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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주일설교#에베소교회#계2:1-7

  • 작성자 : 김재은
  • 조회 : 5,752
  • 17-01-21 19:30

201712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교회가 잘 한 것이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1. 행위

2. 수고

3. 인내

4.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

5.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

6.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7. 게으르지 않은 것

8.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함

그런데 7번과 8번 사이에 한 가지 잘못 한 것을 지적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 곧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찬양팀이 예수 나의 첫 사랑 되시네를 첫 곡으로 찬양 드렸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첫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에베소교회가 한 첫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끼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비밀은 여기 있습니다. 참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4:10-11

인간의 모든 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끼리의 사랑이란, 바로 그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배워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그 첫 사랑을 저버렸다고 평가하셨다면, 그것은 주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앞서 여덟가지의 모든 덕목을 다 합한 것보다도 주님을 버린 행위는 그 무게가 더한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바로 그것 때문에, 교회 해체의 재앙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소중한 일을 했어도 주님을 버리고 나면 모두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그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교회가 그 뿌리째 뽑히고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 회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듯이.

본래 아버지의 사랑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탕자가 변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주님께로 돌아가는 길뿐입니다.

조금 순서를 바꾸어, 에베소교회가 그래도 잘한 것 여덟 가지를 하나씩 돌아봅니다.

1. 행위

2. 수고

3. 인내

4.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

5.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

6.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7. 게으르지 않은 것

8.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함

이 중에 4, 5, 8 등 세 가지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단을 판별하여 정체를 드러내고 미워한 것입니다. 그 이단 중에 니골라당이 있습니다.

니골라당은 영어로 Nicolaitans 라고 쓰는데, 이는 Nicolaism 에서 난 것입니다. 이는 신약에 두 차례 등장하는데, 모두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옵니다.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교회와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교회에 주신 편지에 등장합니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니콜라스(Nicolas) 라는 지도자가 변절했는데 그의 사상과 그 추종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실 니콜라스는 좋은 사람인데, 이단자들이 그의 이름을 거짓으로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그들의 예배에는 성창 같은 성적인 행위들이 수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바로 그런 니골라당의 교훈을 판별해 내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장점입니다. 참고로 버가모교회는 교인들 중에 니골라당 사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만 보면 에베소교회가 버가모교회보다 낫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첫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버렸는지, 그것은 본문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정황을 놓고 볼 때 영지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에서 보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 자체를 부인합니다. 이는 요한14장에서 이단으로 판별되는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으로만 존재하고,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사실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입니다. 육신이 없으셨으니까. 다른 주장은, 육신을 잠간 입으셨지만, 곧 그 육신을 벗기를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도마복음서>라는 위서에 묘사된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써 육신을 벗게 될 때 가장 기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하여 십자가를 지게 한 가룟유다가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를 불러 배반을 부탁하셨고, 막상 그 때가 오자 대단히 기뻐하셔서 큰 소리 내어 여러 차례 웃으셨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니골라당까지 판별해 내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하고 미워한 것은 좋았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 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사랑을 저버린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에서 만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에베소에서 3개월 동안 동역하며 사역했습니다. 그후 3차 선교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세웠습니다. 2년 동안 두란노서원을 세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네로황제의 박해 때 70명이 순교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는 에베소서를 기록, 에베소교회를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단이 교회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 이단의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버렸습니다. 바로 그 첫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멀고 먼 나라에,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에 보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곱 교회가 완전 수 일곱으로 묘사된 것으로 미루어, 이방 나라에 세우신 모든 교회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베소교회부터 시작하여 모든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곧 우리 모두에게 보내주신 편지로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에베소교회처럼 여러 가지 많은 지혜와 수고,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을 버렸다는 경고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그 뿌리가 뽑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아시아, 곧 터키 성지순례 가시는 분들은 돌무더기가 된 에베소교회를 보면서 슬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형국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사랑합니다. 모르고 사랑하는 맹목적 사랑은 위험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을 버린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지요? 에베소교회는 두란노서원을 통해 성경공부가 강한 교회였습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공부하면서 교회론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고 그래서 그 사랑을 버렸다는 말인가요?

그것은 다음세대 교육에 실패했다는 점 말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로부터 사도 요한의 때까지는 30년 넘는 세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간 것입니다.

교회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아는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육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다음세대 교육입니다. 우리교회가 교인 수에 비하여 목회자 수가 많은 것은 다음세대 교육에 그만큼 큰 강조점을 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중고등부 예배실을 다음세대예배실, Next-Gen Chapel이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뜻이 있습니다.

처음 받은 그 뜨거운 사랑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이 에베소교회의 문제점이었습니다. 자녀에게 신앙교육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겨우 한 세대만에 그런 위기에 봉착했던 것일까요?

교육은 말로 하는 것 외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교육은 식탁에서나 거실에서 어떤 대화로 하는 수가 있지만, 부모가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 비춘다면, 에베소교회의 문제점은 바로 그 제1세대의 문제점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제2세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스스로 식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보고 배울 것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장례식을 자주 인도하면서, 자녀 손자 세대들이 추모하는 말을 듣습니다. 고맙게도 다음 세대가 제1세대를 능가하는 영성이 있음을 보고 참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와 우리가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 10:12

이처럼, 여러 가지 장점을 자랑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오직 날마다 새로운 영적 성장의 길을 걸어가고, 자녀교육에 헌신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세워가야 합니다.

지금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커다란 건물을 짓고,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후일을 웃어야 합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잠언 31:25-31

잘되는 집안은 그 비밀이 여인에게 있습니다. 후일을 웃는 여인입니다. 우리교회 여선교회 모든 회원 여러분이 금문교회 후일을 웃는 현숙한 여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금문교회는 내일의 소망이 있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사랑, 그 첫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며, 그 사랑 붙잡고 천국에 이르도록 영적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은혜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에베소교회가 타산지석이 되어 금문교회는 첫 사랑을 늘 간직하고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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