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6-20#승천과 재림#행1:9-11


2021년 6월 20일

금문교회 아버지 주일예배 GGPC Fathers’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승천과 재림 The Ascending and the Second Coming

사도행전 Acts 1:9-11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And when he had said these things, as they were looking on, he was lifted up, and a cloud took him out of their sight.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And while they were gazing into heaven as he went, behold, two men stood by them in white robes.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And said, “Men of Galilee, why do you stand looking into heaven? This Jesus, who was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in the same way as you saw him go into heaven.”



오늘은 아버지주일(Fathers’ Sunday)입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거룩하게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입도록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축복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영적 가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도록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재림”은 기독교 신학의 몇 가지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재림(Second Coming)이라고 하고, 파루시아(Parousia)라고 헬라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모두 24회 사용된 단어인데, 그중에 7회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파루시아(Parousia)를 예수님의 재림과 동일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사도신경”(Apostles’ Creed)의 해당 대목입니다.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사도신경”을 이어 인용합니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계속 영원히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꽃이 지고 나무가 고사목이 되는 것처럼, 지구도 종말이 오겠지만, 예수님의 재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늘 말씀에 기초한 우리의 바른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임박한 재림신앙”을 품었습니다. 처음 기록한 “데살로니가전서”가 임박한 재림이 그 초점인 것이 좋은 예입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Now concerning the times and the seasons, brothers, you have not need to have anything written to you. For you yourselves are fully aware that the day of the Lord will come like a thief in the night. While people are saying, “There is peace and security,” then sudden destruction will come upon them as labor pains come upon a pregnant woman. And they will not escape.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alonians 5:1-3


그런 신앙생활이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가 신앙을 지키는 길입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징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From the fig tree learn its season. As soon as its branch becomes tender and puts out its leaves, you know that summer is near. So also, when you see all these things, you know that he is near, at the very gates.

마태복음 Matthew 24:32-33


오늘 세계의 문제는 크게 인간과 자연환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인간의 삶이 전과 정말 다릅니다. 사랑이 식어가고, 증오와 범죄가 하늘을 찌릅니다. 교만하고 사악합니다. 가정이 무참히 파괴되고,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가정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2. 전쟁의 양상을 보십시오. 대도시에 핵무기 하나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원시시대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3.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아름다운 해변이 플라스틱 조각들과 봉지들로 덮이고 있습니다. 오염된 강물을 보십시오.


4. 기후변화를 보십시오. 녹고 있는 빙하, 메말라가는 호수와 강물. 엄청난 속도로 사라져가는 숲. 세상의 종말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징조”입니다. 이런 징조를 보고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재림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종말의 때와 예수님께서 오실 때는 일치합니다. 그러나 종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구가 앞으로 수천 년은 더 갈 수 있다고 말해도,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내일 오실 수도 있습니다. 오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이 세상의 종말이며 심판의 때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알파이신 하나님께서 오메가이십니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를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For as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that I make shall remain before me, says the Lord, so shall your offspring and your name remain. From new moon to new moon, and from Sabbath to Sabbath, all flesh shall come to worship before me, declares the Lord. And they shall go out and look on the dead bodies of the men who have rebelled against me. For their worm shall not die, their fire shall not be quenched, and they shall be an abhorrence to all flesh.

이사야 Isaiah 66:22-24


보십시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거기는 벌레도 죽지 않습니다. 거기는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요한계시록 Revelation 1:8


재림은 “심판의 날”입니다. 사람이 저지른 모든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고, 불의가 정의로써 물러가게 되고 정리될 것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죄악의 세상이 한없이 이대로 간다는 것은 성경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계속 지켜보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죄악을 심판하실 날이 이를 것입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은 “구원의 날”입니다. 세상에서 약한 자가 되어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날이 되어도, 우리 영혼은 평안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겠네.

And, Lord, haste the day when faith shall be sight. The clouds be rolled part, but the whole, the trump shall resound, and the Lord shall descend, Even so, it is well with my soul.

찬송가 413장 중에서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And when he had said these things, as they were looking on, he was lifted up, and a cloud took him out of their sight.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 직전에 주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He said to them, “It is not for you to know times or seasons that the Father has fixed by hos own authority.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has come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 of the earth.”

사도행전 Acts 1:7-8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바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 고유의 권한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But concerning the day and the hour no one knows, not even the angels of heaven, nor the Son, but the Father only.

마태복음 Matthew 24:36


이것은 “재림의 시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사도행전 1장의 컨텍스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쭌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 시기입니다. 그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있고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알기 위해 애쓰는 것은 “헛고생”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허락된 것에 게을리 하는 안 됩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But his master answered him, “You wicked and slothful servant!”

