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7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호산나! Hosanna!

마가복음 Mark 11:1-1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Now when they drew near to Jerusalem, to Bethphage and Bethany, at the Mountain of Olives, Jesus sent two of his disciples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And said to them, “Go into the village in front of you, and immediately as you enter it you will find a colt tied, on which no one has ever sat. Untie it and bring it.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하시니

If anyone says to you, ‘Why are you doing this?’ Say, ‘The Lord has need of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immediately.’”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And they went away and found a colt tied at a door outside in the street, and they untied it.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And some of those standing there said to them, “What are you doing, untying the colt?”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And they told them what Jesus had said, and they let them go.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And they brought the colt to Jesus and threw their cloaks on it, and he sat on it.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And many spread their cloaks on the road, and others spread leafy branches that they had cut from the fields.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And those who went before and those who followed were shouting,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Blessed is the coming kingdom of our father David! Hosanna in the highest!”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And he entered Jerusalem and went into the temple. And when he had looked around, he went out to Bethany with the twelve.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And he said to them, “Why were you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누가복음 Luke 2:49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모하셨던 그 집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사역은 갈릴리 지역에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0장부터 시작하신 가버나움-예루살렘 행진이 이제 입성의 때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To you I lift up my eyes, O you who are enthroned in the heavens!

시편 Psalm 123:1

 

시편 120-134, 열 다섯 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하나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한 모든 예언을 다 이루심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but to fulfill them. For truly, I say to you,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an iota, not a dot, will pass from the Low until all is accomplished.

마태복음 Matthew 5:17-18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성경 안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 여기서 참 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삶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병을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하시니.

And he came to Nazareth, where he had been brought up. And as his custom, he went 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day, and he stood up to read. And the scroll of the prophet Isaiah was given to him. He unrolled the scroll and found the place where it was written,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ppointed me to proclaim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recovering of sight to the blind, to set at liberty those who are oppressed,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And he rolled up the scroll and gave it back to the attendant and sat down. And the eyes of all in the synagogue were fixed on him. And he began to say to them, “Today this Scripture has been fulfilled in your hearing.”

누가복음 Luke 4:16-21

 

그런데 오늘 예루살렘 입성은 또 다른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의 비밀의 종료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메시야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메시야의 비밀. 그것은 주님께서 고침 받은 자들에게(1:44; 5:43; 7:36; 8:26), 제자들에게(8:30; 9:9), 그리고 심지어 마귀들에게도(1:25, 34; 3:11-12) 명령하셨던 사안이었습니다.

 

첫째로, 고침 받은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하셨더라.

And said to him, “See that you say nothing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for your cleansing what Moses commanded, for a proof to them.”

마가복음 Mark 1:44

 

둘째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경고하시고

And he asked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answered him, “You are the Christ!” And he strickly charged them to tell no one about him.

마가복음 Mark 8:29-30

 

셋째로, 마귀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But Jesus rebuked him, saying, “Be silent! And come out of him!”

마가복음 Mark 1:25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그 메시야 비밀”(Messianic Secret)의 시한은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이 온 천하에 선포된 것입니다.

 

고침 받은 자들에게나, 제자들에게나, 마귀에게나,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이 선포는 바디매오”(Bartimaeus)가 고백했던 그대로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a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Mark 10:47

 

이 바디매오(Bartimaeus)가 예수님을 여리고 길에서 따랐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제자의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Now when they drew near to Jerusalem, to Bethphage and Bethany, at the Mountain of Olives, Jesus sent two of his disciples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17마일 중에, 마지막 코스입니다. 벳바게와 베다니. 여기서 행진을 멈추신 주님께서 제자들 둘을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벧바게는 그 뜻이 무화과의 집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으로 대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다니는 그 뜻이 ”()아니”(가난한 자, affliction, depression, misery) 두 단어가 결합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나병환자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기록한 메시야 사역의 증거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살았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입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많이 거주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심 중에, 첫 번째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다는 점을 지적하셨음을 주목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됨. 그것이 무슨 특별한 일인가요? 대부분 선교지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먼저 교회에 나오지 않던가요?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교회가 영적으로 부패하게 되면, 돈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멸망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교회. 가난한 자들이 모여드는 예배. 가난한 자들에게 집중하는 설교. 여기에서 진정한 말씀의 성취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찾아가시고 만나주시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한 그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Matthew 5:3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God.

