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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1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수정본)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891
  • 12-10-06 23:14

2012107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서 15:14-21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운전할 때는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도로를 읽는다는 말은, 마치 교과서를 읽듯이, 도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로가 구부러졌는지 직선인지, 바닥은 고른지 물기나 눈이 덮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자주 확인해서 앞차와 옆 차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졸음운전하거나 술 취한 차는 없는지, 뒤에 바싹 따라붙거나 크락숀을 울리며 달려드는 차는 없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운전 잘 하는 사람은 운전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로를 잘 읽어야 합니다.

영화관에서도 영화의 흐름을 읽어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였어?” 묻습니다. 그렇게 물을 거면 집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거지, 시간 쓰고 돈은 돈대로 다 내고 그 무슨 꼴입니까?

책을 읽듯이, 도로를 읽어야 하고 영화를 읽어야 합니다.

대화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자기 말을 해야지, 자기 말 할 순서만 기다렸다가 달려드는 사람과는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딴청 부리는 자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을 맞추면서 울 때 같이 제일 슬피 울고 웃을 때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웃어주는 사람, 아십니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1514절에서 21절까지 읽고 나서, “그래,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는데, 왜냐하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어. 그러니 나도 교회 있는 곳에는 개척하지 말아야지한다면, 그는 로마서를 읽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5:14-21은 로마서 15:1-33 중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 15장은 로마서 1-16장의 한 부분입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전체 흐름 중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돌아서서 출발지였던 안디옥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로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출발하여 제4차 선교여행을 기획, 스페인까지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 가려면 시간도 노력도 경비도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가면 그때부터 로마교회의 도움을 얻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알고 있다고 썼습니다. 바울이 새삼스럽게 무슨 교육을 할 만큼 문제가 있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습니다. 말자면 리마인드(remind) 시켜줄 모양으로 로마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는 로마도 남의 터인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를 지나서다음 행선지로 가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계획을 세운 것은, 첫째로 자기가 교회를 세워 교회가 존재하는 고린도 지방에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일군을 세웠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없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둘째로, 자기가 세우지 않았지만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호랑이 굴에 해당하는 로마는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서바나(스페인)는 상대적으로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따라서 고린도나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으로 가려는 목적을 세운 그에게 고린도나 로마는 남의 터인 셈입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무조건 교회가 있는 도시나 지방에서는 사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다면, 로마서를 잘 못 읽은 것입니다. 그가 떨치고 일어나 가야 할 사명, 이방인을 이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15:16)동력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역입니다. 그를 위하여 바울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의 행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1-3차 선교여행을 감당했고,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가려고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 은혜 때문에 바울은 생명을 얻었고, 매일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사역해야 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남의 터 위에...”

그러면 샌프란시스코는 교회가 많은데, 왜 하필 또 다른 교회입니까? 이 질문은 1994년 금문교회를 개척할 당시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2년 후 노회에서도 똑같은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일관된 대답은, “우리는 불신자들을 주목합니다였습니다.

여태까지의 논지 흐름을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만 보겠습니다. 바울의 목적은 분쟁을 피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형제들끼리 비방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왜 좋은 일 하는데 인간끼리 다툼이 일어납니까? 자랑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도 안에서 모든 자랑을 다 내려놓습니다(18).

자기를 내세울 때 싸움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면 다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옛날에 집착하게 되고, 과거의 영화를 확대재생산하여 오늘의 위안으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낳습니다. 그렇게 되면 먹느니 먹지 않느니, 이방인이니 이스라엘이니 하면서 분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교회에서 이런 분쟁을 겪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땅 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언제나 낯선 땅, 선교지입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한인들만 쳐도 교회에 나가는 비율이 20%나 될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는 소수의 한인들, 특히 그리스도인 한인들을 상대로 교회들 중에 무한경쟁의 불꽃을 튀기는 대신 불신자를 향해 문을 여는 교회로 성장해야 합니다.

로마서 전체를 보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은혜를 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왜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사역 대신 이방인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지의 땅 로마를 밟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끝내 지구의 끝스페인까지 가려고 하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터 위에 건축하는 행위는 곧 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끼리 물고 먹고 싸우는 대신, 불신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한인교회가 30개쯤 됩니다. 너무 많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거주 한인 중에 주일에 교회 나가는 인구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를 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믿지 않는 인구가 80%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 구원사역을 감당할 교회는 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교회들은 함께 힘을 다하여 80% 비신자 한인들을 구원하고, 더 많은 비신자 타종족들을 위한 선교의 깃발을 바로 여기서 높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금문교회는 바로 여기에서 하나의 말씀과 찬양이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는 다이내믹스를 발판으로 삼아, 그동안 콜롬비아, 러시아, 중국, 멕시코, 아프리카 등지로 교육선교의 기치를 높이 걸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전파의 행진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은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의 동력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보면 바울과 같습니다. 같아야 합니다. 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땅 끝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9:20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세상을 섬깁니다.

우리는 빼앗지 않습니다. 도리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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