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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주일예배아버지마음누가#15:11-32

  • 작성자 : pastor
  • 조회 : 2,134
  • 19-06-01 11:40

20196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아버지의 마음 Heart of the Father

누가복음 Luke 15:11-32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Jesus continued: "There was a man who had two sons.

12.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누어 주었더니

The younger one said to his father,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So he divided his property between them.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Not long after that,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After he had spent everything, there was a severe famine in that whole country, and he began to be in need.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So he went and hired himself out to a citizen of that country, who sent him to his fields to feed pigs.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He longed to fill his stomach with the pods that the pigs were eating, but no one gave him anything.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삭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When he came to his sense, he said, 'How many of my father's hired men have food to spare, and here I am starving to death!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I will set out and go back to my father and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make me like one of your hired men.'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So he got up and went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The son said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longer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But father said to his servants, "Quick! Bring the best robe and put it on hom. Put a ring on his finger and sandals on his feet.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Bring the fattened calf and kill it. Let's have a feast and celebrate.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For this son of mine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So they began to celebrate.

25. 맏아들을 들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 추는 소리를 듣고.

Meanwhile, the older son was in the field. When he came near the house, he heard music and dancing.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So he called one of the servants and asked him what was going on.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Your brother has come,' he replied, 'and your father has killed the fattened calf because he has him back safe and sound.'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The older brother became angry and refused to go in. So his father went out and pleaded with him.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But he answered his father, 'Look! All these years I have been slaving for you and never disobeyed your orders. Yet you never gave me even a young goat so I could celebrate with my friends.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But when this son of your who has squandered your property with prostitutes comes home, you kill the fattened calf for him!'

31. 아버지가 이르되, ‘.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My son,' the father said, 'you are always with me, and everything I have is yours.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But we had to celebrate and be glad, because this brother of yours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오늘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의 마음을 잘 아는 데 이르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자녀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아줍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다 함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지 모르면, 우리는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1606년 네덜란드(Dutch Republic, now Netherlands) 레이덴(Leiden)에서 태어난 렘브란트(Rambrandt Hermanszoon van Rijn, 1606-1669)가 그의 나이 59세 때인 1665년에 그린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는 유명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4년 후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그의 일생의 후반부에 그린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을 중요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어쩌면 성경, 특히 시편 119편과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난 말씀에 착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기의 기독교 신앙을 빛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특히 그는 그 빛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유리창이나 초, 등 같은 것 대신, “이미와 있는 빛에 집중했습니다. “돌아온 탕자에도 그 빛은 아버지의 얼굴과 탕자의 등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그 빛 한 조각이 큰 아들의 얼굴에도 묻어납니다. 그 빛으로 그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가, 숨겨지지 않고 완전하게 드러납니다. 빛은 구원이지만, 동시에 빛은 어둠에 대한 심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크고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대비되는 것이 큰 아들에게서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합니다. 화를 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잘못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처럼 좋은 아들, 말 잘 듣는 아들에게 염소 새끼도 주지 않고, 못된 자에게 이런 환대를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를 전혀 이해하지 않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벗겨진 신발, 초라한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자기를 영접해 주시리라고 믿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보통 깨끗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아버지가 환영하지 않으시리라!” 그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구약성경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와 패턴이 비슷하고, 주제도 비슷합니다.

요나서와 탕자의 비유의 경우, 그 주제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니느웨(Nineveh)는 앗수르(Assyria)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작은 나라들을 멸망시키려는 야욕을 품은 나라입니다. 실제로 요나의 사역 이후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주전 722).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 행 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외쳤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그런데 놀랍게도 니느웨의 모든 백성이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정하셨던 벌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요나에게는 못마땅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회개를 선포하기는 했지만,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평했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But Jonah was greatly displeased and became angry. he prayed to the Lord, "O Lord, is this not what I said when I was still at home?

요나 Jonah 4:1-2a

요나가 예상한 그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 원수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 계셨습니다. 요나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는 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요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That is why I was so quick to flee to Tarshish. I knew that you are a gracious and compassionate God,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e, a God who relents from sending calamity.

요나 Jonah 4:2b

그래서 요나가 도망쳤던 것입니다. 회개의 설교를 듣지 않으면 회개할 기회를 찾지 못할 것이니, 결국 멸망할 길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Now, O Lord, take away my life, for it is better for me to die than to live.

요나 Jonah 4:3

그런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살려주시니, 요나는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 앞에 자기를 죽여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신앙의 태도가 또 어디 있습니까?

확실히 큰 아들을 요나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큰 아들은 화를 냈습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그 동생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이 기분 나빴던 것입니다.

분명히 큰 아들은 자기 동생이 집에 돌아와 환영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고생하다가 죽더라도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 아들의 감정을 이유 없다!”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감정을 이유 없다고 판결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요나 Jonah 4:9

박넝쿨을 아낀 요나. 그는 박넝쿨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불편이 돌아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박넝쿨이 있으면 뜨거운 햇볕도 가리고 좋은데, 그것이 죽자, 그만 화가 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But the Lord said, "You have been concerned about this vine, though you did not tend it or make it grow. It sprang up overnight and died overnight. But Nineveh has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many cattle as well. Should I not concerned about that great city?"

요나 Jonah 4:10-11

박넝쿨과 니느웨. 비교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박넝쿨 때문에 차라리 죽겠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아끼시는 것은, 그 안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까지 포함하여 12만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아끼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해 버려야 할 원수 나라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그는 화를 냈습니다.

보십시오. 큰 아들도 아버지께 화를 냅니다. 자기 동생을 환영하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But when this son of yours has squandered your property with prostitutes comes home, you kill the fattened calf for him!

누가복음 Luke 15:30

큰 아들은 자기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자기와의 관계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But we had to celebrate and be glad, because this brother of yours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누가복음 Luke 15:32

그러나 보십시오. 아버지는 그 탕자를 이 네 동생이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앞서 24절에서는 이 내 아들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지금 큰 아들 앞에서 네 동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큰 아들이 자기 동생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죄인으로 취급하는 데 연유합니다. 아버지는 용서했지만, 큰 아들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작은 아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큰 불효입니다. 아버지 생전에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것은 빨리 돌아가시라!”고 재촉하는 것 이상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시대 기록에는 부모의 생전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부모도 자기 생전에 자식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작은 아들이 그만큼 간청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 그러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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