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말씀묵상: 시편 100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

베드로후서 3:3:1-18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잘 때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된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는 지난 주에 종교개혁주일을 지냈습니다. 정확하게는 지난 화요일이었습니다. 버클리에서 통일심포지엄 발제자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날이 마침 할로윈이어서, 온통 거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많은 생각이 오가는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항상 어린 아이로 머물면 오해하고 혼란 속에서 멸망에 이를까 염려되는 바 있습니다.

 

남과 비교를 하는 수가 많습니다. 학교는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사업도 비교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절대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종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인종차별이 납니다. 그건 죄악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영영 비교할 수 없습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아닙니다. 한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자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옛날과 자기의 지금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옛날보다 낫다면,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일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내일 더 나을 소망이 있다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만 비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정말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가 말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베드로후서 3:18a

 

 

사람이 자라간다면, 그는 지켜볼 만한 사람입니다. 기대를 걸어도 좋습니다. 주식이라면 그 종목은 투자가치가 있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자꾸 자꾸 더 자라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 은혜에 자랄 수 있습니까? 먼저,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는 은혜의 보좌에 나아감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성소의 시은소가 은혜의 자리입니다. 신약에서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있는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영광일세.

Jesus, keep me near the Cross, There a precious fountain-

Free to all, a healing stream-

Flows from Calv'ry's mountain.

In the Cross, in the Cross

Be my glory ever;

Till my raptured sould shall find

Rest beyond the river.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Step by step, step by step I would walk with Je-sus

All the day, all the day, Keep-ing step with Je-sus.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I'm pressing on the upward way

New heights I'm gaining every day;

Still praying as I onward bound,

"Lord, plant my feet on higher ground."

Lord, lift me up, and let me stand

By faith on Canaan's tableland;

A higher plane than I have found,

Lord, plant my feet on higher ground.

 

핵심은 여기 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는 삶입니다. 십자가에 집중하는 인생입니다. 왜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나? 이 질문을 끊임없이 계속 하는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마태복음 Matthew 27:46

 

이 질문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품고 살아야 할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버리셨나?

은혜를 찾아 구하는 사람은, 조그만 것으로도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을 발견하고도 가장 큰 은혜를 얻는 사람, 이런 사람이 정말 큰 은혜의 사람입니다. 문제는 간절함입니다.

 

훈련소에서 첫 번째 교회 갔을 때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주일을 걸러보내고, 두 번째 주일에야 교회를 보내는데, 그것도 주기도문외우기 등의 테스트를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대열에서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섰는데, 그건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그 때 군목 목사님의 설교가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내내 울었기 때문에 그때만큼 큰 은혜를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간다는 것부터 은혜가 넘쳤습니다. 은혜는 사모하는 정도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언급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Just as our dear brother Paul also wrote you with the wisdom that God gave him. He writes the same way in all his letters, speaking in them of these matters. His letters contain some things that are hard to understand, which ignorant and unstagle people distort, as they do the other Scriptures, to their own destruction.

베드로후서 3:15b-16.

 

바울서신이라면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 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 13권입니다. 먼저는 로마서가 정말 어렵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은데, 세심하게 읽어나가면 고개를 갸웃거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고린도전후서도 때로 신학적인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또 다른 문제에 휩싸이는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11-15에서 여자는 일체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지금까지도 여러 교단들을 둘로 나누는 걸림돌입니다. 여자안수를 부인하는 교단과 여자안수를 허용하는 교단 등입니다. 누구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억지로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식하다는 것은 지식이 부족한 자요, “굳세지 못하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몰랐지만, 이제 조금 더 알게 되고, 그리고 계속 기도하며 공부하여 내일은 더 좋은 깨우침을 받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대개 10대 후반까지 공부한 것으로 일평생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대학을 들어갔느냐? 이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대학원이나 박사과정이 아니라 학부가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학부도, 편입해서는 안 되고 신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할 때 이런 편견은 한국이 훨씬 더 큽니다. 미국은 하바드 대학의 교수들 중에 학부를 무명한 학교 출신이 참 많습니다. 한국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계속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공부하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사람이 어떤 대학을 다녔는가, 그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가, 이것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이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는 일은 이 없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하여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루하루가 다르고 또 다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어려우면, 한번 읽고 또 읽는 것입니다. 읽다가, 필사(handwriting)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서적을 찾는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이 좋은 방법이겠지만, 인터넷의 바다에는 이단의 자료나 성숙하지 못한 이들이 그렇게 하면 적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습니다.

 

베드로가 이 두 번째 편지를 쓰는 목적을 오늘 본문에 실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3:1-2

 

첫 번째 편지, 곧 베드로전서와 함께 두 번째 편지, 곧 베드로후서를 기록하는 목적은,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선지자들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의 기능은 생각나게하고, “기억나게하려는 데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가지 기능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 내용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But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said to you.