마태복음 Matthew 25:26a


한 달란트 받았던 자에 대한 질책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드렸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He also who had received the one talent came forward, saying, “Master, I knew you to be a hard man, reaping where you did not sow, and gathering where you scattered no seed. So I was afraid, and I went and hid your talent in the ground. Here, you have what is yours.”

마태복음 Matthew 25:24-25


이 사람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주인은 결코 굳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심은 것을 거두고, 헤친 후에야 모았습니다. 보십시오. 인간의 영혼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구원의 열심을 보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순종으로써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의 가장 큰 문제는 마땅히 알아야 할 “하나님 지식,” 곧 “신학”(theo-logy)을 얻지 못한 데 있습니다.


우리의 알 바였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알 바가 아닌 일을 추구하여 시간을 다 보낸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마땅히 알 바를 구하라! 그것은 “진리의 성령님”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If you then, who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the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누가복음 Luke 11:13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것입니다. 구할 것을 구하고, 허락되지 않은 것은 미련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이후 승천의 때가 이르도록 제자들은 세상의 이치를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

Lord, will you at this times restore the kingdom to Israel?

사도행전 Acts 1:6b


세상 나라 이스라엘.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닌” 것입니다. 1948년 중동 지역에 재건된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전혀 다른 정치적 집단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리가 알 바가 무엇입니까? 전쟁과 살상을 일삼는 나라들 중 그 신생국가가 무엇이 다릅니까?


오직 우리가 알 바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그것,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도록, 그 마지막 순간까지 당부하시고 명령하신 것이 “하나님의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오늘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알 수 있고, 알아야 하는 모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것은 건강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가난해서도 아닙니다. 세상 학식을 다 가지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수치입니다.


그 말씀을 깨닫는다면, 그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의 정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to the division of soul and of spirit, of joints and of marrow, and discerning the thoughts and intentions of the heart. And no creature is hidden from his sight, but all are naked and exposed to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

히브리서 Hebrews 4:12-13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신 말씀이라면, 그것은 “유언”에 해당합니다. 꼭 지키고, 반드시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has come upon you.

사도행전 Acts 1:8a


예수님의 당부 그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 of the earth.

사도행전 1:8b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우리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재판 때 모두 부인하고 저주하며, 도망쳐 버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증인 된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And while they were gazing into heaven as he went, behold, two men stood by them in white robes.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흰 옷 입은 두 사람, 곧 “천사들”이 그들이 곁에 섰습니다. 그들인 하늘의 메신저들이었습니다.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And said, “Men of Galilee, why do you stand looking into heaven? This Jesus, who was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in the same way as you saw him go into heaven.”



재림신앙은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믿음은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초대교회가 모든 환란을 이긴 궁극적인 힘은 재림신앙에서 났습니다. 어려움을 견디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곧 찾으러 오신다는 믿음으로 기다림을 이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리!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Our Lord, come!

1 Corinthians 16:22c


마라나타!


이 신앙이 성도의 거룩함을 지켜내는 동력입니다.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믿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전도할 때, 오시는 예수님을 함께 기다리는 초청입니다.


다섯 명의 미련한 처녀들은 등에 기름이 없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진정으로 기다리지 않은 것입니다.


기름을 가진 처녀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마치 타고 또 타서 재가 되어 남기는 것이 없는 장작불처럼, 예수님 기다림에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림에는 지치지 않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부재의식”이나 “궁핍함”의 고통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와 동행하시며 표적으로써 우리가 증거 하는 복음을 확증 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동행(waking together with)과 기다림 (waiting for).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신비입니다.


구름 타사고 마치 승천하심으로써 우리를 떠나신 주님께서 모든 표적을 통해 동행해 주시는 신비와 같습니다.


나는 내가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이 하나님 아버지께 참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나는 금문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 감사합니다.


언제 다시 오실까요. 구름타고 다시 오실 때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좋은 신앙인일수록 “당장” 오실 줄 믿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오늘 예수님 오실 날을 준비합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밤에 주님 오실 준비를 합니다.


나와 주님 사이에 “어떤 시간의 간극”도 없는 그리스도인. 그것이 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나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금문교회 성도 여러분을 그렇게 준비시킵니다. 기도에 항상 깨어있기를 도전합니다.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날 준비를 매일 합니다. 누가 발견하더라도 괜찮도록 속옷까지 매일 갈아입습니다.


