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9-18-22 십자가


2022년 9월 18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목회기도 Pastoral Prayer

이사야 Isaiah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wounds we are healed.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even one—to his onw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이사야 53:5-6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성삼위 일체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 찬양 드립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죄악의 구덩이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로써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사,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도성이 온전하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게 하옵소서. 온 세상으로 나아가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빛이 되게 하옵소서. 후파에 선교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모든 열매를 주님께서 받으신 줄 믿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의 빛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눈물을 찬양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콜롬비아와 그 교회를 사랑하사 남미 대륙에 복음의 강물이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아시아 대륙에 예배의 자리가 크게 확장하게 하옵소서. 주님께 모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치유하시는 주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샌프란시스코 베이(SF Bay)에서 드리는 금문교회의 예배를 받으시사, 모든 성도의 예배를 통하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십자가 The Cross

사도행전 Acts 13:26-29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Brothers, sons of the family of Abraham, and those among you who fear God, to us has been sent the message of this salvation.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For those who live in Jerusalem and their rulers, because they did not recognize him nor understand the utterances of the prophets, which are read every Sabbath, fulfilled them by condemning him.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And though they found in him no guilt worthy of death, they asked Pilate to have him executed.

29. 성경에 그를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And when they had carried out all that was written of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tree and laid him in a tomb.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누구도 이런 은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그 값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러야 할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끝내 당신의 모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를 통해서 정결한 동물의 피를 뿌려 사죄의 은총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의 피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십자가 보혈”을 위한 “그림자”였습니다.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 중에 누가 하나님께서 진실로 당신의 아들을 나무에 달아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실 것을 참으로 믿은 자가 누구였습니까?


그렇게 불완전한 제사와 그렇게 확실한 곳에 서지 못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하심과 그 말씀의 온전하심을 따라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셨습니다. 인간들의 멸시와 천대 중에도 십자가의 길을 한 결 같이 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찌 다 표현하여 감사드리겠습니까?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입술을 열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그 지난날의 모든 죄에서 벗어나 복음 전도자로 우뚝 선 것도 오직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써 된 일입니다.


보십시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는 이제 “십자가” 사건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They are Israelites, and to them belong the adoption, the glory, the covenants, the giving of the law, the worship, and the promises. To them belong the patriarchs, and from their race, according to the flesh, is the Christ.

로마서 Romans 9:4-5a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더했습니다. 그 죄악의 중심에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 곧 이스라엘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심과, 그 사역과, 그 십자가와 그 부활 등 모든 구약성경에 예언으로 기록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곧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가 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오늘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오늘 금문교회 강단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를 직접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 이 두 가지 핵심에 집중했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같은데 주님께서 친히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놀라운 서사입니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in Pisidia)에서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주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승리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 부활의 아침을 맞습니다.


그런데 부활은 십자가가 전제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멘.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Brothers, sons of the family of Abraham, and those among you who fear God, to us has been sent the message of this salvation.


바울의 설교에서 이 시점은 “전환점”(turning point)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증거하는 것이 “초점”(key point)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듣는 자들을 “형제들”(brothers)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형제들” 중에는 유대인 외에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도 포함합니다. 어쩌면 바울과 바나바가 와서 말씀을 증거 하는 일로 궁금해서 모인 무리들도 있을 줄 압니다.


보십시오. 1. 아브라함의 후손과, 2.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들은 각각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입니다.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여기서 “형제들”이 “우리”로 바뀝니다. 설교자가 스스로를 “회중”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배 설교에서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For those who live in Jerusalem and their rulers, because they did not recognize him nor understand the utterances of the prophets, which are read every Sabbath, fulfilled them by condemning him.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모든 죄를 다 예수님께 씌운 자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1.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 2. 그들 관리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1.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 하신 말씀과, 2. 안식일마다 외우는 선지자들의 말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것이 오히려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증거 했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Surely he has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esteemed him stricken, smitten by God, and afflicted.

이사야 Isaiah 53:4


예수님께서는 죄가 있어서 벌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로써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로써 우리를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로써 우리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독한 자가 되셨습니다. 그로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wounds we are healed.

이사야 Isaiah 53:5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And though they found in him no guilt worthy of death, they asked Pilate to have him executed.


보십시오. 빌라도 앞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빌라도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After he had said this, he went back outside to the Jews and told them. “I find no guilt in im.”

