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6-12주일설교#나의도움이#창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543
  • 16-06-10 18:53

2016612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

창세기 20:1-18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엘리에셀.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시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니, 아브라함의 가정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해야 옳습니다.

위기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생명의 위협입니다. 히브리인 아브라함의 가정이 경제적인 이유로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불레셋 지경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경제적 위기가 생명위협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의 경우처럼 히브리인의 이동은 목초지 같은 경제여건이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경제위기를 겪다가 남의 나라 영토에 들어간 것입니다. 요새 말로 치면 어떤 떠돌이 어선이 MLL 경계선을 넘은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성적으로 폭력을 당할 위기가 잇따랐습니다. 그럴 경우 가정의 파괴는 명약관화합니다. 성적으로 폭행당한 여자가 정상적으로 가정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자녀 축복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런 엄청난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인 아브라함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고대근동의 강력한 4개국 연합국을 쳐서 물리친 역전의 용사 아브라함도 대책에 없었습니다. 그는 기근을 피해 불레셋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몸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남편이 아니라 오라비라고 부르시오.

이것은 창세기 12장에 이어 두 번째 사건입니다. 그처럼 아브라함의 가정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순순히 동의했습니다. 내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비멜렉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아비멜렉을 상대하셨습니다. 그를 막아 범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라를 누가 지켰습니까? 그의 지아비 아브라함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이셨습니다. 가정을 누가 지켰습니까? 가장 아브라함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시편 121편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때는 구원의 때입니다. 그럴 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창조//출애굽 다이내믹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 여정에서 바로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전에 애굽으로 내려갈 때 배웠고, 이제 불레셋으로 가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하여 교훈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네게브 땅으로 옮겼습니다.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주했습니다. 거기서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의 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브라함처럼 히브리인일 경우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지켜주는 이 없기 때문에 모든 좋은 것을 다 빼앗길 수가 있습니다. 밤에도 위험하고 낮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으로 그 정체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국가 같은 제도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의존관계는 대단히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고, 눈동자처럼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121:3-4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잠시라도 졸거나 주무시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5-6

밤과 낮에도 지켜주십니다. 밤을 지배하는 해도, 낮을 주관하는 달도 결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처럼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큽니다. 낮은 뜨겁고 밥은 춥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7-8

또한 더위와 추위 같은 자연재해만 아니라 인간 원수로부터 오는 해로움도 막아주십니다. 지금 아브라함 가족이 직면한 위기는 그가 이방 땅에 거주하면서 그 땅의 권력자인 왕 아비멜렉의 위협이었습니다. 아비벨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여자로 여기고 그를 빼앗고자 했습니다. 거기서 만일 아브라함이 남편으로 나섰더라면 그의 목숨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 때문에 네가 죽을 것이다.

그 여자는 남편 있는 여자다.

창세기 20:3b

아비멜렉은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아비멜렉이 가까이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제 아비멜렉이 주님께 대답합니다.

주여. 주는 의로운 백성도 멸하십니까?

그가 저에게, 이는 내 누이라, 했습니다.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죄가 없이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창세기 20:4b-5

한마디로 말하면 아비멜렉 자기는 죄가 없다는 변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다.

그래서 네가 범죄하지 않도록 막았다.

창세기 20:6

다시 말하면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 그 여자를 데려온 것입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의도가 없다고 해도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모르고도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있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럴 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죄를 짓지 않도록 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 것이다.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0:7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으셨을 뿐 아니라, 이제 그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튿날 아침, 아비멜렉이 종들을 불러 그 사실을 전했습니다. 모두들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비메렉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했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 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했다.

창세기 20:9

아비멜렉은 여기에 덧붙여 다시 다그치며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했느냐?”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아내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겁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내 아내는 나에게 이복누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방랑하게 하실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후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나를 오라비라 부르시오.

그것이 내게 은혜를 베푸는 일입니다.

창세기 20:11-13

아브라함은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차합니다. 1.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 때문에 남편을 죽이기도 하는데, 내가 그렇게 될까 염려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사람들을 두려워했지, 하나님 두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실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처방전을 내렸습니다. 아내에게 말한 거지요. 어디를 가든지 위기를 만나면 나를 남편 대신 오라비라 불러 주시오.

오늘 본문에서도 아브라함은 그가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도 다시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세상에 소개한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밤과 낮에도 도움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사람 아브라함을 도우시는 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뵈십시오. 그분께서는 밤중에 꿈에 아비멜렉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내셨습니다. 아내로서의 사라를 남편 아브라함이 지켜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사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가장 아브라함이 속수무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구출해 내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인생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드리십니까?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한 나머지, 최악의 선택을 하십니까?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내에게 당신은 내 누이라!” 그렇게 말한 것은, 그게 무슨 계책이 됩니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습니까? 꿩이 위기 때 머리를 풀숲에 박는데, 몸통은 다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무슨 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 믿음을 상실한 아브라함이 보인 이 태도는 결코 믿음의 조상답지 않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자는 것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아니라, “상시전략으로 채택한 것이었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잘 계획된 작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가 더욱 더 큰 법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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