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8-29#예수 그리스도 이름#행 3:1-10


2021년 8월 29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GGPC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Pastor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Jesus Christ

사도행전 Acts 3:1-10


1. 제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Now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hour of prayer, the ninth hour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And a man lame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whom they laid daily at the gate of the temple that is called the Beautiful Gate to ask alms of those entering the temple.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Seeing Peter and John about to go into the temple, he asked to receive alms,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And Peter directed his gaze at him, as did John, and said: “Look at us!”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And he fixed his attention on them, expecting to receive something from them.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But Peter said, “I have no silver and gold, but what I do have I give to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rise up and walk!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And he took him by the right land and raised him up. And immediately his feet and ankles were made strong.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And leaping up, he stood and began to walk, and entered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leaping and praising God.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And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praising God,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And reconized him as the one who sat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asking for alms.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1. 예루살렘의 “어떤” 공간에서 첫 예배를 드린 사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성전에서 증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의 영적 패턴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예루살렘까지 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특히 성전에서 호산나 입성하실 때 유대인들에게 잡히신 것처럼, 이제 사도들도 성전에서 유대인 반대자들과 정면충돌하게 될 일이었습니다.


오늘 일어날 기적사건도 그 일면은 사도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하나님의 복음은 때때로 반대자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핍박 중에 오히려 빛나는 것입니다! 빛이 어둠에 가장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제 그 핍박의 정도가 높아지면서 교회는 예루살렘을 떠나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핍박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드높은 산성처럼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산성입니다.


이런 영적 패턴은 바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파송 받아 땅 끝까지 사역하다가 예루살렘, 그것도 성전에서 잡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갈등을 빚는 자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신 것처럼!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당신의 아들, 메시야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요한복음 John 4:22b


구원의 소식은 예루살렘/시온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입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쉬지 아니할 것인즉

For Zion’s sake I will not keep silent, and for Jerusalem’s sake I will not be quiet, until her righteousness goes forth as brightness, and her salvation as a burning torch.

이사야 Isaiah 62:1


2. 정한 시간에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유대인 시각으로 제9시, 곧 오후 3시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기도의 “장소”와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의 여러 문들 중에 “미문”이 있습니다. 미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어떤 걸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구걸했습니다.


아무것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구걸하는 사람은 특별한 것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잔돈”일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대신 예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걸인에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줍니다!” “일어나 걸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이름은 놀랍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시는 은혜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The reward for humility and fear of the Lord is riches and honor and life.

잠언 Proverbs 22:4


현재 이 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어나 걷고 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필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잔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더 많은 돈”을 꿈꾸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돈” 말고 다른 소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에게 선포했습니다:


“일어나 걸으라!”


보십시오! 그 사람은 일어났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밝히 아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그 걸인을 “치료”한 것은, 그가 “예배를 드리도록 도운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기 위하여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거기가 핍박의 자리가 되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은 분명하고 뚜렷하게 세상에 선포되는 것입니다.



1. 제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Now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hour of prayer, the ninth hour


베드로와 요한은 “시간을 정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도 정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When Daniel knew that the document had been signed, he went to his house where he had windows in his upper chamber open toward Jerusalem. He got down on his knees three times a day, and prayed, and gave thanks before his God, as he had done previously.

다니엘 Daniel 6:10


오늘 우리는 기도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And a man lame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whom they laid daily at the gate of the temple that is called the Beautiful Gate to ask alms of those entering the temple.


나면서 못 걷게 된 걸인. 아무도 그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여태까지 그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 가는 길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그들은 “그가 구걸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은 결국 거기까지입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Seeing Peter and John about to go into the temple, he asked to receive alms,


