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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5 주일설교#기도하는 집#마가 11:12-2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212
  • 15-09-04 23:14

201596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마가복음 11:12-26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채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없음.

본문은 다음과 같은 삼단구조입니다: 무화과나무(12-14), 성전청결(15-19), 무화과나무(20-26).

이 구도만 놓고 보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두 말씀(12-14; 20-26)은 성전청결(15-19)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물처럼 흘러가도록 읽거나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그 뜻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은 성전청결 사건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설교는 말씀의 핵심주제인 성전청결 사건을 먼저 전하고, 무화과나무 사건을 소개하는 순서로 가겠습니다.

호산나! 외치는 소리와 함께 입성하신 주님께서는 성전을 둘러보셨습니다. 때가 이미 저물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데리고 호산나 입성 출발지인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이튿날 주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오셨습니다.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를 보셨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나무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보시니, 성전 안이 난장판이었습니다. 매매하는 자들이 많았고, 돈을 바꾸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내쫓으시고, 그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아무나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 “바리케트같은 것을 치시거나, 아니면 양팔을 벌리거나, 그도 아니면 제자들을 동원하여 문을 막아서게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행위예언이었습니다. 무슨 말씀 없이도, 이미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은 불법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데까지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성전을 드나드는 무리들을 막아선 행위와 대단히 흡사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거짓행위를 전혀 그치지 않고 회개 없이 제사행위만 집중했습니다. 그런 제사행위는 위선입니다.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도 없는 그런 제사를 받으실 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를 품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거짓행위를 일삼으면서 성전 문을 드나드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주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성경말씀의 인용이었습니다. 이사야 56:7입니다. “기록된 바로 시작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은 모든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신 말씀은, 앞서 말씀드린 바, 예레미야 7장의 성전설교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예레미야 7:11a

성전에서 쫓겨난 이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갔습니다. 모든 내용을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듣고 모의했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이제는 죽이는 방도 외에 달리 없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며,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놀랍게 여기고 두려워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권세 때문에 백성들이 놀라워하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곧 사건의 전개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기존의 종교권력자들, 곧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등은 소외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되는 것은 저들에게는 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막기 위해서 예수님을 제거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저들이 모여 모의하여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이자!

그런데 어떻게 죽일 것이냐?

그날 날이 저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호산나 입성하셨다가 성전을 나오신 다음 날, 다시 성전에 입성하셨는데,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무슨 명령을 내리신 후, 성전에 들어가셔서, “강도무리들을 내쫓으시고, 저들의 상과 의자를 엎으시고, 아무나 성전을 드나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음날이 왔습니다. 주님께서 지나가셨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명령을 내리셨던 바로 그 무화과나무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여쭙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복음 11:21b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 전날 성전에 들어가시던 길에 무화과나무를 보셨고, 나무가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신 후, 무슨 명령을 내리셨음을 읽었습니다. 그 명령은 저주였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11:14b

주님의 저주를 제자들이 분명히 들었습니다(마가복음 11:14c). 오늘 베드로가 그 사실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의 생각에, 그 나무가 열매가 없어서 예수님께 벌을 받아, 저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저주하신 바로 그대로 나무가 말라 죽었구나,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놀랍게도, 그 말씀은 베드로의 저주언급을 그대로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정말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었다면, 그 다음 말씀이 이런 정도여야 했습니다.

열매가 없는 자는 이처럼 망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열매 없는 자가 받을 저주가 초점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게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능력,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능력은 믿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어서 하나님을 믿기만 한다면 산이 바다에 던져지라는 명령도 오히려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이, 본문 구조를 따르면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거나 유대인들에게 대한 말씀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용을 분석하면 무화과나무에게 하신 말씀은 오히려 말씀능력을 강조하시기 위해 무화과나무가 사용된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이라도 사용되어 믿는 자의 말씀능력이 극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본문에서 믿고 기도하는 자의 기도가, “용서에 초점이 있다고 믿습니다. 25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25

결론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용서입니다. 바로 이 용서라는 주제가 본문의 핵심입니다. 이 핵심을 중심으로 본문을 다시 읽으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바로 이 용서를 위함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성문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는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주님의 저주로 당장에 말라 죽고 말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말라죽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산이 바다에 빠지라고 명하여도 그대로 되는,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죽고, 산이 바다에 빠지게 되는 일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통해 주님께서 가능성을 말씀해 주신 것은, 오히려 용서입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용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로 그 용서를 하셨습니다. 어떻게요? 당신의 십자가로써!

그러니까, 성전에서 발견하신 바, 장사하는 무리들의 강도짓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도 모두 용서받아야 할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용서하시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말라죽게 하는 일이나, 산을 들어 바다에 빠지게 하는 일처럼 엄청난 일이지만 모두 믿음안에서 가능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용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난이도로만 표시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합니다. 용서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은 끝까지 가야 할 길입니다. 주님께서 호산나 입성하신 예루살렘 길은 바로 그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영광받으셔야 할 는 바로 그 십자가의 때였습니다. 십자가가 곧 예수 그리스도께는 영광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드렸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과연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난으로써 바로 그 영광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하신 바, 강도들무리들은 용서 받아야 합니다. 저들은 회개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저들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써 씻어서 온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무화과나무가 하루만에 말라죽거나, 산이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기적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마지막 말씀, 용서에 초점이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강도짓 하는 무리들을 저주하시고 멸망시키기로 하셨다면, 그처럼 당신의 분노를 표출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 대신 하늘의 불을 내리셔서 그냥 멸망시켜 버리고 말면 그뿐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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