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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주일설교#요셉과두관원장#창세기40:1-23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566
  • 16-10-27 00:30

20161030

금문교회 제499주년 종교개혁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요셉과 두 관원장

창세기 40:1-23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했다.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었다. 곧 요셉이 갇힌 곳이었다.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했는데 요셉이 그들을 섬겼다.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 지났다.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었다. 각기 그 내용이 달랐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보였다.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습니까?

8.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다.” 요셉이 그들에게 말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청합니다. 저에게 말씀해 보십시오.”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했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었다.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다.”

12. 요셉이 그에게 말했다: “그 해석이 이렇습니다. 세 가지는 사흘입니다.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될 것입니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입니다.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말했다: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말했다: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세 광주리는 사흘입니다.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을 것입니다.”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했다.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렸다.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한 대로 모두 되었다.

23.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어버렸다.

종교개혁 제49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은혜, 이와 같은 3대 종교개혁정신을 되살려 보아야 하는 소중한 때입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합니다. 성경을 배우고, 그 배운 말씀을 세상에 가르치고 전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 몸이 성전인 모든 성도의 사명도 이와 일치합니다.

요셉은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을 통해 허락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은 사람입니다.

요셉, 지금 그는 가장 참혹한 인생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있습니다. caring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돌보는 자가 지도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돌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온 세상의 양떼를 돌보는 사명자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서 오히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을 신임했습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모두 애굽 왕 바로의 높은 관리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상상이 가능합니다. 분명 왕을 시해하는 어떤 무리들과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들에게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누가 높은 사람입니까?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4-15

가장 하찮은 인간 앞에 무릎 꿇고 앉으신 분. 이 분이 누구십니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6-28

요셉은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참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워하는 중에 그를 닮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의 경우도 그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점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요셉은 감옥입니다. 여기서 그는 섬기는 이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본래 총리건 왕이건 백성을 섬기라는 직분 아닙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가장 작은 일에 충성한 그에게 큰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1

감옥에서 같은 죄수 된 처지의 두 사람을 섬긴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일이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훗날 그는 애굽의 온 나라를 섬기는 총리로 발탁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관원들의 얼굴이 몹시 상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창세기 40:7

이 질문은 좋은 질문입니다. 참 귀하고 아름다운 질문입니다. 고통과 슬픔 중에, 두려움과 염려 중에 고독하던 그들을 밝은 빛으로 이끌어 내는 질문입니다. 참된 관심과 사랑으로써 낸 이 질문은 저들에게 한줄기 소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창세기 40:8a

아하, 이제 알겠습니다. 저들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뜻을 알지 못할 흉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세기 40:8b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이 놀라운 선언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주시고, 그 주신 꿈의 뜻을 세상에 알리십니다.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누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이 놀라운 권면은 주님과 동행하는 자만 감히 낼 수 있는 말입니다. 두려움과 고독에 시달리는 이 두 사람을 진정으로 위로할 길은 그 꿈의 바른 해석에 있습니다. 그 바른 해석은 꿈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그가 감히 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두 관원장은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꿈을 말했습니다. 꿈 내용을 말해서 그 바른 해석을 들으리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그 꿈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저들도 아는 바, 요셉은 그저 히브리인 출신 노예로서 죄를 지어 수감된 죄수 아닙니까? 그런데 죄수 요셉에게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마치 도움을 청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순진하게 되어 저들의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충만하신 것을 그들이 발견한 바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과 그 임재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람의 깊은 영적 감화력은 숨기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력이 그러하듯, 하나님의 영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놀라운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풀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앞으로 3일 안에 복직될 것입니다. 그를 얽매었던 의혹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기뻐하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요셉이 청합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세기 40:14-15

본문에는 없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약속을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본문 말미에 그가 요셉의 일을 잊었다고 한 것은, 그가 기억하기로 약속한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떡 맡은 관원장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풀었습니다. 떡 맡은 관원장은 그로부터 3일 안에 사형 당하고 말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된 이후, 그는 요셉의 일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요. 무엇보다도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그는 새롭게 시작하는 일, 거기에 몰두했습니다. 사람은 고통스러웠을 때의 일을 일부러라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그 망각의 늪은 그 사람을 철저하게 과거로부터 차단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1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는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고 번민하는 장면이 시작합니다. 그것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번민하면서 술을 찾는 바로를 섬기다가, 비로소 그는 정성으로 자기의 번민의 때 그를 섬겼던 어떤 히브리인 종 출신 요셉을 생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창세기 39장에 이어, 한결같은 주제를 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충성하며 헌신적으로 사역했습니다. 그는 종이었어나, 섬김의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사실 영적으로 높은 자존감 있는 자의 몫입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섬김은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섬김은 요셉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송과 함께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40장에서 우리는 요셉이 궁지 중에 궁지에 몰린 것을 읽습니다. 그는 정직하였지만 부정한 여인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죄를 밥 먹듯이 하던 사악한 여자가 순전한 요셉을 죽음의 올가미에 걸었습니다. 사면초가입니다. 설상가상입니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니었습니다. 거기는 절망의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신문지를 깔고 덮은 차디찬 콘크리이트 바닥이 아니었습니다. 엎드려 섬겨야 할 사람이 있는, 말하자면 사명자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리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사몀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가 꾼 꿈에서 그는 그것을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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