누가복음 Luke 6:20b

 

나는 금문교회가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로 주님 앞에 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어떤 청년 관리 부자에게 주셨던 명령과 같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You lack one thing: Go, sell all that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And come! Follow me!

마가복음 Mark 10:21b

 

우리는 세상의 모든 교회가 우리와 함께 가난한 자들에게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보내심 받은 그들 두 제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 일을 했는가보다는, 예수님께서 그 일을 명령하신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두 명의 제자들. 이들이 누구일까요? 열 둘 중의 둘이라고 추측이 가능합니다. 최후의 만찬 때도 열 두 제자 중 둘을 보내셨습니다. 이들 둘은 이름이 없습니다.

 

증인이 되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던 토라의 명령을 근거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고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And said to them, “Go into the village in front of you, and immediately as you enter it you will find a colt tied, on which no one has ever sat. Untie it and bring it.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1. 맞은편 마을로 가라. 2. 들어가라. 3.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보라. 4. 풀라. 5. 끌고 오라!

 

여기서 그 맞은편 마을이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주님께서 준비하셨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1. 예수님께서 미리 주인과 약속을 하셨거나, 2.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보이신 것입니다. 1의 가능성을 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2가 훨씬 강한 메시지입니다. “유월절 먹을 다락방 준비때도 주님께서는 신적인 능력을 증거하셨습니다.

 

유월절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준비하셨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면서 동시에 대제사장이십니다(히브리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 마가복음에 쓰인 헬라어 폴로스(polos)는 어떤 동물이든지 젊은 것을 표상합니다. 그런데 스가랴 9:9와 마태복음 21:2, 5, 7, 그리고 요한복음 12:15는 어린 나귀를 말합니다. 창세기 49:9-11에도 나귀의 그의 어린 나귀가 유다 지파의 메시야 예언에 나타납니다.

 

나귀 새끼의 뜻은 1. 순수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멍에 메기 이전의 동물들은 희생 제물로 쓰였습니다(민수기 19:2; 신명기 21:3). 그리고 법궤를 끌었습니다(사무엘상 6:7).

 

거기다가 아무도 타 보지 않은이 의미하는 것은, “특별함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새 무덤을 준비했던 것에 견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뜻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아직 길들이지 않은 나귀를 타는 것은 특별한 능력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모든 상황과 여건,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동물도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했다는 소중한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하시니

If anyone says to you, ‘Why are you doing this?’ Say, ‘The Lord has need of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immediately.’”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그 경우를 대비할 대답을 주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The Lord has need of it!

마가복음 Mark 11:3b

 

여기서 가 누구인가? 이것은 많은 학자들이 고민한 주제입니다. 우선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퀴리오스, kurios)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자주 예수님을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주가 쓰시겠다함은, 주님의 필요성을 드러낸 것인데, 아무래도 고르반처럼, 그 나귀가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예물로서의 속성이 드러난 말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하면 즉시보내리라!

And he will sent it back here immediately.

마가복음 Mark 11:3c

 

그 주인들의 입장에서는 누가 주님이신가?”에 대하여 확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제자들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설령 그들이 제자들은 아니라고 해도, 성령님께서 감화감동하셔서 그 중요한 시점에서 중요한 도구인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논리나 정황을 따라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시니라.

He answered, “I tell you, if these were silent, the very stones would cry out!”

누가복음 Luke 19:40

 

그러므로 만일 그 주인들이 거절했더라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무엇 하러 그걸 쓰십니까?

타시려고!

 

타시고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 가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다고요? 왜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러!

 

지금 예수님께서 그 어떤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시겠다!

 

그 어떤, 그 무명의 어떤 사람도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귀의 새끼가 되었든지, 그것이 가난한 과부의 손에 들린 동전 두 닢이든지, 오늘 주님께서 그것을 쓰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어떻게 응답해 드려야 합니까?

 

쓰시옵소서!