요한복음 14:26

 

그러면 베드로의 편지 전/후서는 성령님의 감화감동으로써 기록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 대답은, “그렇습니다. 진실로 베드로는 이전에 육신으로 이끌려 시험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다시 부르신 이후 그는 성령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I tell you truth, when you were younger you dressed yourself and went where you wanted; but when you are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dress you and lead you where you do not want to go.

요한복음 21:18

 

베드로는 본래 학식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체념하고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이런 엄청난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When they saw the courage of Peter and John and realized that they were unschooled, ordinary men, they were astonished.

사도행선 4:13a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고, 계속 생각나게 해 주신다면, 사람은 성령충만하면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반대는 정욕충만일텐데, 이런 사람은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진리에는 전혀 관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느니라.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고린도전서 2:10

 

성령님께서는 그 은혜를 구하고, 그 지식에서 자라기를 원하는 자에게 그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세가 되니,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세상에 큰 목소리를 냅니다.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미혹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베드로후서 3:3-4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시기는커녕, 전혀 세상은 변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엄청난 사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는 행위입니다. 창조 때 당신의 말씀으로써 물을 갈라내셨는데, 불신하는 자들을 벌하시기 위해, 그 물을 도로 합하셨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난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만 생존하였습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졌다가 합해진 사건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여 바다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바다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 없이 살던 애굽의 군대는 바다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심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14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시집 가고 장가 가면서, 자기 좋은 맛에 빠져들어,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다가, 그분의 진노를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말면, 그건 정말 지혜 없는 자에 다름 아닙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As it was in the days of Noah, so it will be at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For in the days before the flood, people were eating and drinking, marrying and giving in marriage, up to the day Noah entered the ark, and they knew nothing about what would happen until the flood came and took them all away. That is how it will be at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마태복음 24:37-39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된 줄로 여기라.

Bear in mind that our Lord's patience means salvation.

베드로후서 3:15a

 

여태까지 우리에게 이런 환난이 임하지 않은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참아주심인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열심인 줄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홍수가 임하기 전에, 바닷물이 다시 합하여 흐르기 전에, 지구의 종말이 오기 전에, 인생의 끝 날이 닥치기 전에!

 

마라톤 하던 사람들이 급습을 당했습니다. 자전거 길로 차가 돌진했습니다. 유명 영화배우가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신문이나 인터넷에 넘치고 넘치는 뉴스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도 배우는 바가 없다면, 그런 걸 왜 봅니까?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법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He said, "Go and tell this people: Be ever hearing but never understanding; be ever seeing, but never perceiving.'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calloused; make their ears dull, and close their eyes.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hear with their ears,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turn and be healed.

이사야 Isaiah 6:9-10

 

메시지. 그렇습니다. 메시지가 없으면, 자연을 보고, 역사를 배우고, 사회를 파악해도, 전혀 영적인 의미를 캐지 못합니다.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배운 사람입니까? 그게 무슨 지식인입니까?

 

결론입니다.

사람은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통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아야 은혜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왜 나를 구원하시는가, 그것을 깨달아야 우리가 지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어떤 선교사님이 지난 주, 내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나니까, 다른 모든 지식이 쓸데가 없더군요.

 

이게 성령님 안에서 자라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나는 이렇게 자라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하십시오. 그가 그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를 끝까지 찾아오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제도 김순종 목사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일평생 살면서 그분을 우리는 큰 아버지로 섬겼습니다. 20세 되던 아버지가 밭고랑에서 일할 때, 주일날이니 교회 가자, 손을 이끈 분이 그분이셨습니다. 교회 갔다 와서 내가 다 해줄꺼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킨 분이셨습니다. 밭고랑에서 교회로! 그 손길이 귀하고 귀하여, 아버지는 일평생 김순종 목사님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십자가게 못 박혀 죽게 될 때도, 그는 예수님을 기억했습니다.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이 어찌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겠는가?

 

나는 십자가를 만들 때마다, 십자가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수백 개의 십자가를 만들었고, 원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칼과 톱과 망치로 손을 다치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내가 한 걸음 십자가로 간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그 예수님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죽은 인생입니다. 오늘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은 예수님이며, 그 은혜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셨던 그 성경책을 내가 읽고 깨닫고 그 깊이와 넓이와 그 높이를 느끼기 원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내가 걷기를 원합니다. 베드로처럼, 나도 그렇게 복음전도 하다가, 끝내 십자가를 지고, 거기서 내 인생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함께 하는 삶. 이것이 나의 간증이며, 이것이 나의 찬송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베드로후서 3장을 통해 큰 은혜를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이렇게 살려주시고, 거룩한 은혜를 허락하셨으니, 영광과 찬송을 세세무궁토록 받으시옵소서. 십자가로 가까이, 오늘도 나아가기를 원하옵나이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주여 힘을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