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교회는 무엇인가?#행4:32-37
- 작성자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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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0-16 18:59
2021년 10월 17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Service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교회는 무엇인가? What Is the Church?
사도행전 Acts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Now the full number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 one said that any of the things that belonged to him was his own. But they had everything in common.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And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were giving their testimony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
34.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And there was not a needy person among them. For as many as were owners of land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oceeds of what was sold.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And it was distributed to each as any had need.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Thus Joseph, who was also called by the apostles Barnabas (which means son of encouragement), a Levite, a native of Cyprus,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Sold a field that belonged to him and brought the money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교회는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본문은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 질문을 대답하는 성경말씀입니다.
오늘은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논리나 이론이 전개된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어떤 “수채화”처럼, 교회의 “참된 교회의 모습”을 한 장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장면은 교회가 핍박 중에 모여 “기도”하여 “성령 충만” 받고 난 직후의 모습 스케치입니다.
전체로 보면 교회가 “재물관리”의 새로운 양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의 아이덴티티도 세상과 다르지 않게 결국 재물과 그 사용방법에 따라 정의되는 것입니까?
본문을 보십시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재산을 팔아 교회에 냅니다.
필요에 따라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바나바라고 불리는 요셉이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모두 특이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서 볼 수 없고, 오로지 교회에서 발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메시지”가 중심입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것은 “주 예수의 부활”입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메시지는 “십자가-부활”이었습니다. 오늘 “교회 묘사” 큰 그림에도 이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전체 주제는 이렇게 정리가 가능합니다:
1. 예수님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활동하는 “교회”는 무엇인가?
2. 교회는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는가?
3. 교회는 “재물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함께 바울의 제자 “누가”가 기록한 서신입니다. 수신자는 데오빌로였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이 가지는 몇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무관리”입니다. 곧 “청지기직”입니다. 오늘은 개인보다는 “교회”가 청지기직의 큰 모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대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교회는 그 첫 번째요 궁극적인 메시지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교회는 선포하는 그 메시지에 따라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개인의 헌금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재물은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재물로써 부자의 계급이 형성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보십시오.
들으라, 부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을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Come now, you rich, weep and howl for the miseries that are coming upon you. Your riches have rotted and your garments are moth-eaten. Your gold and silver have corroded, and their corrosion will be evidence against you and will eat your flesh like fire. You have laid up treasure in the last days.
야고보서 James 5:1-3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교회의 주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공동체로 그 큰 역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곁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많이 살던 베다니의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어떤 죄 많은 여인도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크신 사람을 보답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부자들도 그 재물로써 하나님 나라를 준비한 바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 준비한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드렸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재산을 주님께 내놓았습니다. 구원이 그 집에 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에는 모두 가난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도 공존했습니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세상 어디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거하는 공간이 또 있습니까? 교회 외에?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합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Now the full number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 one said that any of the things that belonged to him was his own. But they had everything in common.
32-1. 믿는 무리가
교회는 “믿는 무리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여자, 유대인-이방인, 종-자유인, 가난한 자-부자 등 어떤 구별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모두를 하나로 묶는 끈입니다.
32-2.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ager to maintain the unity of the Spirit in the bond of peace.
에베소서 Ephesians 4:3
함께 예배들 드리는 성도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32-3.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But he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누가복음 Luke 9:13a
물건을 나누는 것은 오늘도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32-4.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여러분.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돈 문제가 생기면 부모-자식 간에도 불편해지고, 형제지간에도 법정에 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자기 재물을” 조금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의 재물이 있는 곳에 자기의 마음도 있지 않습니까?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마태복음 Matthew 6:21
보통 사람은 자기의 재물을 끊임없이 쌓아두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신 어떤 부자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그는 소출이 많아지자 창고를 더 짓기로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So is the one who lays up treasure for himself and is not rich toward God.
누가복음 Luke 12:21
어떻게 해서 자기의 재물을 조금도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누가의 신학”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에게 있어서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위험한 기회”(dangerous chance)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가장 잘 사용하는 길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 이것이 재물 사용의 최선입니다.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비유를 나열해 봅니다(William Willimon, 52).
본문 Text | 비유 | Parables | 의미 Meaning |
7:41-43 | 오백 데나리온 빚 진 사람과 오십 데나리온 빚진 사람 | Two Debtors | 많이 탕감 받은 자의 사랑 |
10:29-37 | 선한 사마리아인 | The Good Samaritan | 여비를 치료비로 |
12:16-21 | 어리석은 부자 | The Fool Rich | 자기 재물로 내일 준비 못함 |
16:1-8 | 불의한 청지가 | The Unjust Steward | 불의한 재물로 내일을 준비함 |
16:19-31 | 부자와 나사로 | The Rich and Nazarus | 재물로 이웃을 돌보지 못함 |
19:11-27 | 열 므나 비유 | The Ten Minas | 한 므나-열 므나 한 므나-다섯 므나 한 므나-한 므나 |
확실히 누가복음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거기 관심이 있습니다. 모든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써!
이로써 “누가복음-사도행전이 보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교회는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 안에서 “재물”은 그 자체의 힘을 잃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재물”은 “하나님에 버금가는 세력”(about the same power as God in the world)입니다. “돈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두 주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ther. You cannot serve God and money.
마태복음 Matthew 6:24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돈은 그 힘을 완전히 잃은 것입니다.
