

 

그가 곧 보게 되어.

And immediately he recovered his sight.

마가복음 Mark 10:52b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에!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And he followed him on the way.

마가복음 Mark 10:52c

 

여기 이 문장을 다시 번역하지요.

 

그가 따르기를 시작했다.

He began following.

 

하나의 단어가 주어와 동사를 모두 품었습니다. 에코루데이”(ekoloudei)입니다. 이것은 원형동사 akoloudeoingressive (or inceptive) 형태로, 불완전동사입니다. “앞으로 한동안 계속되는 것을 암시하는 어떤 행동의 시작을 말합니다(참고. Strauss 472).

 

그가 언제까지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진정한 제자로서? 진정한 제자의 도를 실천하면서? 성경에서 읽을 수 없으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론이 가능합니다. 1. “호산나 무리에 합류했을 가능성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마가복음 11:9a) 중에 들었을 것입니다. 2. 그리고 앞서 도표로 들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서클() 어딘가에서 우리는 바디매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천국에 가서 확실해지겠지요마는.

 

이 사람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시작하여 적어도 어느 지점까지는 계속해서!

 

길에서!

On the way!

 

이 마지막 어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어떤 부자 청년 관리가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수차례 그 부적격을 지적당했습니다.

 

1. 베드로는 십자가의 길을 만류했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무서운 질책을 받았습니다.

2.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가 예수님께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3.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을 탐냈다가 혼나지 않았습니까?

4. 오늘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하라!” 꾸짖었던 자들 중에 분명히 제자들이 들어있었을 터!

 

그런데 바디매오는 달랐습니다. 앞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천국 길에 적합판정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무리에 든 사람입니다.

 

더욱이 바디매오가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맨 마지막 인물이라는 점이 주목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를 고치심으로써, 모든 치유사역의 종결점을 확보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예수님 따르기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1. 지속적으로

2. 그 십자가의 길에서!

 

이로써 우리는 바디매오가 한동안 계속예수님을 따랐을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와 그의 아버지 이름이 교회에서 기억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더욱 확실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주후 30년경, 마가복음이 기록된 것이 주후 70년경인데, 벌써 40년이 지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와 그의 아버지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로마를 중심으로 이방인들 교회들에서 널리 읽힌 복음서입니다. 그의 이름은 유대를 떠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헌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디매오 치유의 이야기는 치유 이야기”(story of healing)이면서 동시에 부르심 이야기”(stroy of calling)입니다. 바디매오의 응답과 따름으로써 마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심받았다면, 그것은 동시에 치유와 구원의 기적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심입니다. 갈릴리 어부들에게 물고기 잡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고, 동시에 그들을 부르신 주님께서, 이런 기적-부르심 패턴을 허락해 주십니다. 깨달으십시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적. 그리고 들으십시오. 우리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의 음성을.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아름다움은 그의 따름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 아닙니까? 주님께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물으신 것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그 대답을 드렸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메시야입니다.

 

그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재물이나 세상 명예를 돌아보지 않고 예수님만 따랐습니다. 그의 시각장애와 거지라는 신분이 태생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그건 인생에 대단히 불리하고 부끄러운 훈장이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 주신 것입니다. 일부러 그 낮은 땅 여리고를 들르시고, 그 길로 높은 언덕길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어려운 여정을 선택하신 주님이셨습니다. 다른 어떤 일정도 없이 바디매오 만나는 목적으로!

 

주님 찾아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Christ, thy Lord is waiting now

Let Him in, Let Him in!

찬송가 534장 중에서

 

어떤 부자 청년 관리도 주님을 슬프게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영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맹인이었으며, 사람들에게서 무시와 천대를 당하던 이 사람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오셨습니다.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께 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오신 그 길, 거기서 참된 예배의 현장입니다. 신령(Spirit)과 진정(Truth),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께서 곧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심을 증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주에 설교하게 될 본문을 미리 읽습니다.

 

5. 바디매오 and 호산나 무리

 

 

1

2

3

4

바디매오

시각장애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의 제자

호산나 무리

구원이전

소리 높여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환영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독론(Christology)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Strauss 474).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준으로 전자는 마가복음 1:1-8:30까지, 후자는 마가복음 8:31-15:47까지입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고하시고

마가복음 8:29-3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And Jesus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and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마가복음 Mark 8:31

 

 

마가복음 1:1-8:30

마가복음 8:31-15:47

메시야

강력한 메시야

섬기는 메시야

Messiah

migthty Messiah

servant Messiah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금문인 여러분.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서는 결코 치유 받지 못할 질병이 있습니다. 시력상실인데,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방식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디매오처럼 사회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과연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 나아가기에 유익한 조건들이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우리 주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음성 부드럽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내어 맡겨드립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이 믿음으로써 주님과 동행합시다.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도록. 아멘.

 

이 고난의 시대에,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은 불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에. 오늘도 우리 주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우리도 그토록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 대제사장들, 그리고 유대인들 대부분, 이들처럼 영적으로 그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길에서, 멸망의 도시, 여리고의 한 길가에서. 슬프게 쭈그리고 앉아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던 가장 비참한 신세(미제라블, miserable)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구원이 되기까지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께서 우리 모두를 그 구원의 샘물에서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 보혈의 샘물에서 우리의 죄를. 그래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Restore to me the joy of your salvation.

And uphold me with a willling spirit.

시편 Psalm 51:10-12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바디매오를 치유하신 주님께서 오늘 나를 치유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 받으소서. 하나님의 교회 금문교회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