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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주일설교#네 말이 옳도다#마가 15:1-2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808
  • 15-12-11 22:59

20151213

금문교회 성서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네 말이 옳도다

마가복음 15:1-20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6. 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좋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13. 저희가 다시 소리 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발라도가 가로디,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18.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에 걸맞게 오늘 말씀의 주제는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 예수님 재판의 제2입니다.

지난주는 유대인 산헤드린의 재판으로 로마 총독 재판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재판은 대법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앞에 세웠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동원하여 재판준비를 철저하게 마쳤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고소장을 접수했으므로 예수님의 죄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대하여 드린 첫 번째 질문은 이랬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의 대답을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했습니다. 여기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심각하게 들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빌라도의 문제는 그가 진리를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모르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일사천리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일생일대의 실수가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마가복음에서는 유대인의 왕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내어 준 것은 그가 진리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변명이 있겠지만, 어떤 변명도 그의 죄를 덮을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는 이런 변명이 가능합니다.

1. 나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비유대인 즉 이방인이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른 경우를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하인을 살린 믿음이나, 다른 백부장이 십사가 사건을 경험하고 그는 정녕 의인이었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별만 의지하고 예루살렘 근방까지 왔으나 길을 잃었습니다. 묻기를 마지하지 않은 끝에 미가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지를 알았고 마침내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 여자가 딸을 위해 부르짖은 끝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변명은 결코 고려의 여지가 없습니다.

2. 빌라도는 짧은 시간 동안만 주님을 만났습니다.

말하자면 공부시간이 짧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의 한 강도는 매달려 있던 시간 중에 자기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주시라는 말만 듣고도 다윗의 자손 예수님께 호소했습니다.

3. 다른 사람들이 소란을 파워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명의 문제 앞에서는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빌라도의 문제는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알고 있습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진리가 없으므로 인간은 죄의 노예로 남아 있습니다. 진리를 안다 함은 어떤 종류의 정보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한복음 8:36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 되는 내용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믿어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모두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 아멘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믿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1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6

말씀 순종의 사람은 반석 위에 집 짓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니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태복음 7:24-25

빌라도의 변명이 전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의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b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계략이나 빌라도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가룟 유다의 배반을 이용했습니다. 모두 저들의 계획을 따라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손뼉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한 마리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심으로 걸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빌라도처럼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망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베드로를 위시한 열한 제자들이나 다른 제자들처럼 나중에라도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구원과 멸망을 분명히 갈라내는 심판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합니까? 진리를 알고 깨달은 말씀을 실천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빌라도와 유대인들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확실히 빌라도는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보다 훨씬 주님께 대하여 우호적입니다. “우호적이라 함은, 예수님께 대하여 한층 객관적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죽이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방인 빌라도는 그럴 미움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죄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바 사형판결을 내릴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빌라도와 유대인들의 견해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명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를 따라 예수님을 방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예수님은 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질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강도행위를 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주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바라바는 사람을 상하게 한 자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예수님께서 방면되셔야 하는 것인데, 대제사장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게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잘못한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백성들의 의견에 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다가 민란이라도 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총독이니까 무력으로 다스리면 되겠지만, 그러다가 사상자라도 발생할 경우 상부에 보고할 때 곤란해지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도로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것을 빌라도가 꺼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정치적 부담을 이겨낼 만한 소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진리를 모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진리를 알면,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려놓을 수가 있는 법입니다. “가치보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 보수주의라고 할 때는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보수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자는 보수주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가치보수주의자입니다.

진리가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빌라도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빌라도의 손을 떠난 예수님은 무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엎드려 경배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주님께서 네 말이 옳도다하셨는데, 빌라도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인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조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말하면서.

믿지도 않는 말을 우스갯거리 삼아 내뱉는 것은 모욕입니다. 그들의 모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갈대로 주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또 꿇어 절했습니다.

사람이 모욕을 받으면 견딜 수가 없는 법입니다. 잃어버린 명예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결투가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결투는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려는 강력한 동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당했다면 누구라도 결투를 신청하고 말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살하는 동기 중에 명예를 손상당한 것이 결정적입니다.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위해 가족 내 살해하는 명예살인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두 참아내셨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께 입혀드렸던 자색옷을 벗기고 도로 예수님의 옷을 입힌 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대로 끌려가시는 주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얼마나 모욕을 참아냅니까?

가치보수주의를 말씀드렸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모욕을 참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지켜내기 위하여 그 모진 고통을 참으셨습니까? 그것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진리는 어떤 사상이나 이상, 꿈이나 비전이라기보다는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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