요한복음 John 18:38b


그런데도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죽임”을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놓아드릴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나바라!” 하니, 바나바는 강도였더라.

They cried out again, “Not this man, but Barabbas!” Now Barabbas was a robber.

요한복음 John 18:40


보십시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29. 성경에 그를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And when they had carried out all that was written of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tree and laid him in a tomb.


이스라엘이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죄를 씌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 그를 기록한 말씀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For dogs encompass me. A company of evildoers encircles me. They have pierced my hands and feet.

시편 Psalm 22:1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Then Jesus, calling out with a loud voice, said,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And having said this he breathed his last.

누가복음 Luke 23:46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하나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십자가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This man went to Pilate and saked for the body of Jesus. Then he took it down and wrapped it in a linen shroud and laid him in a tomb cut in stone, where no one had ever yet been laid.

누가복음 Luke 24:52-53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And with a rich man in his death.

이사야 Isaiah 53:9d


부자의 무덤에 누이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확증하기 위한 장치로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보통 십자가 처형된 자들은 그 시신을 꺾어 골짜기에 버렸고, 불로 태웠습니다. 그럴 경우 예수님의 부활 증거가 조금이라도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을까요?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는 무덤에 예수님께서 홀로 누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 무덤은 비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보다는 아무래도 부활하신 예수님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모인 회중들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몸으로서 세우신 그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의 완성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린양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린 “제사”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이루어졌습니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으려던 모리아산이 오늘 “시온산,” 곧 “예루살렘”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그 본질이 그렇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Can the Ethiopian change is skin, or the leopard his spots? Then also you can do good who are accustomed to do evil.

예레미야 Jeremiah 13:23


이런 인간은 결코 스스로 달라질 수 없습니다. 불교 같은 명상종교는 스스로 구원하라, 하지만, 보십시오.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구원할 길이 전혀 없이 완전하게 타락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보십시오. 초림하신 주님께서 이제 재림하십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When Jesus had received the sour wine, he said, “It is finished!” And he bowed his head and gave up his spirit.

요한복음 John 19:30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살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살아날 길이 전혀 없는데,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요한복음 John 14:6


구원의 길. 이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열어내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후파에 다녀왔습니다. 우리같이 약한 교회가 콜롬비아와 멕시코,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아프리카에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계 최강국 미국의 본토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영어를 제2외국어로 사용하는 이민자 교회가!


그런데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을 따른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 제대로 날 것인가 염려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본 것은 넓은 들에 익은 곡식이었습니다. 황금물결 이루는 곡식들이 이미 곳간에 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주일학교가 부흥하고, 중고등부가 왕성하며, 젊은이들이 성전을 채우고 있습니다. 친교시간에 좁아서 친교실을 새로 짓자고 했습니다.


이번에 야외 농구장 공사를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나를 위한 헌금시간도 가졌는데, 어떤 이는 모아 두었던 동전을 한 자루 가지고 나왔습니다.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파교회에 모든 헌금을 돌렸습니다. 분명한 것은 후파에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고, 열매를 거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는 길이었습니다. 레딩을 거쳐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두 시간은 넘게 더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귀를 막고 있던 어떤 것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귀가 뻥 뚤렸습니다.


이 귀 문제로 한국에서 여덟 차례 병원에 갔고, 돌아와서도 두 차례나 의사를 만났습니다. 10월 말에 청력검사와 함께 귀 전문의를 만날 예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치료하신 것입니다!


물에 잠긴 느낌, 열차가 끊임없이 지나가는 환청에 시달린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맑고 깨끗합니다. 스피커 볼륨을 가장 낮게 해도 찬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이것이 나의 간증이라면, 여러분은 왜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나주셔서 일어난 사도 바울의 변화가 오늘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습니까? 힘이 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게 이제는 살리라!

For now we live, if you are standing fast in the Lord!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alonians 3:8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질병도 친히 지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난을 친히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입니다. 나는 이번 후파선교를 통하여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크고 깊게 경험했습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복음선교에 동참하면서 나와 같은 은혜를 누릴 줄 믿습니다. 우리를 땅 끝에 가게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확실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그의 삶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명을 다하여 증거하는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영광을 영원토록 돌립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놀라운 말씀을 깨닫게 하사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신 성령님의 감화감동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생명 다 하는 날까지 복음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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