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주일예배 "사마리아 추수" 요한 4'27-42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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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3-16 18:36
2013년 3월 17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사마리아 추수
요한복음 4:27-42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물어 이르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사마리아를 추수할 때가 왔습니다.
유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사마리아는 구원받아서는 안 될 나라였습니다.
죄인들과 창기들, 세리들과 병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마리아인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 여자를 만나셨고, 그에게 영생의 생수를 말씀하셨고, 영생을 얻는 참된 예배를 가르쳐 주셨으며, 그에게 당신이 바로 그 예배를 거룩하게 하는 “희생물” 어린양 메시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여자가 동네로 들어가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합니다. 그분께서 나의 모든 경험한 일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저 과거를 알아맞히셨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궁극적 관심”입니다. 내게 물을 청하시고, 내게 영생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으며,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그 예배를 가능하게 할 메시야가 바로 당신이시라는 것 등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정보 공유”가 아니라 “깨닫고 믿게 하시는 참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일은
“알림” 정도가 아니라, “진정한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후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마련하여 돌아왔을 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그러면서 어쩌면 바로 그 여자를 의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과 1.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동문서답”이었던 것이, 2.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에서도 역시 “동문서답”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예수님의 3. 제자들과 대화에서도 “동문서답”입니다.
이것은 무슨 사실을 말씀합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말씀을 이렇게 우리에게 주셨는데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믿는 사람도 하나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깨우치고 알고, 믿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목사의 가정에 태어났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자랐습니다. 교회에서 예배와 교육을 받았고,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했지만, 깨닫는 것이 늦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 했습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속담입니다. 나는 열을 가르쳐 주어야 하나를 겨우 알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는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순종”이며 “복음전도”입니다.
말씀순종하고 복음전도하면 안 잡수셔도 배부르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대부분 살기 위해 먹는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다 먹자고 하는 일이야. 밥 먹고 합시다!” 합니다.
그만큼 먹는 일이 중요합니다. 먹거리 문화는 그 나라, 그 민족 문화의 핵심입니다. 한국문화를 말할 때 “김치”를 뺄 수가 없습니다. 미국 와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한 영어가 “Korean food” 그리고 “Kimchi”였습니다.
그만큼 음식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사람이 아무리 큰 병에 걸렸어도 먹을 수만 있다면 회복이 가능합니다.
심령이 살기 위해서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갈급한 심령이라도 정결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그는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음식”을 말씀하셨을 때 “영의 양식”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육의 양식”을 말했습니다. “누가 먹을 것을 갖다 드렸는가?” 이래서 “동문서답”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순종이며 복음전도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면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의 뜻, 곧 복음전도를 행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아셨고,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양식입니다. 먹고 강건하게 되어 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순종과 복음전도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의 양식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어, 은혜받고 또 받아서, 그 말씀을 실천하러 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 말씀을 증거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아버지는 양식을 구해 오는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 말씀 순종에서 최전선에 서야 합니다. 그는 영의 양식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마련하는 자입니다. 아버지가 가져온 양식으로 밥하고 국 끓여내는 것입니다. 기도와 은혜의 예배를 준비하는 역할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가정이 날마다 영의 양식으로 풍성하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받았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 받은 이후, 이 여자는 스스로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의 마을에 찾아오시고 자기 같은 비천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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