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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부활주일#요한복음 11:25-2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3,120
  • 18-03-30 22:51

201041

금문교회 부활주일

조은석 목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부활이 무엇이냐, 생명이 무엇이냐? 이런 토론이 있다고 합시다. 누가 그 결론을 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부활이다.” “내가 생명이다.”

오라버니를 잃은 여인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슬픔은 어떤 논리로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야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불평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Lord, Martha said to Jesus,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요한복음 11:21

오셨지만 너무 늦게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부활이시며 예수님께서 생명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일찍 오시거나 늦게 오시거나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닙니다. 마르다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마르다에게 그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늦어도 늦은 것이 아니다. 살았거나 죽었거나 예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I eagerly expece and hope that I will in no way be ashamed, but will have sufficient courage, so that now as always Christ will be exalted in my body, whether by life or by death. For in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빌립보서 1:20-21

이렇게 삶과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비결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d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빌립보서 4:12-13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데, 믿음이 없다면 산 자도 죽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Do you blieve this?

요한복음 11:26d

살고 죽는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되었습니다. 그것이 부활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고 죽는 문제를 이기는 비결(secret)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입니다. 대개 부활주일에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부활기사를 본문으로 삼고 설교합니다. 우리교회도 오랫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올해 2018년은 예수님께서 이미죽은 자를 살리신 부활의 주님이시라는 점을 초점으로 잡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주님을 초점으로 삼습니다.

나사로 외에도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려내신 일이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입니다. 또 어떤 관리의 딸입니다. “달리다굼!” 하셔서, 그 여자 아이가 죽었던 것을 살려내셨습니다.

또한 아직 생명이 붙어있기는 했지만 전혀 소망이 없어서, 살았으나 죽은 자를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 38년 간 누워있던 사람을 고치신 기적입니다.

이처럼 많은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 믿기만 하면 삶도 죽음도 문제가 결코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지난주 영화 바울을 영어 지파가 함께 관람했습니다. 바울의 일생 중에 감옥에 있던 때가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도 전도했습니다. 그 때도 그는 편지를 써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끌려 나가 처형될 때도 그는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삶이나 죽음이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For in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빌립보서 1:21

나도 때로 죽음을 생각합니다.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겠지요. 그러나 그 때가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의 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 무엇이냐?

생명이 무엇이냐?

철학적인 주제일 수 있어서, 심사숙고할 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에 머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 하는 동안 세월이 가는 것입니다. 그는 늙고 마는 것입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아직도 그는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도 인생의 다메섹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여기가 그 다메섹입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세례 받거나 입교합니다. 모두 세례교육을 받았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하는 그들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세례를 베풀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은 주님께서 이번 부활주일에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이들의 삶이 오늘을 기점으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이들에게 오늘 신앙고백과 세례 및 입교는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획기적인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예식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성령님께서 그들의 삶을 주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들만 아닙니다. 오늘 여기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부활주일에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은퇴를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요. 은퇴를 위해 적금을 들거나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준비를 했지만, 전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것이 내일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불평한 것이,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랬습니다. 그게 그런 것입니까? 주님께서 일찍 오셔서 죽어가는 오라버니를 살릴 수 있었다면, 죽은 후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신다는 말인가요? 그건 믿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의사들이 그런 말을 하지요.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환자가 아니시지요. 주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치료자가 늦게 오시는 경우가 있습니까?

바울이 가진 일체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은 죽었으나 사는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이것이 세례의 뜻입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사는 뜻입니다. 물에 잠겨 죽고, 물에서 나와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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