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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주일설교#소금화목#마가 9:38-50

  • 작성자 : pastor
  • 조회 : 8,601
  • 15-07-25 20:14

2015719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소금화목

마가복음 9:38-50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하시니라.

요한은 편 가르기가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를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행위를 금지시켰습니다.

칭찬 받으려고 드린 말씀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께서 그를 꾸짖으셨다는 데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께서 높은 자리에 오르실 때 주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속적인 사람이요, 정치적인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편 가르기입니다. 편 가르기가 무엇입니까? 누가 내 편인가? 누가 저쪽 편인가? 이런 데 민감한 사람이며, 잘 지내는 무리들 중에서도 사람을 충동질하고 갈라내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요한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예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주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 요한의 금지는 주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요한의 말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내쫓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에게나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귀신 쫓는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그룹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한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가 우리 편이 아니라면, 그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그것입니다. 맞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더 들어 보십시오.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이 무슨 말씀인가요?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능력 있는 일을 행하는 사람이 즉시로주님을 비방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결국 나중에 주님을 비방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를 금지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닌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나중의 일은 그때 가서 따질 일이다.

지금 아니라면 괜찮다!

보통 편 가르기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나중입니다. 나중 어떠할 것이 분명하니까 너는 우리 편이고, 너는 적이다! 그런 논리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한의 논리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아니다!

지금 아니라면

그를 막지 말라.

사람이 어찌 내일 일을 안다는 말입니까? 그런 막연한 추측으로 오늘을 판단하는 사람이 어찌 정상입니까?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지금 어떤 자가 있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적어도 지금은 주님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는 일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가 지금 주님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주님을 위하는 자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모세의 때도 그랬습니다. 민수기 11:24-30이 본문입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70명 장로들도 성령충만하여 예언했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진영에서 예언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모세에게 건의하지요.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11:29

그가 하나님의 영을 제대로 받기만 했다면 설령 제도적 지도자 그룹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사역은 막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3:4-12의 본문은 사뭇 다르지요. 구브로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사역할 때였습니다. 그 섬의 바보에 이르니,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요 마술사가 사람들, 특히 총독을 충동하여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물리쳤습니다. 그는 즉시 안개와 어둠에 덮였습니다.

사도행전 19:8-20 배경에서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그러자, 악귀가 대답합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악귀 들린 자가 그들에게 뛰어 올라 눌러 이겼습니다. 그들이 상해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쳐 나갔습니다.

거짓으로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거나, 주님의 이름을 가장하여 시험하는 행위 모두 주님께서 물리치십니다. 다만, 진실로 그가 성령충만을 받았다면, 설령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사역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낟.

오늘 우리의 삶에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편 가르기는 무조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질투와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평화가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편 가르기는 막아야 합니다. 편 가르기를 막는 논리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지금 우리를 비방하지 않는다면 그는 적이 아니다. , 나중에 어떻게 될까 하는 추측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는 일로 그를 평가하라는 말씀입니다. 미루어 짐작하기는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분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가장 큰 오류가 여기 있습니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배반할 거야.

틀림없이 배반할거야?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내일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자기의 발걸음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또한 주님께서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어떤 사람이라도 너희를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 하여, 곧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주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상으로 갚아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누군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떤 좋은 일을 한다면, 그의 보상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는 물 한 그릇의 가치를 주목하시고, 그에 대한 상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상을 받는다는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지금 그리스도인에게 물 한 그릇을 주는 사람에게! 그렇지요? 그렇다면, 지금 요한의 경우로 소급해 올라가면, 그가 어떤 사람이 있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은 요한을 위시한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는 자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저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보다 훨씬 더 크고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행하는 일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마땅한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섭고 떨리는 표현입니다. 보세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무슨 뜻입니까? 우선, “조건문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일 중에 들었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어린 아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종이나, 여자나, 사회에서 멸시 받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가 예수님읆 믿을 때, 사람이 그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렇다면 그 일을 발생하게 한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요나가 있습니다. 그는 죄를 짓고 도망치다가 그가 탄 배가 풍랑에 휩쓸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한 것입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요나를 바다에 던져지게 하셨습니다. 물론 연자 맷돌은 목에 걸지 않았지요.

이처럼 바다에 빠뜨려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 누구라도 실족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보호해 주십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한다면, 찍어 버리라.

발이 너를 범죄 하게 한다면 잘라 내 버리라.

눈이 너를 죄 짓게 한다면 빼내 버리라.

손이나 발, 눈이 없이 천국에 가는 것이,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함축된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말씀의 흐름을 볼 때, 사람이 그 손으로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거나, 그 발로 주님의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눈으로 그리스도인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그건 차라리 손, , 눈이 없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아예 그리스도 안에 작은 어떤 사람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 그런 말씀입니다.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어 낙심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그를 편 갈라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유 없이 편 가르기 당하여 누군가의 적이 되어버렸다면, 그것처럼 슬프고 또 괴롭고 또 낙심되는 일이 또 있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무슨 해꼬지를 했나요?

그런데 왜 나를 적이라고 표시를 붙이고

그런데 왜 나를 원수로 적대시 합니까?

그렇게 하는 손, , 눈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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