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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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주일설교#복이될지라#창세기12"1-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854
  • 16-04-15 22:43

2016416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20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땅과 너의 친척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내가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복 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다. 땅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이 너 때문에 복 받게 될 것이다.”

4.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대로 떠나갔다. 롯도 그와 함께 갔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당시 그의 나이 칠십오 세였다.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그의 형의 아들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거기서 얻은 사람들을 이끌어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떠났다. 마침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섰다.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도달했다. 당시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 곳에 제단을 쌓았다.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쳤다. 벧엘이 서쪽에 있었고 아이가 동쪽에 있었다.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9. 아브람이 점차 남쪽으로 이동했다.

애굽 IN & OUT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 거기 거류하려고 했다. 그 땅에 기근이 극심하였기 때문이었다.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했다: “내가 알기에 당신은 아리따운 여인이오.

12. 애굽 사람이 당신을 볼 때 말하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하여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오.

13. 원하건대 당신은 나의 누이라 하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때문에 안전하고 내 목숨이 당신 때문에 보존될 수 있겠소.”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다.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했다.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였다.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했다.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말했다: “당신이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했습니까? 당신이 어찌하여 그를 당신의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19. 당신이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했습니까? 당신의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시오.”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했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대개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그는 믿음의 으뜸일 것이라. 사실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나, 생전 가보지 않은 땅으로 갔습니다. 그것만 보아도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포함한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이 조명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인간이 소유한 것은 결코 비교가 될 수 없이 작고 사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전체는 모두 20절입니다. 이 짧은 본문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은 참 많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S: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P: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2b

아브라함에게 처음 내리신 명령은 SP였습니다. 첫째로, 그는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등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같은 내용에 대한 동어반복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요구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또한 어떤 부자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태복음 19:21

부자가 가진 것을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런 부자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이런 종류의 엄격함이 요구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훌륭한 점을 부각하기 시작했습니다.구약 위경이나 미드라쉬, 탈무드 등의 이야기에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지어 만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아브라함 이야기가 특별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만들어 파는 상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공장을 맡겨놓고 출장 갔다 와 보니, 모든 우상이 다 도끼에 찍혔고 제일 큰 우상 하나만 남았습니다. 데라가 아브라함을 불러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슨 요란한 소리가 들려 공장 안에 들어가 보니, 큰 우상이 도끼로 나머지 우상들을 찍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소리쳤습니다. “아브라함! 그럴 수 없다! 우상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 이 때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자기도 지킬 수 없는 우상을 왜 만들며 왜 섬깁니까?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없는 이야기이니까 지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브라함을 더욱 더 존경하고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란 아브라함이 그 모든 사람들 중에 믿음이 첫째로 가는 사람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다. 둘째로, 아브라함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더욱이 순종하기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에 조건 없이 따른 것은 그가 믿음이 누구보다 특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히브리서 11믿음장에 따르면, 아벨, 노아, 아브라함에 이르는 믿음의 계보는 실로 보통 사람들보다 우수한 믿음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깊이 묵상하노라면 아브라함은 대단히 특출한 사람이고, 존경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굳이 한 사람을 골라야 하셨다면 다른 대안은 따로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사실일까요? 아브라함이 전세계에서 믿음이 1등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그런 비교를 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전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오히려 아브라함의 약점이 드러납니다. 첫째로, 그는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기근이 들자, 그는 곧 가나안을 떠났습니다. 그가 선택하여 간 곳이 애굽입니다. 당시 애굽은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포타미아보다 훨씬 우상숭배가 강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위기를 넘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여쭌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에서 주는 각종 선물을 받아 누렸습니다. 이것이 타당한 일입니까?

그리고 창세기 20장에는 한 차례 더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기는 애굽이 아니라 불레셋이었습니다만.

게다가 창세기 13장을 미루어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떠났을 때 온전한 순종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그의 조카 롯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를 인간적 정리에 의해 데리고 갔다는 것은, 거룩한 부르심 받은 사람이 취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이상의 두 가지를 고려할 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순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을 미루어 보면, 그는 자기 몸에서 날 자가 유업을 이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이라는 종이 상속자가 될 것 아니냐고 하나님께 따지듯 여쭈었습니다.

이런 그의 약점을 놓고 볼 때,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하신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을 읽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아브라함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조건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그는 세상 모든 인간 중에서 믿음 1등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스스로 주장하던 바와 같이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닌 것처럼!

바벨탑 사건은 인류가 철저하게 타락한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3-11장에 나타난 네 가지 불순종 이야기 중에 마지막입니다. 네 가지 모두가 다 소망이 없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은 다른 의미에서 절망입니다. 그것은 소통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혼잡해졌습니다. (물론 아담-하와 때나, 가인 때, 그리고 노아의 방주 때도 소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도 마음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모래알갱이처럼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럴 때 하나님께서 그중의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하, 본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7:5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그 이름 아브라함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아브라함으로 부르기로 합니다.) 바로 여기서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대신 여호와 하나님의 참 사랑과 그 은혜가 집중 조명되어야 합니다. (마치 12년 혈루병 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 만진 사건에서 여인보다는 이 땅에 내려오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약속으로 주십니다.

i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i’네게 복을 주어

ii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ii’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창세기 12:2에 약속하신 축복의 내용이 i, i’, ii, ii’에 이르는 네 덩어리지만, i’ii’는 일종의 후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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