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1-31 주일설교#죄를다스리라#창세기 4:1-2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234
  • 16-01-29 23:22

201613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1-26

1. 남자가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 그리고 여자가 가인을 낳았다. 여자가 말했다: “내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그 후에 여자는 아들의 동생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고 가인은 땅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흘렀다. 가인은 땅에서 얻은 열매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다.

4. 아벨은 그의 몫으로 양떼의 첫새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왔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가 드린 예물은 받으셨다.

5. 그러나 가인과 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굉장히 심각하게 마음이 상처를 입었다. 얼굴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왜 네가 상처를 받느냐? 왜 네 얼굴이 땅에 떨어졌느냐?

7. 참으로 네가 옳은 일을 한다면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는 너를 지배하려고 달려들겠지만 너는 그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

8. 가인이 그 동생 아벨에게 말했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고 말았다.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그가 대답해 드렸다: “저는 모릅니다. 제가 제 동생의 책임자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라.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는다.

11. 그러므로 너는 땅으로부터 더욱 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은 그의 입을 열어 네 손에서부터 네 동생의 피를 받았다.

12. 네가 땅을 갈아도 땅은 더 이상 네게 힘을 내 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땅 위에 끝없이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될 것이다.

13. 가인이 여호와께 말씀드렸다: “제가 받는 벌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14. 당신께서 저를 오늘 땅에서 쫓아내셨기 때문에, 저는 별 수 없이 당신의 곁을 떠나야 합니다. 지구상에 끝없이 방랑하는 나그네가 될 것입니다. 저를 만나는 누구라도 저를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1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약속하지. 누구라도 가인을 죽인다면 일곱 배나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를 만나도 그를 죽일 수 없도록 여호와께서 표 하나를 가인에게 주셨다.

16.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에 있는 노드 땅에 정착했다.

17. 가인이 그의 아내를 알았다. 그러자 여자가 임신해서 에녹을 낳았다. 그리고 그가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 이름을 아들 에녹을 따라 에녹이라고 지었다.

18. 에녹에게 이랏이 태어났다. 이랏은 메후야엘을 낳았다. 메후야엘은 메투사엘을 낳았다. 메투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 라멕은 두 명의 아내를 두었다. 하나의 이름은 아다였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질라였다.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다. 그는 텐트에 거주하며 목축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21. 그의 동생 이름은 야발인데, 그는 수금을 타며 피리를 부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22. 질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그는 청동과 쇠로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다.

23. 라멕이 그의 두 아내에게 말했다: “아다와 실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혔는데 그 보응으로 나는 그를 죽여 버렸다.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24. 망릴 가인이 일곱 배로 보응 받는다면, 라멕은 칠십칠 배로 보응 받을 것이다.”

25. 아담이 그의 아내를 다시 알았다. 그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셋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다른 자손을 주셨다는 뜻이다. 가인이 그를 죽인 때문이다.

26. 셋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때였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선악과 사건을 읽었습니다. 그까짓 나무 열매 하나 따먹었다고 그렇게 큰 문제인가? 그렇게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크게 대응하셨을까? 쫓아내시고, 정문을 스랍들과 빙빙 도는 불칼로 막아 버리시다니! 문 걸어 잠그고 빗장 지르는 셈 아닌가? 설마 당신께서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에 매이신 것은 아닐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나무 열매 하나에 그토록 진노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하나님 맞나?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죄의 본질이 본래 그런 것입니다. 죄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죽이고 영원히 살아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첫 번째 죄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반응하신 것은,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뚜렷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눈으로 쳐다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게 되어, 손을 들어 그걸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죄 짓기가 이처럼 손쉽습니다. 그런데 그 쉬운 죄에 대하여 반응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극단적입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죄를 짓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로 어떤 준비를 하지 않고도 사람은 살인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사람은 순간에 생명을 파괴합니다. 간음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욕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사람은 언제라도 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그 대가는 크고 엄청나고 죽음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구원해 주실 것인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파괴하고 죽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길입니다. 가벼운 일처럼, 일상적인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의 옷을 입고, 유행의 길을 타고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부숴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길은 전혀 다른 극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모든 고통과 슬픔, 모든 배반과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죽음의 잔을 끝까지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가 어떻게 커지는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죄가, 이제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을 가져오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수만 년에 걸쳐 진화하듯이 그렇게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1에서 1,000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처럼, 아니, 0에서 무한대로 단번에 날아가 버린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런 엄청난 속도에 두 손을 놓아버리고,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의 동생 아벨이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 세대의 세월이 겨우 흘렀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사람의 눈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죄가, 이제는 형제간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얼마 후에.

이렇게 죄는 진화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사소한 것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사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죄는 일정하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죄는 본래, 그 성질이 모두 죽음을 댓가로 지불해야 하는, 엄청난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쳐다보고, 손을 내밀어 그것을 따먹은 것이나, 동생을 잔인하게 살인한 것이나, 본질상 그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되는 동기가, “이것은 사소한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저 선악과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저 손 닿는 데 있는 그것을 잡아 보았을 뿐이다. 그저 그것을 입에 대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 입만 깨물어 보면 어떨까? 기왕 먹은 것, 남편에게도 주자. 기왕에 엎질러진 물 아닌가?

이렇게 죄가 작아 보이고, 하찮아 보이고, 사소한 것 중에 하나로 보이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죄는 똑같은데. 모든 죄의 값으로는 반드시 죽음을 치러야 하는데.

그러니까 죄는 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도 반드시 죽을 죄를 지은 것이고, 가인도 영원히 죽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죄가 진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덫에 걸리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되, 작은 죄는 내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사소한 실수였다고 변명할 준비도 할 것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죄의 질에 따라 벌의 형량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벌금형도 돈의 경중이 다르고, 징역형도 기간이 다릅니다. 같은 기간이라도 독방은 더 심각한 죄에 대한 처벌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모든 죄는 다 똑같습니다. 어떤 죄인지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죄는 다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어야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나, 오늘 동생을 죽인 가인이나, 모두 한 결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필요했습니다. 그것 아니고는 살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그것은 가죽옷이었고, 창세기 4장 오늘 본문에서 그것은 였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였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3절 전반부입니다.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 사이에 많은 자식이 태어났습니다.

가인은 농부였기 때문에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지고 제물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얼굴색이 달라졌습니다. “왜 내 제사만 안 받으시는 것일까?” “내가 아벨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 심하게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분하여 하는 까닭은 무엇이냐?

얼굴색이 변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지금이 언제입니까? 행동이 나오기 전입니다. 동생을 향해 돌이나 나무, 그 어떤 것을 들어 쳐 죽이기 이전입니다. 그저 얼굴만 붉어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 보십시오. 가인은 아직죄인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처럼 그를 몰아세우시는 것입니까? 분도 못 내는 것입니까? 얼굴색도 변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선을 행하면?이라니. 마치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고 만 것처럼 몰아세우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십니까? 그건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니. 이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그는 악을 행했기 때문에 죄가 문 앞에 짐승처럼 엎드려 그를 물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보십시오. 지금 분명히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기 이전입니다. 살인죄를 놓고 볼 때, 그는 아직 행동에 돌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이미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는 얼굴색이 변함으로써 그가 분노하고 있는 것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분노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