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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주일설교#하나님빛#요한1서1:1-1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3,958
  • 17-11-10 20:54

2017111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묵상말씀: 요한복음 1:1-12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한11:1-10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 기자 요한이 요한1-3서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요한계시록도 기록했습니다. 소위 요한문서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도, 그 주제도 하니님은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시라면, 빛이 온 세상에 완전하게 드러나듯이, 하나님도 드러나십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뚜렷하게, 확실하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한1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빛이신 그 생명의 말씀. 이에 관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졌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듣고, 보고, 자세히 보고, 그들의 손으로 만진 바로 그 생명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의 빛입니다.

이런 점에서 초대교회는 증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의심할 바 없는 확증을 가진 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 증인들의 정체와 그 역할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그토록 분명하게 밝혀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교회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증인들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증인으로 부르시고 증거 하게 하신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습니다. 가장 분명하게, 가장 확실하게, 가장 뚜렷하여,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임마누엘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로써!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생명은 생명 자체가 능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시는 능력입니다. “여호와하나님게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에고 에이미!

I am!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죽을 인생”(mortals)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를 봅니까? 어떻게 그 영원”(Eternality)을 접촉(contact) 합니까? 예로부터 그것은 예외 없이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발화! 섬광! 섬뜩! 그런 한 순간으로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그 허무함이 그 열매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죄인이 그 거룩하신 이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자세히 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여기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분의 허락하심입니다.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되는 비밀입니다.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찬송가 491장 중에서

빛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은 심판일 것입니다. 어둠에 대한 심판 말입니다. 어떤 어둠이 빛 가운데 설 수 있겠습니까? 죄인으로 태어나, 죄에 익숙하며, 죄를 물 마시듯이, 빵 먹듯이 마시고 살아온 인생이 어떻게 그 빛으로 나아가며, 그 빛을 이해하며, 그 빛의 길로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르심 받아야 가능한 일이며, 붙들림으로써만 열리는 길입니다.

세상 일로 분주하던 우리를, 죄악에서 더 큰 기쁨을 발견하던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을, 그 거짓과 그 죽음의 길에서 해방하셔서, 진리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온전한 은혜입니다. “신학Theology, 하나님 공부입니다. 그 고귀한 은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성도들들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그 영원한 생명을 본 우리가, 이제 그 증언자의 길로 나섰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

For we cannot help speaking about what we have seen and heard.

사도행전 Acts 4:20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친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 서서 선포한 말입니다. 바로 이 요한이 오늘 본문을 기록한 그 요한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11:3

이제 밝힙니다. 왜 우리가 보고 들은 바, 그 빛 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가? 그것은 사귐때문입니다. 무슨 사귐입니까?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가 교통하는 것과

사도신경 중에 우리가 고백하는 한 대목입니다. 성도는 교제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며, 또 가르치고 생각나게 해 주어야 힙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제의 배경에는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성령님바람,” “으로도 번역이 가능한 루아크입니다. 소통이 아니라면 존재를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바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멈춘다면 바람은 누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숨이 들어가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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