이제 그 걸인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이 단지 “돈”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이것은 이 하나의 사건에서 추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은 특히 “돈”과 “그의 세력”이 하나님의 복음과 어떤 상충하는 효과를 내는지 보이고 있습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은 “청지기”의 특별한 사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돈과 관계된 자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양상을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돈으로 성령충만을 사려는 시몬이라는 마술사의 시도나 (사도행전 8:9-24), 돈을 벌어주는 귀신 들린 여종을 낫게 했다가 감옥에 갇히는 핍박을 당하게 된 빌립보에서의 사역(사도행전 16:16-40), 그리고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데메드리오 은장색이 아ㅔ미 신상 사업에 위기를 느껴 바울과 그 일행을 폭행한 사건(사도행전 19:21-41) 같은 것입니다.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는 이런 문제를 계속 씨름하고 지나왔습니다. 1517년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교회는 돈으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지난 500년 개신교 역사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대형교회의 교회세습이나 교단정치의 어둔 그늘은 대개 돈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모든 것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 걸인을 성전 문앞에서 만난 사건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금과 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교회와 사역자의 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우리에게 주시는 진지한 명령입니다.


이쯤해서 왜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 “전대”나 “두벌 옷”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And he said to them, “Take nothing for your journey, no staff, nor bag, nor bread, nor money. And do not have two tunics.

누가복음 Luke 9:3


파송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70인을 파송하셨을 때도 “전대”나 “배낭”을 가지지 말게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1-16).


교회는 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교회의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And Peter directed his gaze at him, as did John, and said: “Look at us!”


보통 동전을 주는 사람은 걸인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그를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걸인의 주목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를 보시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며, 긍휼입니다.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And he fixed his attention on them, expecting to receive something from them.


그 걸인은 아직도 자기의 필요에 매여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인가? 그가 바라보는 것은 결국 물질이었습니다.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But Peter said, “I have no silver and gold, but what I do have I give to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rise up and walk!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어째서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 곧 돈이 없었을까요? 벌써 “코이노니아”로 교회 모든 식구들과 나눈 것입니다! Empty handed!


그는 그가 없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그가 돈 없어서 사역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역의 시작은 “코이노니아 비움”으로부터입니다.


대신 그는 그가 있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but what I do have I give to you!


새로운 “코이노니아”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몰랐던 사람들이 성전 앞에서 만났습니다. 영적인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성령님의 교통하게 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을 구하던 그가 가장 큰 것을 얻었습니다. 돈에서 힐링으로! 세상에서 구원으로!


예수님의 이름은 그를 일어나 걷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하는 “당신의 이름”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In My name... they will lay thei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마가볶음 Mark 16:18b


동전을 주었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그는 일어났습니다. 보십시오.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And he took him by the right land and raised him up. And immediately his feet and ankles were made strong.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오른 손을 잡이 일으켰습니다.


그 손은 구걸을 위하여 내밀던 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손에 동전 대신에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가 일어섰습니다! 할렐루야!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And leaping up, he stood and began to walk, and entered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leaping and praising God.


보십시오. 그는 섰습니다. 그는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전 문 앞에 있으나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였습니다. 유대인 성전법은 저는 자에게 성전출입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율법의 권세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For the law of the Spirt of life has set you free in Christ Jesus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로마서 Romans 8:2


그는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일평생 사람을 바라보던 그가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걸으며 뛰며 찬양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And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praising God,


이 사건은 모든 이들에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길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온 천하에 선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And reconized him as the one who sat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asking for alms.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그들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놀람이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기 “설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설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를 설교하겠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길”입니다. 병이 들어 못 가면, 하나님께서 그 병을 고쳐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하면 그 물질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을 벗어나 가나안에 이르는 40년 여정을 계속 한 것은, 그들이 거기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시편 Psalm 23:1


이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은 언제나 “출애굽 때의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때 “순례자”였습니다.


성전 가까이 있으면서도 정작 성전 안에서 예배하지 못하던 이 사람!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은 그가 일어나 걸으면서 성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지금 여기 예수님께서 계시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까?


이것은 답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줍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And beginning with Moses and all the Prophets, he interpreted to them in all the scriptures the things concerning himself.

누가복음 Luke 24:27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성경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모든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를 모릅니다. 물질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필요로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당신이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이것을 일깨워야 합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이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Come now, you rich, weep and howl for the miseries that are coming upon you. Your riches have rotted and your garments are moth-eaten. Your gold and silver have corroded, and their corrosion will be evidence against you and will eat your flesh like fire.