이것 보세요. 나는 주님의 재림을 날마다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오셔야 나의 모든 삶의 순간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 아니고는 가쁨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문제는, 그들의 고민은 결국 예수님을 기다리는 데서 다 풀려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


1953년 파리의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된 “부조리극”의 대명사가 된 사무엘 배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이 희곡은 인간은 궁극적인 존재를 기다리는 삶이라는 점을 주목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고도가 “하나님”이라고 했고, “자유”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베케트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끼리 기다리는 것은 허무합니다. 만나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것이 그게 전부입니까?


영원으로 초대 받은 우리는 찰나가 아니라 영원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to man’s heart.

전도서 Ecclesiastes 3:11a-b


영원. 이것이 아니면 인생은 “허무하고 또 허무”한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What does man gain by all the toil at which he toils under the sun?

전도서 Ecclesiastes 1:3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I have seen everything that is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a striving after wind.

전도서 Ecclesiastes 1:14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 아니라면, 인생은 절망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요한복음 John 11:25-26


그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맛본 행복은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영원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는 날은 또한 지나가 버릴 날이 아니라 영원히 있을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말씀으로 분명하게 기록하신약속입니다. 신실한 약속입니다.


이성봉 목사님 작사한 옛날 찬송가 한 토막입니다.


신실한 약속 붙잡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Holding the faithful promise, Waiting for a more moment!

합 313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곧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진 신앙인은 그 아름다운 기다림 중에 거룩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Your father Abraham rejoiced that he would see my day. He saw it and was glad.

요한복음 John 8:56


보십시오. 아브라함도 예수님 볼 것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뵈었고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증거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은 어땠을까요? 그의 모든 시편은 주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I remember the days of old. I meditate on all that you have done. I ponder the work of your hands. I stretch out my hands to you. My soul thirsts for you like a parched land.

시편 Psalm 143:5-6


마른 땅이 하늘을 향하여 그 가슴을 열고 비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Answer me quickly, O Lord! My spirit fails! Hide not your face from me, lest I be like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시편 Psalm 143:7


하나님을 향한 이 그리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As a deer pants for flowing streams, so pants my soul for you, O God.

시편 Psalm 42:1


사슴에게 시냇물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 영혼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입니다.


꽃들도, 새들도, 산도 바다도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마커스의 찬양 한 곡 들어 보십시오.


이곳에 생명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지않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넒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그날에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보게 되리라.

마침내 꽃들이 피고

영광의 주가 오시리라.


이 간절한 기다림은 성경말씀에서 났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I waited patiently for the Lord. He inclined to me, and heard my cry. He drew me up from the pit of destruction, out of the miry bog, and set my feet upon a rock, making my steps secure.

시편 Psalm 40:1-2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곧 시들어 바람에 검불로 날리는 들풀보다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아. 허무한 것이 인생입니다. 쌓아올린 나뭇가지 위에 시신을 태우는 인도(India)의 풍경에서, 자식들을 잃고 벽에 머리를 박고 울부짖는 젊은 팔레스타인(Palestine) 아버지의 어깨에서, 우리는 짙고 깊은 슬픔을 떼어낼 도리가 없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y of vanities, says the Preacher. All is vanity.

전도서 Ecclesiastes 12:8


예수님께서 우리의 참 소망이십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소망이 없을 때 이미 죽은 것입니다.


나는 어제 아폴리네리(Appolinaire) 목사님 환송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SFO)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짐을 끌거나 밀고 가는 사람들. 인사하고 헤어지는 사람들. 사진기 앞에 웃음을 보이는 사람들.


옛날 찬송가 한 토막입니다.


관광하는 모든 사람 구름같이 둘러

떼를 지어 에워싸고 바라보고 있네.

곁눈 한번 팔지 말고 빨리들 나오세.

영광을 갚아주실 구세주 계시네.

옛날 찬송가 104


세상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길 찾아 떠나라고 하지만, 보십시오. 인생이 그 길을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잃은 양을 찾아 오늘도 우리에게 오시는 내 예수님을 나는 기다립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Surely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요한계시록 Revelation 22:20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사람은 순간에 집착할 때 시험에 빠집니다. 늙은 파우스트가 유혹에 빠진 것은 순간에 붙들린 까닭이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y eyes. How then could I gaze at a virgin?

욥기 Job 31:1


하나님 없는 모든 시간이 그렇지만 젊음은 순간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인생의 가장 큰 유혹은 젊음에 대한 향수, 집착입니다. 영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영원한 삶, 곧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John 3:16


영생을 사모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모든 소망이 영생에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죄악의 길을 벗어나서, 죽음이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서 나옵니다.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주일을 맞아,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가정의 사랑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재림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벗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재림소망이 성도의 가는 길에 방향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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