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주일1부예배설교#주동행요셉#창세기39"1-23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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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0-21 15:20
2016년 10월 23일
금문교회 주일1부예배
조은석 목사
주동행 요셉
창세기 39:1-23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갔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샀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었다.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고,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겼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했다.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잘생겼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청했다.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말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습니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습니다.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그의 아내입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했다. 그러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않았다.
11. 그럴 즈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다.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다.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말했다: “나와 함께 자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간 것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말했다: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한 셈이다. 그가 나를 겁탈하려고 내게로 들어왔다.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르자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일렀다: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습니다.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지요. 그러자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습니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분노했다.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셔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았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은 창세기 37장에서 이어집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의 이야기로, 창세기 37장과 함께 요셉-유다 에피소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창세기 39-50장은 주로 요셉 에피소드인데, 유다 에피소드와 “섞여”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신 증거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보디발의 집입니다. 둘째는 감옥입니다. 둘 다 “애굽”이지만, 그리고 둘 다 요셉의 신분은 묶인 자이지만, 두 번째, 곧 감옥에서 요셉은 묶인 중에 더 묶인, 즉 종이면서도 죄수가 된 신세입니다. 소위 “설상가상”이 이에 적절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더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까? 요셉의 처지가 험하면 험할수록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놀라운 증거가 더욱 더 큰 빛을 발합니다.
첫째로, 보디발의 집입니다. 그는 고맙게도 공사현장으로 투입된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그를 샀습니다. 그래서 고관의 집 안에서 일하는 종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하여 주인과 그 집을 섬겼습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면 그 변화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선과 최악, 양 극단의 때인데, 요셉의 경우 최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사람이므로, 보디발의 집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입니다. 이삭과 야곱이 대를 이어 나누어 받은 바, 그것은 “복의 근원”이 되는 복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늘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세기 12:2c-3
그것을 누구보다도 보디발이 깨달았습니다. 요셉이 복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셉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맡아 하는 “총무” 자리를 주었습니다. 그만하면 고향을 떠난 고통도 잊을 수 있을 법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련은 끝이 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셉은 그를 피했습니다. 싸움에서 최선의 전략은 피하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36계가 좋은 예입니다. 이런 성적인 유혹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현장은 이 여자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때마침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여자가 요셉의 옷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뿌리치다가는 여자를 상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요셉은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다른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상한 이 여자는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리기로 했습니다. 소리 질러 사람들을 부르고, 옷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디발이 돌아왔을 때, 여자는 보다 극적인 방법으로 요셉을 모함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감옥 갈 죄가 없는데, 그는 갇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하나님 생각을 했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는 “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요셉을 특별하게 여기고,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요셉은 고향 집을 떠나 애굽으로 갔습니다. 애굽에서 그는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쫓겨나 그는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중 삼중의 “이동”이 그에게 발생했습니다.
| 고향 | 애굽 |
| 보디발의 집 | 감옥 |
그러나 그런 “이동”은 인간적인 모략에 따른 것입니다. 형들이 그를 애굽으로 팔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그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적인 모략은 요셉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종이 되었다가, 죄인이 되었다가,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상황이나 자리와 관계없는 “일정한 법칙”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주 동행 법칙”입니다.
더욱이 요셉은 나중에 형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5
이것 보십시오. 이런 믿음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존하고 바라보는 영적인 사람의 몫입니다. 형들이 근심할까봐 “돌보는” 요셉, 그가 진정한 형들의 ‘지도자“ 아닙니까? 이미 꿈으로 미리 보여준?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를 살핀 사람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간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믿음. 그것이 그를 유혹에서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다음 장에 배우게 될 바, 감옥에서도 오히려 관리들을 도와주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감옥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혹이 많은 시대입니다. 어떻게 이길까? 요셉처럼 하나님 동행의 법칙을 언제나 실천하는 길 뿐입니다. 그러다가 사람의 덫에 걸릴 수가 있지요.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분노하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자가 분명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그러나 그런 자들의 복수가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겨냥하여 감옥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옥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저는 11월 15-16일 양일간 Salinas에 있는 주 교도소에 세미나 인도하러 갑니다. 말씀을 전할 것인데, SPR로 읽는 성경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먼저는 세상에서 여러분을 이끌어 내어 이 감옥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그렇게 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무슨 소리냐? 하나님은 겨우 내게 감옥을 선사하신 것이냐? 그렇게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까요?
아닙니다. 지난 해 가서 설교할 때 느낀 것은, 감옥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일을 보이셔서, 그것이 그들을 감옥에 이르게 하셨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도 성경을 더 잘 공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런 자리를 마련해 놓으신 줄을 분명히 믿을 것입니다.
금문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교도소보다는 더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불평하고 만족이 없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더 크고 더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건 현실성이기도 하지만 당위성입니다.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신 사람입니다. 우리도 다 그런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서 태평양을 건넜고, 그래서 오늘 금문교회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이 무엇입니까?
주 동행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악한 여자의 손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감옥에 가게 하셨는데, 보디발의 집보다는 감옥이 더 안전하고, 더 거룩하고, 더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을 볼 때, 옛날보다 더 못 살고, 더 불편하고, 더 어렵다면, 그건 요셉의 “이동”과 연결짓기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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