야고보서 James 5:1-3


물질은 정도를 넘으면 강도로 돌변합니다. 그것은 불처럼 육체를 파멸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세에, 이 세상은 재물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걸인에게 “동전”은 삶의 필수품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필수품”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이 부유해질수록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건물 하나 가진 사람은 두 개 가진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이 걸인은 “보통사람”입니다. 모든 보통사람들은 다 “물질”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필요라고 착각합니다.


물질은 “자족의 은혜”가 있어야 유익합니다. 자족이 없으면 물질은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예배의 길은 모두에게 필수입니다.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인종이나 배경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과 함께 멸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And there is salvation in no one else, for there is no other name under heaven given among men by which we must be saved.

사도행전 Acts 4:12


이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한 것은 대단히 적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가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날마다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And Jesus said to him,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where to lay his head.”

마태복음 Matthew 8:20


그런데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셨고, 죽을 사람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And he said, “Bring them here to me!”

마태복음 Matthew 14:18


오병이어로써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당신의 몸과 당신의 피를 모두 주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This is the bread that comes down from heaven, so that one may eat of it and not die.

요한복음 John 6:50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신비한 삶, 곧 그 비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As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As poor, yet making many rich. As having nothing, yet possessing everything.

고린도후서 1 Corinthians 6:10


이런 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 그 믿음의 비밀을 가졌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태도는 이것입니다. 필요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의 필요를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돈이 없는 자”였으나,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난 걸인의 필요를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돈을 위하여 구걸”했으나, 그들은 “우리를 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우리를 보라!


그리고 눈과 눈이 마주하고, 그에게 “영적인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모든 행위가 “책임회피”입니다. 동전을 주겠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하는 핑계입니다. 이 경우 돈이 핑곗거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보고, 그의 진정한 필요를 환기시켜 주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언제까지 그 대문앞에 앉아서 구걸하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그는 일어나야 할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찬양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는 동전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사랍니다. 그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아본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물질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우리는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물질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를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초대”해야 합니다.


함께 갑시다. 아버지 집에.

가서 예배를 드립시다.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전도”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And those who are ise sha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sky above. And those who turn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ever and ever.

다니엘 Daniel 12:3


지난 주중에 읽은 신문기사입니다. 한국 불교의 승려가 하바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처승으로, 영국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두었습니다.


하바드대학과 예일대학. 어떤 학교들입니까?


아이비리그 대학 중의 하나인 하바드대학은 기독교인은 지식이 부족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책과 현금을 기증한 청교도 목사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딴 미국 교육역사에처 처음 대학교다.

위키페디아, 2021년 8월 27일


1701년 목사들이 세이브룩에 세운 칼리지어트 스쿨(Collegiate School)에서 비롯된 대학이며, 미국의 고등기관 중 하바드, 윌리엄 앤 메리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다. 미국의 여러 초창기 대학이 그렇듯 이 학교도 당초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10여명의 목사가 설립했다가 차츰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

위키페디아, 2021년 8월 27일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는 타종교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채플에 기독교 예배 참석자는 거의 없습니다. 불교 모임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기독교 대학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구실을 바르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들 “물질”을 약속하는 학교들이 되었습니다. 경영학 같은 교실이 번성합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새로 나야 합니다. 물질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나와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교회”가 해야 합니다. 학교기관은 행정 간섭을 받는 약점이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최초이며 궁극적인 하나님의 집입니다. 최후의 영적 보루입니다. 교회가 계속 세워져야 합니다.


큰 교회가 쪼개져서 작은 교회들로 새로 나야 합니다. 세포 분열하는 것이 생명의 근본인 것과 같습니다. 큰 교회는 개척교회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사명자는 교회 개척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개척교회 출석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And these signs will accompany those who believe. In my name they will cast out demons. They will speak in new tongues. They will pick up serpents with their hands. And if they drink any deadly poison, it will not hurt them. They will lay their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마가복음 Mark 16:17-18


오늘 말세지말을 당한 때,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병이 물러갔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던 사람이 걷고 뛰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만 보던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의 집에 함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그 목적이 이루어집니다. 성경말씀의 약속 그대로. 아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필요를 채우며, 끝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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