묻습니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는 자리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Jesus, seeing that he had become sad, said, “How difficult it is for those who have wealt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For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a rich perso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누가복음 Luke 18:24-25
다시 묻습니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영접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능히 들어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러므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And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were giving their testimony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
33-1.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이 큰 권능은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 일어난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has come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 of the earth.
사도행전 Acts 1:8
성령님의 권능을 받은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도록!
33-2.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입니다! 여기서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생의 길에서 부활의 소망이 열렸습니다. 죽음 공포에 시달리던 사람이 영생의 소망을 품었습니다. 은혜입니다!
34.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And there was not a needy person among them. For as many as were owners of land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oceeds of what was sold.
34-1.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가난은 물건이 없을 때보다는 돕는 사람이 없을 때 결정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서로 돌보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밖에는(OUT) 가난한 자-부자가 “구별”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IN),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배인간입니다.
34-2.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어째서 이런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서로 돌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 명령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성령충만으로써!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And it was distributed to each as any had need.
35-1.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교회가 재물을 주장하도록 교회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를 통하여 물질을 관리하는 지혜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35-2.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각 사람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그것을 인간에게 알게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지혜입니다.
사도들의 사역내용이 이후에는 “집사들”에게 옮겨졌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Therefore, brothers, pick out from among you seven men of good repute, full of the Spirit and of wisdom, whom we will appoint to this duty. But we will devote ourselves to prayer and to the ministry of the word.
사도행전 Acts 6:3-4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Thus Joseph, who was also called by the apostles Barnabas (which means son of encouragement), a Levite, a native of Cyprus,
36-1.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이 사람이 있으니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구브로(Cyprus)에서 출생했습니다. 레위족속(a Levite)입니다.
36-2.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요셉이 그의 이름입니다. “더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는 위로하는 데 탁월한 은사가 있었습니다. 훗날 바울이 회심했을 때, 그가 바울을 교회에 영접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And all who heard him were amazed and said, “Is not this the man who made havoc in Jerusalem of those who called upon this name? And has he not come here for his purpose, to bring them bound before the chief priests?”
사도행전 Acts 9:21
이것은 다메섹에서 각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갔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And when he had come to Jerusalem, he attempted to join the disciples. And they were afraid of him. For they did not believe that he was a disciple. But Barnabas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apostles and declared to them how on the road he had seen the Lord, who spoke to him, and how at Damascus he had preached boldly in the name of Jesus. So he went in and out among them at Jerusalem, preaching boldly in the name of the Lord.
사도행전 Acts 9:26-28
보십시오. 바나바가 바울을 따뜻하게 맞이하였고, 교회에 소개하였습니다. 이런 따뜻하고 너그러운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벌써부터 교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Sold a field that belonged to him and brought the money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37-1. 그가 밭이 있으매
그가 밭이 있습니다. 원래 있었지만,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서 은혜 받은 이후, 그 밭은 더 이상 그 밭이 아닙니다.
37-2.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보십시오. 그는 그것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한 바나바는 “선교여행”을 떠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이후에 그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 구브로를 향하여 그의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또 다시 묻습니다: 교회는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세력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거룩하고 아름답고 복된 성전입니다.
결론입니다.
재물에 대한 바른 관리는 “부활신앙”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영생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부활 아니고야 영생이 어찌 가능합니까?
이 세상은 모두 죽을 때 버리고 가야 하는 낡은 옷과 같습니다. 조만간에 결국 썩고 깨뜨려지고 망가지고 마는 육신의 삶입니다. 여기서 부자가 되는 것은 어떤 뜻이 있습니까?
부활소망으로써 영생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빛을 따라” 재물을 관리합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교회”가 맡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지체”로서 재물관리에 참여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For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Spirit. For to set 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로마서 Romans 8:5-6
지난 주중에 아들을 찾아 유레카로 버스 타고 올라가는 한인 할머니 말씀을 설교 중에 드렸습니다. 많은 성도들께서 합심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할머니가 이제부터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평안과 안식의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한 장면 보여주신 영생의 나라, 곧 천국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Here I raise my Ebenezer, Hither by Thy help I’m come.
And I hope, by Thy good pleasure, Safely to arrive at home.
찬송가 28장 중에서
우리가 가는 모든 길에서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모든 영혼을 편히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몸으로써 바르게 기능할 때, 세상은 소망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의 소금입니다.
성도는 교회를 통하여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길을 얻습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교회를 보십시오. 방방곡곡에 교회가 아름답게 섰습니다.
또한 온 세상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과 선교지를 보십시오. 성도들이 드리는 예물이 거룩하게 사용되는 귀한 증거입니다.
이런 “헌신”은 “부활신앙” 아니고는 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John 11:25-26
세상에도 “도네이션”이 있습니다. “명예”를 대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 드리는 “헌금” 내지 “예물”은 가난한 여인이 드린 동전 두 닢처럼 “무명”으로 드리는 예물일 수가 있습니다. 예물은 드리는 사람의 명예가 걸린 문제가 아닙니다.
예물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재물”이 “예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 때 드러나는 것은 드리는 자가 아니라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시며, 그분의 영광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통하여 “교회는 무엇인가?”가 드러납니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물질”의 파워를 어떻게 정복해야 하는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and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on the earth.”
창세기 Genesis 1:28
재물은 그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물은 다스려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재물을 어떻게 다스리는가를 가르쳐주는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은혜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무엇인가? 묻고 또 물으며 날마다 상고해야 하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사,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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