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 3:11-16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214
- 21-09-04 14:40
2021년 9월 5일
금문교회 주일예배/성찬식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You Have Killed Author of Life
사도행전 Acts 3:11-16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While he clung to Peter and John, all the people, utterly astonished, ran together to them in the portico called Solomon’s.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And when Peter saw it, he addressed the people: “Men of Israel, why do you wonder at this, or why do you stare at us, as though by our own power or piety we have made him walk?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glorified his servant Jesus, whom you delivered over and denied in the presence of Pilate, when he had decided to release him.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But you denied the Holy and Righteous One, and asked for a murder to be granted to you.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And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16.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And his name—by faith in his name—has made this man strong whom you see and know, and the faith that is through Jesus has given the man this perfect health in the presence of you all.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너희가 죽인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인간이 한 일은 생명의 주를 죽인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병자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로써 드러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선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너희가 생명의 주님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살리셨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우리가 그 증인이다
이로써 인간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이 일평생 장애자로 살았던 자가 치료받고 “곧바로” 한 일처럼,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 드리는 일”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베드로는 그 설교로써, “우리가 예수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병을 고침으로써 설교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실은 병을 고치는 사건 없이도 설교의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Preach the word. Be ready in season and out of season. Reprove! Rebuke! And exhort, with complete patience and teaching!
디모데후서 1 Timothy 4:2
베드로가 외치는 중에, 그 듣는 사람들은 모두 악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보십시오. 로마서 5장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For while we were still weak, at the right tiem Christ died for the ungodly.
로마서 Romans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shows his love for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로마서 Romans 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For if while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by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now that we are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by his life.
로마서 Romans 5:10
인생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을 주목합니다. 영웅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Stars are born!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베드로가 분명하게 짚어 말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Why do you stare at us, as though by our own power and piety we have made him walk?
사도행전 Acts 3:12b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While he clung to Peter and John, all the people, utterly astonished, ran together to them in the portico called Solomon’s.
나은 그 사람이 걸으며 뛰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그 사람은 “인간” 베드로와 요한에 집착한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은인” 아닙니까? 보십시오.
사람들도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달려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서 있는 그 자리에!
이렇게 순식간에 “인기”가 치솟았던 것입니다.
우리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를 보십시오. 이제는 그가 정답입니다.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And when Peter saw it, he addressed the people: “Men of Israel, why do you wonder at this, or why do you stare at us, as though by our own power or piety we have made him walk?
베드로의 설교는 사실 확인부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걷게 된 것은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이 아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에게 주목하는 잘못된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곁에 두고 “미드라쉬”와 “탈무드”를 썼습니다. 외경과 위경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사방에 흘러넘치는 그런 인간숭배는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the God of our fathers, glorified his servant Jesus, whom you delivered over and denied in the presence of Pilate, when he had decided to release him.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시내산에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넘겨주었는데!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심한 것을 그의 앞에서 부인하였는데!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But you denied the Holy and Righteous One, and asked for a murder to be granted to you.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를 선택한 일입니다.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And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아프리카 선교사 최관신 목사님이 설교하니, 그중에 어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예수를 당신들이 죽여 놓고 우리보고 죽였다고 하니,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안 죽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설교가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는 베드로가 한 그대로 설교를 우리 설교 삼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일에 우리 모두가 다 참여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지금 “너희가 죽였도다!” 한 것은,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깨닫고 말라는 것은 아닐 테니!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하라! 그런 엄청난 선언입니다.
회개하여 돌이켜야 합니다.
16.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And his name—by faith in his name—has made this man strong whom you see and know, and the faith that is through Jesus has given the man this perfect health in the presence of you all.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가진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으로써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And these signs will accompany those who believe: in my name, they will lay their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마가복음 Mark 16:17-18
우리가 배반하고 우리가 저주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악을 선으로써 이기신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써 갚으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로마서 Romans 12:21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써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의지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 하시는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아닙니다.
베니힌이라는 TV 설교가가 있습니다. 그는 한번 초청 받으면 20만 불을 요구합니다. 한번은 콜롬비아 교회가 연합하여 그를 초청한 일이 있는데, 14만 불을 모았습니다. 그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는 사람이라면 어째서 그가 돈을 요구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그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쫓겨나아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십자가를 만들 때마다, 못질할 때마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나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슬픈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주님 앞에서!
사람이 십자가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기인식”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나는
나는 죄인입니다.
철저한 죄인입니다.
세상에 조금 죄인이 있을까요? 더 큰 죄인이 따로 있나요? 죄인에 어떤 “등급”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그 죄의 정도에 있어 “평등”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Blessed are those whose lawless deeds are forgiven, and whose sins are covered. Blessed is the man against whom the Lord will not count his sin.
로마서 Romans 4:7-8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용서”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1. 회개한 사람에게 2. 사명을 주십니다.
이 패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 내 양을 먹이라
1. 예수님께서 사랑을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지 못했는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랑의 부족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2. 참 용서는 “사명 주심”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용서하면서 “사명회복”이 없다면, 그건 용서가 아닙니다. “잊어버림”이거나 “무시함”일 뿐입니다.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의 일생이 이렇게 바뀝니다. 일생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증거 합니다. 온 땅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이것이니라.
For as often as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e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1:26
세례요한에게서도 이런 패턴이 발견됩니다.
1. 회개하라!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 열매는 세례요한처럼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써 죄악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사명을 품고 땅 끝까지 달려 나간 경우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발견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소망”입니다. 우리의 모든 절망을 깨뜨리시고 소망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소망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의 가는 모든 길 위에 그 말씀을 친히 증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써 많은 표적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 모든 표적으로써 스스로를 높이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멘.
결론입니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이 영적 도전은 회개를 낳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자에게 우리 주님께서 사명을 주십니다. 베드로의 경우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주님께서 회개한 베드로에게 새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설교도 듣는 모든 이들의 심령을 향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설교자 자기 자신을 제시함으로써, 주님을 배반했던 자기가 말씀 선포자가 된 것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받을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설교자는 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시합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살아계심을 증거 합니다. 이러므로 설교자는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대로, 회중이 자기를 따라오기를 도전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Be imitators of me, as I am of Christ.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1:1
베드로. 한때 배반자였던 그가, 피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그는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새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오늘 우리의 차례 아닙니까?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입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사 참 사랑으로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제 용서 받은 저희가 남은 모든 날들을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 소중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늘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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