 

주님의 손에 바칩니다. 주여,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2018년에 하바드대를 졸업하는 한국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식당 종업원이요, 어머니가 미용실에서 일합니다. 그 식구는 서류 미비자, 불법체류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바드대의 졸업생 대표 연설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연설 중심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사회가 우리를 기다린다면, 그 사회에게 결국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는 그의 가족을 아직도불법체류자로 묶어놓고, 그러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회에 자기에게 준 재능을 어떻게 돌려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의 연설을 들으니, 그는 자기의 재능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 정도로, 소위 자수성가 했거나, 입지전적인 인물이거나 하면, 자기 스스로의 눈물 나는 노력을 강조합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가난이었고, 핍박이었으며, 가정폭력이었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써 그것을 이겨냈다고, 보통 그렇게 결국 자화자찬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젊은 청년은 달랐습니다. 식당 종업원이며 미용실 직원인 어머니 아버지가 모든 재능을 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부모님이 와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말로 바꾸어, “엄마. 아빠, 사랑해!” 그랬습니다. “엄마, 울지 마!” “고마워, 아빠!”

 

누군가 우리를 위하여 아침에 빵을 굽고, 커피를 끓입니다. 주유소를 열고,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공사를 합니다.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며, 밤낮없이 기도해 주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서로 끝까지 돌보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할 것인가? 섬기고 봉사할 것인가? 예수님의 가르치심 그대로, 어떻게 섬기는 자가 되면, 어떻게 모든 사람의 종이 될 것인가?

 

나를 죄로부터 살려주신 예수님께서 나귀를 요구하십니다. 그 나귀는 오늘 예수님께서 타시고 예루살렘에 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혹자는 하바드대 학생 이야기라서 설교에 쓰시는가?” 하겠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나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한국의 송명희나 콜롬비아 나병환자촌 아구아 데 디오스의 첼리타 할머니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그가 좋은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재능을 스스로 일군 것이 아니라 받은 것으로 여기고, 그 받은 것을 나눌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태도는 대단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And they went away and found a colt tied at a door outside in the street, and they untied it.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나귀 새끼가 있었습니다.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And some of those standing there said to them, “What are you doing, untying the colt?”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어떤 이들이 도전하며 물었습니다.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어떤 이들이.” 여기서 나는 그 나귀의 주인이 복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 식구들이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And they told them what Jesus had said, and they let them go.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상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황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나귀 새끼를 데려가려고 했으니!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주가 쓰시겠다, 하라!

The Lord has need of it!

마가복음 Mark 11:3b

 

그러나 이미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나귀새끼가 거기 있는 것, 2.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이 도전하는 것을 본 제자들은 그 대답이 정해져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이 허락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And they brought the colt to Jesus and threw their cloaks on it, and he sat on it.

 

제자들이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왜요? 누가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등에는 어떤 안장장치(saddle)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대신그들의 겉옷을 얹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이것은 몇 가지로 특이한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한 번도 다른 데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2. 더구나 한 번도 누가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누가 감히 시도하지 않습니다. 3. 보통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걸어서갑니다.

 

그런데 이런 몇 가지 전례가 없는 사안들이 무시되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aloud,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your king is coming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is he, humble and mounted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스가랴 Zechariah 9:9

 

게다가 여러 그리스-로마 당시에 존귀하거나 존경하는 자의 가는 길에 무엇을 깔아두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플루타크(Plutarch)의 글에 카토(Cato the Younger, 95-46 BC)가 그의 군대를 떠날 때 사람들이 무엇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1872년에 성요한의 카타콤(St. John’s Catacombs)에서 발굴한 빌레리우스(Comes Valerius)의 아내 아델피아(Adelphia)의 석관 외곽에 새겨진 한 장면은, 어떤 남자가 말의 아래 무엇을 깔아주고 있습니다.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And many spread their cloaks on the road, and others spread leafy branches that they had cut from the fields.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차례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습니다. 이것 또한 제자들이 겉옷을 벗어 어린 나귀의 등에 얹은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던 터에, 그들은 즉흥적으로예수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요한복음 12:13은 이 나뭇가지가 종려나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이것 또한 즉흥적 준비의 연속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입성에 대한 백성의 태도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이들은 어떤 전통”(traditional)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대신 즉흥적(spontaneous)이었습니다.

