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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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의롭다하신기도#누가복음 18:9-14

  • 작성자 : pastor
  • 조회 : 2,048
  • 19-07-19 23:56

201972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의롭다 하신 기도 Prayer with Justification

누가복음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어제 토요일은 새벽예배 마치고 교회 홀로 남아 설교문도 마무리 하다가, 뜰을 거닐었습니다. 아름다운 햇살에 무궁화 꽃이 피어난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홈페이지 사진: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Light is sweet, and it is pleasant for the eyes to see the sun.

전도서 Ecclesiastes 11:7

나는 여러분이 구원의 즐거움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More than that, we also rejoice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reconciliation.

로마서 Romans 5:11

기도를 어떻게 할까요? 지난 주일은 주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매일 가서 간청했던 경우를 들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간청을 들었다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기도를 왜 듣지 않으실까,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런 자의 기도는 아무리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를 의롭다 하시지 않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기도는 따로 있습니다.

무릇 모든 기도의 응답은 의롭다 하심이 그 핵심입니다. 다른 어떤 물질을 구함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필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문제는 생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처럼 분명한 것이 또 있습니까?

그의 생명을 구함이라면, 그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너는 이제 의롭다!”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음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the one whose transgression is forgiven, whose sin is covered. Blessed is the man against whom the Lord counts no iniquity, and in whose spirit is no deceit.

시편 Psalm 32:1-2

기도하여 그의 죄가 사함 받았다면,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모든 기도의 초점은 기도자의 구원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I acknowledged my sin to you, and I did not cover my iniquity; I said, “I will confess my transgressions to the Lord.” And you forgave the iniquity of my sin.

시편 Psalm 32:5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The Pharisee stood by himself and prayed: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robbers, evildoers, adulterers--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누가복음 Luke 18:11

얼마나 교만한 기도입니까? 바리새인의 자세는 서서였습니다. 그는 무릎 꿇고 엎드리는 대신 섰습니다. 엎드릴만한 죄가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따로기도했습니다. 세리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에서 구원 받아야 할 긴박성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기도입니까? 기도는 예배에서처럼 영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랑이라니! 무릇 자랑하는 자는 자기변화를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가 자기변화를 소망합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것을 강조했습니다. 토색(강탈), 불의, 간음 등을 행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구분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과 다르다고 스스로 구별하는 행위는 바르지 않습니다. 그들을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을 차별한 것입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누가복음 Luke 18:12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금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득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차례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Why have we fasted, they say, and you have not seen it? Why have we humbled ourselves, and you have not noticed?

이사야 Isaiah 58:3a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들이 이사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Your fasting ends in quarreling and strife, and in striking each other with wicked fists. You cannot fast as you do today end expect your voice to be heard on high. Is this the kind of fast I have chosen, only a day for people to humble themselves?

이사야 Isaiah 58:4-5a

금식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목적입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내려오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금심 궁에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질입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Is not this the kind of fasting I have chosen: to loose the chains of injustice and untie the cords of the yoke, to set the oppressed free, and break every yoke? Is it not to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and to provide the poor wanderer with shelter--when you see the naked, to clothe them, and not to turn away from your own flesh and blood?

이사야 Isaiah 58:6-7

금식하는 자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며, 세리와 같은 자들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금식으로써 자기를 낮추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식으로써 자기의 교만을 더욱 더 키우는 것입니다.

소득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이 어째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가 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자기의 의로 내세우는 이런 행세는 무엇입니까?

이에 반하여 세리는 하늘로 고개를 들지도 못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he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beat his breast and said,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누가복음 Luke 18:13

이 세리의 자세를 보십시오. 그는 멀리 섰습니다. 스스로 죄인으로 아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자격이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다만 가슴을 쳤습니다. 회개하는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불쌍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죄인으로서, 그 죄를 사함 받아야 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이신 주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I tell you that this man, rather than the other, went home justified before God.

누가복음 Luke 18:14a

여기서 기도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바리새인은 기도로써 자기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세리는 기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리새인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이란, “칭의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5장의 아직 연약한 자, “아직 죄인일 때,” 그리고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바로 그 칭의입니다.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심입니다. 스스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써 씻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스스로 낮추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할 때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For all those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누가복음 Luke 18:14b

바리새인은 스스로 자기를 높였습니다. 그는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 것입니다. 그의 모든 죄는 하나도 용서 받지 못했습니다.

세리는 스스로를 낮추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인의 반열에 올려 세워 주신 것입니다.

잠시 구약의 한 인물을 돌아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때입니다. 사무엘상 13장에서 사울은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룰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He waited seven days, the time set by Samuel; but Samuel did not come to Gilgal, and Saul's men began to scatter. So he said, "Bring me the burnt offering and the fellowship offering.

사무엘상 1 Samuel 13:8-9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전개되어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제사를 무슨 행사를 치르듯이, 그렇게 처리하고 만다면, 거기 무슨 정성이 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사장 사무엘이 와서 드리는 제사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나쁘게 전개되고, 급박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겠습니까?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But Saul and the army spared Agag and the best of the sheep and cattle, the fat calves and lambs--everything that was good. These were unwilling to destroy completely, but everything that is despised and weak they totally destroyed.

사무엘상 1 Samuel 15:9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가지고, 버릴만한 것은 말씀 순종하는 것처럼 실시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데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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