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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추수감사주일2부설교#시편12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265
  • 16-11-18 17:01

20161120

금문교회 추수감사주일 2부예배

조은석 목사

여호와께서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 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2016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스물두 번째 맞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99411, 우리는 다운타운 Congregational Church에서 오전 11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시편은 모두 150편입니다. 그 중 10%에 해당하는 15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26편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드리러 올라가는 길. 추수감사의 기쁨을 안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늘 우리의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해 추수의 기쁨을 하나님께 예배로 고해 드리고 감사드리러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시편 150편 모두를 예배시편으로 부릅니다. 모든 시편은 예배 때 드린 기도와 찬양이었습니다. 물론 거기는 하나님의 말씀선포도 포함됩니다.

예배는 성전예배가 그 하이라이트입니다. 야곱은 빈 들판 루스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그 자리를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예배를 지향하면서, 모든 예배인간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부르심을 따라 예배 드렸습니다. 설령 그의 평생에 성소예배 참여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이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공간 중에 사막이나 동굴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것도 잠시 지나가는 도중이 아니라, 거기가 생명을 찾는 원수를 피해 도망한 자리라면?

사막, 곧 광야에서 드린 예배를 보십시오. 시편 63편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멱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읖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 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시편 63:1-11

사막은 낮의 해가 뜨겁게 내리쪼이는 자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리를 주의 날개 그늘로 부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처럼 해를 가려주시는 구름기둥을 경험한 바 아닙니까? 뜨거운 태양 광선 아래서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그늘을 경험하는 놀라운 영성. 그 예배인간이 바로 다윗입니다.

우리가 예배인간이라면, 우리의 모든 억울하고 안타까우며, 답답하고 고독한 모든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그늘을 경험함이 마땅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리가 죽음이 골짜기거나 길 없는 길, 사막일지라도.

시편에는 동굴에 있을 때 드린 예배가 있습니다. 시편 57편과 시편 142편이 그 예입니다.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57:1-11

여기서도 주의 날개그들입니다. 동굴 깊은 곳, 자기 묘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절망의 자리,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그들을 경험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는 예배인간입니다.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편 142:1-7

보십시오. 그는 오른쪽, 왼쪽, 사방 모두가 올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인간은 예배의 자리에서 사방이 막힌 에서 그의 영혼을 이끌어 내시고 구원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뵙습니다.

게다가, 다윗이 포위된 집 안에 있을 때도 예배 드렸습니다. 시편 59편은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 드린 찬송시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 (셀라)

시편 59:1-5

그렇습니다. 사막, 동굴, 포위된 자리에서도 예배인간은 그 자리가 예배자리인 줄을 아는 것입니다. 어디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그 자리인 줄 어떻게 압니까? 모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오르는 불을 보고 시내산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하나님 계신 그 땅은 부르신 곳입니다. 예배로 부르신 그곳은 하나님 임재의 땅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세기 28:17-19

그러나 모든 예배는 성전예배를 지향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 드린 요나도 그의 물고기 뱃속 예배에서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서 2:4

지으심 받고 구원 받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에 있어서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창조와 출애굽의 목적은 모두 예배였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생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탁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19-21

오늘 시편 126편에서 예배인간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고 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다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자리, 거기도 예배드림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씨를 뿌리면서 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면서 왜 웁니까? 그건 씨앗 파종하는 때와 그 자리가 그토록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가 상황을 조정하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지극히 위험한 때이며, 뿌린 씨앗을 거둘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그런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인간은 기쁨으로 거두고, 감사함으로 추수할 날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입니다.

오늘 1부예배로 드린 창세기 43장 본문에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의 주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하게 합니다. 문맥으로 보면, 그는 절망적입니다. 시므온이 억류되어 있고, 이제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준비해서 보낸 예물들은 자기 지방에서 난 최상의 것들입니다. 일종의 축하예물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애굽의 주, 의심하고 위협하는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지극히 작은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씨앗을 뿌리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씨앗이 거친 땅을 뚫고 일어나 온갖 추위와 더위, 짐승의 위협과 각종 잡초들의 공격을 무사히 막아내고 마침내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어, 그것을 어깨에 메고 농부가 기쁨으로 돌아오기 까지는 험하고 높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그래서 울게 되었지만, 끝내 버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예배인간이 품는 것은 이런 소망입니다. 산이 아무리 높아도, 그 위에 태양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소망을 버리라고 재촉하고 명령하고 위협한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창조와 구원의 주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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