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주일설교#엘엘로헤이스라엘#창세기33:1-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714
- 16-09-09 23:55
2016년 9월 11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엘엘로헤이스라엘
창세기 33:1-20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에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원수지간”이 아니라 “형제지간”이 되어 만났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창세기 33:10b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자다가 생각해도 잠이 확 달아나 버리고 마는 얼굴. 그 원수 형의 얼굴이 그립고 그리운 “하나님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형이 제안합니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창세기 33:12
야곱과 그의 일행을 치러 왔던 “원수부대”가 이제는 “호위부대”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그러나 야곱은 에서의 제안을 만류합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창세기 33:13-15
야곱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는 “목자”로서, 양떼와 소떼 등의 상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냥군”이며 “군인”으로서의 에서가 자기 속도를 내면 야곱의 일행이 “무리”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제안하는 “호위”는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도둑”이나 기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야곱은 “더 큰 도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15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31:3
주 동행.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축복을 야곱은 늘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에서가 야곱과 동행해야 안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에서와의 관계에서 야곱이 원하고 바란 것은 “화해”였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다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일을 마치고 나면 육신적으로 관계를 지속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은 영으로 충분합니다. 야곱이 에서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화해”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이쯤해서 내가 콜롬비아 선교에서 경험했던 일 한 토막을 간단히 나눕니다. 그날은 수요예배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까라 아 까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영어로 Face to Face입니다. 그 설교 중에 나는 모든 교인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1년 후 다시 와서 수요예배 드릴 때까지, 적어도 한 사람에게 “당신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과 같습니다”라고 고백한 사실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 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그 손을 내리기 전에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예배 직후 성도들과 인사하는 자리였는데, 맨 어떤 젊은 여성이 다가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곁에 선 선교사님이 “이분은 밥의 부인입니다” 했습니다. 밥의 몇가지 중대한 잘못으로 이들은 “별거”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방문한 자리에서 밥의 부인이 남편을 안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 같습니다.”
이튿날 아침 통역하러 나온 그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부인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십시오.”
나는 그 사건 이후 이 본문과 이 예화로 많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마치 모든 일이 새롭게 일어나는 것처럼 역사하셨습니다. 원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 이것이 “축복받은 사람”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는 맞대응하여 미워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할 일입니다. 이는 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24a
이렇게 기록한 누가는 또 다른 책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을 본받고 따르던 스데반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9-60
야곱이 받은 축복은 원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원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18-20절 말씀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에 이른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 중에 “세겜”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 친 땅을 소유주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백 크시타를 주고 구입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3장에서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헤브론 소재 막벨라 굴을 은 사백 세겔 주고 구입한 사실을 연상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남쪽 헤브론 일부를 구입했고, 야곱은 가나안 땅 중간지점인 세겜 땅 일부를 구입했습니다.
사람이 축복 받은 땅을 자기의 소유로 확정하는 방법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매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매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는 땅은 아무리 등기로 소유물 확정한 땅이라고 해도 영적인 의미를 상실하는 법입니다. 그런 땅은 축복의 땅이 아닙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3:20
그 매매한 땅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그가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7
그러니까, 오늘 본문 창세기 33:18-20에서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구입한 바로 그 땅이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자리였습니다. 그 땅을 야곱이 돈 주고 구입했고,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기의 소유물로 확정했습니다.
돈을 주는 행위는 인간 대 인간으로 계약을 완료하는 방법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계약을 맺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땅이 완전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제사를 드린 후 그 땅 이름을 불렀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이 이름은 세 가지 단어가 결합한 것입니다. “엘”은 하나님입니다. “엘로헤”는 “하나님의”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름이지만 풀어쓰는 이름입니다. 대개의 이름은 풀어쓴 것을 압축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때 야곱이 붙인 이름은 압축 상징된 것을 풀어 쓰는 방식입니다. 어째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거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신 역사를 드러내 보이셨고, 그것을 바로 야곱이 “증인”으로서 보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첫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던 그 땅입니다. 그 땅에 아브라함은 첫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제 그 세겜 땅에 야곱이 도착했습니다. 이 세겜땅에 발을 디딤으로써 야곱의 “밧단아람”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모든 일정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의 “집으로” 돌아오는 “귀향”이 완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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