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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예루살렘vs산당#열왕기하12:1-21

  • 작성자 : pastor
  • 조회 : 2,898
  • 18-10-26 20:54

20181028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예루살렘 vs 산당

열왕기하 12:1-21

1. 예후의 제7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동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17. 그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18.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21.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예루살렘 vs 산당. 오늘 말씀의 제목이며 주제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점령한 개인 땅입니다. 열두 지파의 중립지대였습니다. 열두 지파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다윗(1011-971)이 모든 준비를 마쳤고, 주전 960년에 솔로몬(971-931)이 성전을 완공, 봉헌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자리에 성전이 서기 훨씬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성전을 예비하셨습니다. 모세 때였습니다. 출애굽 제2세대에게 전한 설교인 신명기가 한 하나님, 한 성전, 한 백성을 중심신학인데, “한 성전이 곧 예루살렘입니다.

산당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제의처소(worshiping sites)입니다. 한문자처럼, 산에 있는 사당 같은 형태로, 주로 높은 데 위치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high places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는 바마(bamah)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 밖 모든 지방이 지역에서 인정하는 산당입니다. 여기는 제사장이 있고, 제사장은 지역의 종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지도력도 장악했습니다. 십일조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방의 토호 정치세력과 결탁했습니다. 아니, 제사장이 이미 토호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두 번째 산당은, 개인이 각 가정에 설치한 것입니다. 집집마다 무슨 우상 같은 것을 두고 섬겼는데, 그것을 통틀어 바마, 곧 산당으로 포함합니다.

오늘 본문이 다루는 산당은 이 두 가지가 다 있습니다. 예루살렘 예배가 거룩하고 온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산당이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루살렘과 산당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요아스가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하는 개혁을 실시했지만, 산당 제거에는 실패했습니다. 어째서 그런 실패가 나왔는가? 그 산당개혁의 실패는 어떤 파급효과를 낳았는가? 오늘 주목해야 할 질문입니다.

특히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 주일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세습을 필두로 수많은 교회개혁의 대상을 대면했습니다. 오늘 금문교회에서 선포되는 이 말씀은 우선 금문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어떠한가 말씀의 빛으로 돌아보고, 온 세상에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계 교회를 진단하며, 내일의 교회를 전망할 것입니다.

왕이 될 때 겨우 일곱 살이었던 요아스(Joash, 835-796) 왕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유다의 제8대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시야(Ahaziah)가 북 왕국의 쿠데타 주동자 예후의 손에 죽은 이후, 한 살이었던 그가 6년 동안 성전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의 고모 여호세바(Jehosheba)가 그와 그의 유모를 숨긴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Jehoiada)가 합력했습니다. 6년이 지난 때, 곧 요아스가 7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아댜가 주도한 개혁이 성공했습니다. 요아스의 할머니 아달랴(Athaliah)가 그동안 여왕 노릇을 했는데, 여호야다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죽였습니다.

요아스(Joash)40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통치 이야기입니다.

그를 신앙의 눈으로 평가할 때, 그는 여호야다가 후견하는 동안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적인 삶은 완전하지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요아스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은 히스기야(Hezekiah)와 요시야(Josiah) 등 극히 소수에 이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 개혁이 남유다에 국한되었지만, 요시야는 남북을 아우르는 대이스라엘 개혁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것입니다.

산당을 제거하는 것. 그것은 종교적으로, “한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라는 신명기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수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신명기 신학은 한 하나님, 한 성전, 한 백성등 세 하나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이 신명기 신학은 여호수아서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예언적 역사서기술의 역사관입니다.

그런데 이것, 산당을 제거하는 것은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산당을 제거하면, 각 산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방토호세력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의미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의미에서도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길입니다.

요아스가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그의 정치가 지방 토호세력들의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종교적으로 볼 때, 산당은 이방신들을 섬기거나, 여호와를 섬길 때도 이교적으로 섬기는, 변질된 신앙을 뒷받침하는 중심세력이었습니다.

그 외에, 산당의 정치적 의미는, 왕을 견제하는 지방 세력의 집산지라는 데 있습니다. 산당 제사장들의 지원을 받은 토호세력은 거의 독립적인 군사력까지 확보했습니다. 산당의 경제적 의미는, 각 산당이 지역의 십일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산당이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요아스의 종교개혁이 몸통은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꼬리만 자른 그런 셈이라는 반증입니다.

산당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비록 요아스가 40년 동안 길게 통치했지만, 그의 왕권은 대단히 취약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취약한 모습이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관리에도 드러납니다. 4절부터 16절까지 상세한 언급은,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시도했지만, 끝내 목적한 그대로 이루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즈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요아스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화친을 청했습니다. 많은 선물을 주어 그가 물러가게 했습니다.

그의 조상들, 곧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등이 마련한 성물과, 자기가 드렸던 성물과, 성전의 곳간은 물론 왕궁에 있는 금을 다 하사엘에게 바쳤습니다. 그러자 하사엘이 물러갔습니다. 군대를 끌고 온 왕이 그대로 물러갈만큼 요아스가 바친 물건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만큼 요아스는 취약했습니다. 안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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