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4-16부활설교#안식후#요한20:1-29
- 작성자 : pastor
- 조회 : 4,295
- 17-04-14 14:18
2017년 4월 16일
금문교회 부활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안식 후 처음 일주일
요한복음 20:1-29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내려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이 더욱 큰 은혜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까닭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부활이 내게 죽고 사는, 곧 “새롭게 태어나는” 은혜가 되었습니까? 사람은 누구의 삶도 죽음도 참여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저 방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슬픔이요 부끄러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과 죽음에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 사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4-5
그러나 부활사건으로, 사람들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바로 그 사실을 깨달은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교회의 첫 번째 선포내용은 “인생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입니다.
부활신앙으로써 십자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로써 성육신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하나 실은 비참한 자요, 지혜 있다 하나 아무런 지식도 없는 자라는 것, 옳다 주장하나 결국 죽음 밖에는 길이 없던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에 간섭하고 들어오신 예수님
그 뿐 아니라,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고 생명을 주신 예수님,
오늘 그 예수님을 뵙는 주일, 부활주일입니다.
2017년 부활주일 말씀은, 요한복음 20장 1-29절입니다. 1-25절까지는 부활하신 그날 새벽부터 저녁 때에 이르는 말씀입니다. 26-29절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때,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한 도마가 포함된 그 모임에 주님께서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다루는 시간은 비록 중간이 생략되었지만, 안식 후 처음 일주일입니다. 안식 후 첫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요한은 20장에서, 예수님 부활의 “증인들”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의심이 많은 제자 도마”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믿었습니다.
9절에 암시된 것처럼, 제자들이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 뵙기 전에도 그들은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말씀의 신앙입니다. 말씀을 읽고, 알고,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습니다. 그녀는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길로 달려가, 시몬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곧 요한에게 보고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가. 우리는 모르는 일 아니냐?” 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함께 달려갑니다. 다른 제자, 곧 요한이 더 빨리 무덤에 도착합니다. 몸을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따라왔습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딴 곳에 쌌던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도 무덤 안에 들어갔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곁에 남았습니다. 울고 섰습니다.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놓였던 머리 편과 발 편에 각각 앉았습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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