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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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십자가와 부활 1# 사도행전 2:22-24


2021년 8월 1일 성찬식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십자가와 부활 1

사도행전 2:22-24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Men of Israel. Hear these words: Jesus of Nazareth, a man attested to you by God with mighty works and wonders and signs that God did through him in your midst, as you yourselves know--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This Jesus, delivered up according to the definite plan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crucified and killed by the hands of lawless men.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God raised him up, loosing for him to be held by it.



베드로는 그의 첫 설교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첫 설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일생 주제는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이는 사도바울에게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일생 증거 하는 일로 살았습니다.

무릇 모든 설교자에게 이 두 가지는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구약과 신약성경이 그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설교에서, 우선 그들이 성령 충만 받은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 했습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전한 바,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베드로는 본격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Men of Israel. Hear these words: Jesus of Nazareth, a man attested to you by God with mighty works and wonders and signs that God did through him in your midst, as you yourselves know--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온 세상에 퍼져있던 디아스포라도 해당합니다. 절기를 맞아 예배드리러 온 많은 사람들, 언어가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면서 베드로는 “이미” 땅 끝까지 나간 셈입니다.


오늘 우리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사역합니다. 이 지역은 온 세계가 모여드는 곳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1940년대 백인 인구가 92.5%였습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백인이 48%, 아시안이 33%, 흑인이 6%, 히스패닉이 15%입니다. 11년이 지난 현재는 훨씬 더 다양화 되었을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가정에서 영어를 쓰는 인구는 55%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매일 일상생활에서 불편하지 않게 살아가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데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Hear these words! As attested to you!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왕의 도로(El Camino Real)가 중심을 흐르고 있습니다. 미션벨(Mission Bells)이 캘리포니아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에 이르지 못한, 상식 수준의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Philip said to him, “Lord, show us the Father, and it is enough for us.” Jesus said to him, “Have I been with you so long,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Philip?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요한복음 John 14:8-10a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안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I and the Father are one!

요한복음 John 10:30


결국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 하는 설교자입니다.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This Jesus, delivered up according to the definite plan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crucified and killed by the hands of lawless men.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성경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장면에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법 없는 자들, 곧 로마인의 손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로써 그들은 또 다른 죄를 더한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실 수 있는가? 그러면 삼위일체는 어떻게 되는가? 오히려 예수님이 아니라 마귀가 죽은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이단들이 현혹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분명히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 예언된 일이고, 신약이 증거 하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께서 “속죄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가 사함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이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믿음이 절대로 중요합니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누구이신가?


베드로는 누구였습니까? 십자가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십자가의 길을 막았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길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예고하실 때, 그는 정면에 서서 반박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But he turned and said to Peter, “Get behind me, Satan! You are a hindrance to me. For your are not setting your mind on the things of God, but on the things of man!”

마태복음 Matthew 16:23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물리치실 때, 그는 삶의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방금까지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셨고, 그가 한 신앙고백의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아, 물러가라!” 하신 주님!


그만큼 십자가 죽으심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길을 베드로는 보았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세 차례나 십자가와 부활의 예고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Mark 8:31

마가복음 Mark 9:30-32

마가복음 Mark 10:32-34


특히 세 번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앞서서 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Saying, “See, we are going up to Jerusalem. And the Son of Man will be delivered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they will condemn him to death and deliver him over to the Gentiles. And they will mock him and spit on him, and flog him and hill him. And after three days he will rise.”

마가복음 Mark 10:33-3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확신하고, 그 뜻을 붙들며, 자기 스스로가 예수님의 명령 그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데 결코 이르지 못했습니다.


2.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재판 받으실 때 세 차례나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야바의 뜰에 계실 때 그는 여종들과 곁불 쬐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세 차례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Then he began to invoke a curse on himself and to swear, “I do not know the man.” And immediately the rooster crowed.

마태복음 Matthew 26:74


3.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곁을 지켜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이름도 생소한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나서서, “제가 지겠습니다!”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4.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 그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도망친 제자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And a young man followed him, with nothing but a linen cloth about his body. And they seized him. But he left the linen cloth and ran away naked.

마가복음 Mark 14:51-52


그런데 그가 설교자로 일어서서, 그 첫 번째 메시지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의미로는 이 변화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붙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그를 감화 감동하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변화는 하나님의 영으로써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습니까?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이 사망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이 모두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속죄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인생은 단 한 사람도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죽되, 영원한 죽음을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벼운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존귀한 주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이제 그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모두를 향하여 십자가를 증거 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증거 하기!


이것은 위험한 일이며, 사람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죄를 사해주시는 십자가는 모든 이들이 환영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십자가를 거부할까요?


죄악이 그렇습니다. 죄악을 빌미로 인간을 사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사탄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리말씀을 거역하고, 태우고, 땅에 묻고,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진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설교자가 되어 십자가를 선포한 것이, 우리 모두에게 “부르심”이 되었고, “사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God raised him up, loosing for him to be held by it.


이제 두 번째 주제, 곧 “부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빈 무덤에 가서 들여다보았으면서도 부활신앙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Then Simon Peter came,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tomb. He saw the linen cloths lying there, and the face cloth, which had been on Jesu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folded up in a place by itself.

요한복음 John 20:6-7


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On the evening of that 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the doors being locked where the disciples were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요한복음 John 20:19


3. 도마처럼 대놓고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믿지도 않았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in his hands the mark of the nails, and place my finger into the mark of the nails, and place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ever believe!

요한복음 John 20:25a


4.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But go, tell his disciples and Peter that he is going before you to Galilee. There you will see him, just as he told you.

마가복음 Mark 16:7


그런데 그는 갈릴리를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Simon Peter said to them, “I am going fishing.” They said to him, “We will go with you.” They went out and got into the boat, but that night they caught nothing.

요한복음 John 21:3


이런 태도는 “요나”(Jonah)에 비교가 가능합니다. 니느웨(Nineveh)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Tarshish)로 가려 했던 요나와 달리 같은 지역, 곧 갈릴리로 갔지만, 그러나 그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그 갈릴리는 “부활의 능력을 확인”하는 자리이며, “새 사명”을 주시는 자리입니다.


새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And Jesus said to them,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become fishers of men!”

마가복음 Mark 1:17


그런데 그동안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부활의 주님께서 다시 그 사명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옛날로 돌아가는” 갈릴리 행을 택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I am going fishing!

요한복음 John 21:3a


그런 그 베드로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180% 변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부활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바,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사람 스스로가 아닙니다. 그를 지으신 분, 곧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때 하나님의 성령님에 충만한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Men of Israel! Hear these words!

사도행전 Acts 2:22a


우리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성령 충만의 길입니다.


우리 자신이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합니다.


1. 여태까지는 자기를 버리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살았습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3.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4.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뵙고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5. 부르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우리의 불신과 우리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훨씬 높고 훨씬 컸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써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요한복음 John 21:15b


내 어린 양을 먹이라!

Feed my lambs!

요한복음 John 21:15d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교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와 부활에 모든 것을 집중했습니다.


오늘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는 본래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친교단체도 아니고, 정치하는 그룹도 아닙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입니다.


No Cross, No Crown!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그런 속담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없이 부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물”(Sacrifice)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무덤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 일에 골몰하지 맙시다. 대신 십자가와 부활, 이 두 가지 중심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면서.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오늘 베드로의 설교를 듣습니다. 낙오자요 배반자였던 그가 성령 충만 받고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베드로를 변화시키신 성령님께서 오늘 저희를 변화시키실 줄 믿습니다. 주여, 성령 충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맡기신 양을 위하여 헌신하여 목양하는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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