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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the Way of Korean Reunification

  • 작성자 : pastor
  • 조회 : 1,978
  • 19-05-20 16:26

2019 겨자씨선교회

통일 심포지엄

조은석 목사

금문교회 담임

샬롬. 한반도 평화의 길: 이사야 9:1-7을 중심으로

Shalom. A Way to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Reading Isaiah 9:1-7

목차

들어가면서

1. 이사야 9:1-7 본문읽기

2. 본문분석

3. 역사적 배경

4. 샬롬. 그 일차적인 뜻

5. 샬롬. 보다 깊은 뜻

6. 샬롬. 수직과 수평

7. 샬롬, 그 명령순종

8. 샬롬. 한반도 평화의 길

8-1. 미주한인

8-2. 남한

8-3. 미국

8-4. 중국

8-5. 일본

8-6. 러시아

8-7. 북한

8-5. 모든 이들의 샬롬

나가면서

참고문헌

들어가면서

인내의 열매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는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데서 오지 않는다. 어디선가 나무 아래 감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는 예측 불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독일이 통일되었다고 그 방식 그대로, 거기가 길은 아니다. 분명히 공통점이 없지 않으나 독일과 한반도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가 현저하게 다르다.

다르다면 다른 접근법을 요구한다. 나는 오늘 여기서 그 다른 접근법 하나를 제시한다. 이것이 전혀 다른 까닭은 성경은 읽는 자 각자에게 모두 독특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혀 다른 또 다른 까닭은 성경이 그리고 있는 과거 그림은 오늘 우리에게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우리 현재는 당연히 독특하다. 언제 어디선가 존재한 적이 있거나, 지금 다른데서 대체물을 찾을 수 있는 거라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실존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현재가 될 수 없는 과거는 기억할 가치가 없다.”

샬롬은 그 명사가 평화. 그런데 동사의 뜻은 되갚다를 포함한다. 성경의 샬롬 정의에 따르면 되갚아야 할 어떤 것을 갚아서 이루는 변화가 샬롬이다.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갚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성경이 제시한 샬롬 정의이므로 성경에 물어야 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

평화의 조건으로 화해를 말한다. 화해가 정치적 계략을 넘어서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갚음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갚을까?

교회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사회를 향하여 교회가 내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평화라면 무슨 갚음을 말하는 평화일까?

한반도 통일, 오기는 올 것이다. 어떤 면으로 읽어도 휴전선으로 그어 놓은 그 경계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 모두가 주목하는 그 열기, 그 에너지, 그 긴장, 그것이 이 상태로 한없이 오래 가리라고 보는 것은 비현실이다. 무엇보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실 줄 믿는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통일, 그 내용이 평화여야 한다. 전쟁은 안 된다.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좁게는 이사야의 예언에서 제시된 샬롬을 구한다. 분단 이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전쟁의 위기가 매일 현실인 한반도가, 한반도를 고향으로 둔 우리가 오늘 간절히 샬롬을 구한다. 샬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이루실 줄 믿는다.

1. 이사야 9:1-7 (히브리어 8:23-9:6) 본문 읽기

이사야서에서 샬롬은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 두 차례 등장하는 샬롬의 위치에너지 측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한다. 여기다 구조분석을 시도한다. 히브리어 본문으로 구조분석 할 때는 직역이어야 한다. 단어 뿐 아니라 배열도 그대로 살린다. 번역어가 어색할 것이다. 투박성이 부담스럽기도 할 테다. 날것 먹을 때 것처럼 비리거나 몹시 쓰디쓰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혀 생소함이 잠자던 영혼을 일깨우는데 일조한다면, 그건 환영하는 것이 좋다.

이사야서 전체에서 오늘 본문이 차지하는 위치는 샬롬이라는 주제를 주목할 때 분명하다. 예언자 이사야가 샬롬을 말하고 싶었다면, 오늘 본문이 오기까지 그는 참았던 것이 있다. 그가 샬롬 외에 다른 주제를 던지고 싶었더라도, 그 다른 주제는 샬롬을 품어야 한다. 그 다른 주제는 틀림없이 구원일 터다. 예언자 자신의 이름 이사야가 드러내는 바로 그 구원은 샬롬을 끌어안는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주로서 제시하는 메시야는 샬롬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샬롬은 바로 그 통치자의 속성이며, 동시에 그의 통치의 내용이다.

Isaiah 9:1a/Hebrew 8:23a

But will be no gloom

for who were narrowness to her.

그러나 우울함이 없을 것이다.

속 좁음에 있던 자들에게.

Isaiah 9:1b/Hebrew 8:23b

Like the time of the first one

he has made light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ali.

그 때처럼, 그 처음

그분께서 가볍게 다루셨다

땅을, 스불론, 그리고 땅을, 납달리.

Isaiah 9:1c/Hebrew 8:23c

But later he has made heavy

way of the sea, beyond the Jordan

Galilee of the nations.

그러나 나중에 그분께서 무겁게 다루셨다

길을, 그 바다의, 저편에, 그 요단

갈릴리를, 그 민족들의.

Parallelisms of Isaiah 9:1/Hebrew 8:23

Isaiah 9:1a-b/Hebrew 8:23a-b

1

2

3

A

but will be no gloom

for who were narrowness to her

2

1

3

B

like the time of the first one he has made light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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