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일예배#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8:22-25
- 작성자 : pastor
- 조회 : 2,535
- 19-03-02 00:27
2019년 3월 3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Where Is Your Faith?
누가복음 8:22-25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사람이 두려움이 어디서 옵니까? 지식(知識, knowledge)에서 옵니까, 무지(無知, ignorance)에서 옵니까?
지식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이 한국 속담은 하룻강아지가 범(호랑이) 앞에서도 태평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사실은 무서워야 정상인데, 무지해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범을 아는 지식, 그것이 두려움을 준다. 이렇게 봅니다. 영어로 풀어 쓴 속담은 천사도 두려워하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돌진한다고 했습니다. 한글은 하룻강아지와 범을, 영어는 어리석은 자와 천사를 비교했습니다.
사람이 암에 걸렸지만, 그것을 모를 때는 공포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을 아는 순간부터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지식에서 두려움이 온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아는 게 병이다.
Knowledge is sickness.
모르는 게 약이다.
Ignorance is bliss.
그러나 여기 보세요. 대부분의 두려움은 사실 “무지”(無知, ignorance)에서 오는 것입니다. 실체(realities)를 알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데, 거짓으로 과대포장한 데서 두려움이 옵니다.
옛날 시골에서 옷을 벽에 걸지 않았습니까? 모자를 그 못 위에 걸지요. 새벽녘에 잠 깬 아이는 누가 서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날이 새고 나면 얼마나 우습습니까?
사실은 별거 아니었는데, 괜히 겁을 먹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죽음이라는 실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s.
시편 116:15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가? 그것이 정답입니다.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하나님 손에 사람은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셨을 때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그 마침입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을 지금 죽음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된 때문입니다. 광풍이 호수에 몰아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죽음의 실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Master, Master, We are perishing!
그러자 주님께서 잠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쳐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Where is your faith?
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이번의 두려움은 종류가 달랐습니다. 먼저는 죽음공포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는 두려움입니다. 그 놀라움입니다. 서로 말합니다.
그분이 누구신가?
바람과 물을 명령하시니 순종하는구나!
Who then is this, that he commands even winds and water, and they obey him?
제자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 자신이심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인도하실 줄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문제가 된 것은 결국 “모름”이었습니다. “무지”(無知)가 문제였습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1. 죽음
2. 바람과 물결
3. 예수 그리스도
첫째로, 그들은 죽음을 몰랐습니다. 무서워 할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서워 할 것이 아닌 것을 무서워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바람과 물결을 몰랐습니다. 바람과 물결이란 곧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일어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바람과 물결 뒤에 계시는 분이 중요한데, 그분이 본질인데, 그들은 그저 현상에 집착했습니다.
셋째로, 정말 그들이 모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같은 배에 누워, 지금은 잠들고 계신 예수님께서 바다와 물결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보다도,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몰랐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예수님의 도우심으로써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1. 죽음공포가 예수님 앞에서는 물러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2. 지금 그들은 바람과 물결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거세며 무서운지. 죽음에 이르도록 역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마는, 그런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3.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물론 아직 정확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께서 바람과 물결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적용합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것이 인생의 한 단면입니다. 아닌 듯 하지만 사실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각종 보험에 듭니다. 그러나 보험에 보험을 들어도 두려움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잘 압니다. 거기는 식자우환(識者憂患, knowledge is sickness), 알아서 병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성경(聖經)을 모릅니다. 거기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는 무지에서 공포가 온 경우입니다. 모르면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가 누가복음 24장에 있습니다. 이들 두 제자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줄 알았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와 전혀 다른 모습에 실망했고, 죽음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7 마일 거리를 함께 걸으시면서, 성경에 기록한 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특히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후 주님께서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주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이 두 제자가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공포가 아니라 기쁨에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아직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던 다른 열 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전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갈 때는 예수님을 몰랐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으로써 그들에게 가르치셨고,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믿음으로써 그들은 죽음공포를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올라갔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알면, 어떤 공포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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