 

즉흥성 내지 자발성(spontaneity). 이것은 1.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뜻입니다. 2. 아울러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진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3. 인간은 하나님이 손에서 빚어지는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준비를 다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집니다.

 

지금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펴고, 들에서 베어 온 나뭇가지를 바닥에 까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는 고백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결국 하는 모든 일은 말씀순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의 모든 것은 말씀순종이어야 합니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And those who went before and those who followed were shouting, “Hosanna!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

 

이들은 서로 다른 두 그룹을 말하지 않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제자들의 온 무리”(17:37) multitude of his disciples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외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은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1:9도 같습니다.

 

도표: 호산나 외친 사람들

 

복음서

한국어

영어

마태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

and the crowds that went before him and that followed him

21:15

어린아이들

the children

마가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

those who went before and those who followed

누가

19:37

제자의 온 무리

the whole multitude of his disciples

요한

12:12

명절에 온 큰 무리

the large crowd that had come to the feast

12:19

온 세상

the world

 

 

이들은 비로소 제자의 도를 깨달았습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르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나중에 이들 중에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폭도들이 되었고, 남은 자들 대부분이 몸을 사려 도망치기는 했지만!)

 

이들이 외친 것은 무엇입니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호시아-!

 

이 뜻은, “지금 구원하옵소서!” (Save now!) 그런 의미입니다.

 

호산나! 이 외침은 시편 118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Save us, we pray, O Lord! O Lord, we pray, give us success!

시편 Psalm 118:25

 

시편 118:25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오는 호산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구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이렇게 외친 바디매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호산나! 이것은 예수를 히브리어로 쓸 때, 둘 다 야샤아(yasha) 라는 히브리어가 그 뿌리입니다. 야샤아는 구원하다라는 동사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이것은 주전 5세기에 사역했던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aloud,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your king is coming to you. Righteous and having salvation is he, humble and mounted on a donkey, on a colt, the foal of a donkey.

스가랴 Zechariah 9:9

 

이로써 적어도 시편 118:25와 스가랴 9:9 등 두 개의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오늘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Blessed is the coming kingdom of our father David! Hosanna in the highest!”

 

1. 찬송하리로다! Blessed in the One!

 

찬송합니다. 이 찬송을 함께부릅니다. “온 세상에 선포합니다. 이 무슨 뜻입니까?

 

오늘 기독교 신앙생활이 대단히 개인적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자기 개인의 계발에 도움이 되는 수준에서 만족합니다. 복음이란, 사실이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나 혼자 알고 지내기에는 너무도 벅찬 감동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파수꾼입니다. 주신 메시지를 전파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제자!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결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앞에 서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바디매오처럼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Mark 10:47c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Mark 10:48c

 

 

2.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Blessed is the coming kingdom of our father David!

 

우리의 선포 내용은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이미 온 세상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은 오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1948년에 새로 자리 잡은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새 이스라엘입니다. “교회이며 그리스도인입니다.

 

 

3.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Honsanna in the highest!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 계십니다. 가장 높은 곳에! 그 곳에서 우리의 찬양을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때 하늘에 울려 퍼졌던 찬양을?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And suddenly there was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ing,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on earth peace among those with whom he is pleased!”

누가복음 Luke 2:13-14

 

가장 높은 곳하늘이거나 하나님 계신 곳입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이 소통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For to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이사야 Isaiah 9:6

 

세상이 주는 평화는 전쟁입니다.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했지만, 그것은 상대의 철저한 파괴를 바탕에 세운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에 평화를 말하는 강대국들이 있지만, 대개는 군대를 가지고 그런 말 하지 않습니까? 누가 진실한 평화를 말합니까?

 

비폭력을 말한 인도의 간디나 미국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가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합니까? 죄인 된 인간에게서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로마서 Romans 5:1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us both one and has broken down in his flesh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by abolishing the law of commandments expressed in ordinances, that he might create in himself one new man in place of the two, so making peace

에베소서 Ephesians 2:14-15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and might reconcile us both to God in one body through the cross, thereby killing the hostility

에베소서 Ephesians 2:16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and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off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in one Spirit to the Father

에베소서 Ephesians 2:17-18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And he entered Jerusalem and went into the temple. And when he had looked around, he went out to Bethany with the twelve.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이르셨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귀를 타시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은, 구약에 이미 전례가 있습니다.

 

1. 솔로몬(Solomon)이 왕으로 입성했습니다. 왕상 1:32-48.

 

2. 예후(Jehu)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겉옷을 깔았습니다. 왕하 9:1-13.

 

3.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스가랴(Zechariah) 9:9에서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할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4. 시편 118편에 호산나 외침은 메시야의 입성 때 외치는 백성의 목소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로써 수난주간”(Passion Week)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한 주간 동안에 주님께서 예루살렘 실력자들과 정면충돌 하시고, 그들의 손에 붙들리시고, 끝내 이방인들(빌라도와 그의 군대)을 통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주님의 수난의 깊은 뜻을 헤아리면서 경건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발걸음을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모든 준비는 다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 스스로 입증하신 메시야”(self-revealing Messiah) 이십니다. 이로써 모든 메시야 비밀은 사라졌습니다.

 

이전에 병 나은 사람들을 제지하셨고, 제자들을 조용하게 하셨으며, 마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지 못하게 하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그 입성을 통하여 온 세상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당신 스스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과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가 거기 있었고, 2. 예수님의 예상대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하면서 도전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I have faith that it will happen just as He told me!

사도행전 Acts 27:25b

 

이렇다면 여기서 사람들의 반응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반응은 모두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나타나야 하겠습니다.

 

1. 제자들이 순종했습니다. Disciples followed Jesus’ instructions. And all worked out as planned. 두 제자들이 길은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어린 나귀를 풀었고, 도전을 받자 예수님의 말씀대로 대답했습니다.

 

2. 사람들이 순종했습니다. 자기들의 나귀를 풀어 가져가는 제자들을 허용했습니다.

 

3. 무리들이 겉옷을 벗어 나귀의 등에 얹고, 길에 깔았습니다.

 

4. “제자의 무리들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호산나!” 크게 외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사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명절에 온 큰 무리로서, 예수님을 따른 자들, 곧 제자들의 무리, 그리고 어린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에 이르시는 동안, 주님께서 어린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위에 손을 얹고 추복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말씀으로 계속 양육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 관리가 아니라 맹인 바디매오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바디매오의 고백, 다윗의 자손 예수는 오늘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중심주제가 되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창세기 1-11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인류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혼 세상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So the Lord dispersed them from there over the face of all the earth. And they left off building the city. Therefore its name was called Babel, because the Lord confused the language of all the earth. And from there the Lord dispersed them over the face of all the earth.

창세기 Genesis 11:8-9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Now the Lord said to Abram, “Go from your country and your kindred and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that I will show you.

창세기 Genesis 12:1

 

아브라함의 후손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후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Now the promises were made to Abraham and to his offspring. It does not say, “And to offsprings,” referring to many, but referring to one, “And to your offsping,” who is Christ.

갈라디아서 Galatians 3:16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다윗의 자손 메시야를 구체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서

한국어

영어

마태복음 Matthew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마가복음 Mark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누가복음 Luke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Inasmuch as many have undertaken to compile a narrative of the things that have been accomplished among us

요한복음 John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이것은 구약에 이미 예언한 그대로, 엘리야, 곧 세례요한을 통하여 세상에 처음 선포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The next day he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said,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요한복음 John 1:2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 길로써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그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예수님 아니면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는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창조될 때 소중했습니다. 창조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로 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써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새 생명의 은혜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잘 깨닫고, 잘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증거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곡해하거나 하지 말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있도록 사역해야 합니다.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아이와 바디매오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증거 해 주신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환란을 당하고 핍박을 받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으나,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우리 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십니다. 평강을 주신 은혜의 구주이십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O Israel! Hope in the Lord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시편 Psalm 131:3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보여주신 그 구원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와 감격으로, 호산나! 우리 주님께 드리는 영원한 찬송을 드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죄를 용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죄 받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이의 섬기는 자와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