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주일설교#큰권능과영광#마가 13:14-27
- 작성자 :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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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0-30 21:26
2015년 11월 1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큰 권능과 영광으로
마가복음 13:14-27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본문은 “환난”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영광”의 말씀입니까?
두 가지 서로 다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환난의 때인데, 바로 그 때가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입니다. 이것은 환영해야 할 일입니까,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까? 기쁨입니까, 슬픔입니까?
바로 여기서 성도들과 세상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슬퍼하고 탄식하겠으나, 성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을 예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과 분리하여 살던 성도들에게 그 날을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합하여, 세상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던 성도들에게 그 날은 두려움과 고통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세상과 분리”하는 삶으로써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가오는 환난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중요합니다.
환난이 왔을 때, “이것은 우리를 세상과 다르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영적 훈련”이라고 깨닫고, 단호하게 세상과 다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 세상이 산으로 간다면 바다로 가고, 그런 경우에 세상이 시장으로 나간다면 광야로 가야 합니다.
자, 그러면 바로 그런 날, 곧 “환난”이며 “영광”의 날이 올 때, 우리가 보는 “징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 징조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볼 때”입니다.
거룩한 곳은 반드시 거룩한 것이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는 거룩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들어오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무시되고 신성모독될 때, 그것이 바로 “환난”이며 “영광”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가 “분리”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가,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물을 넘치게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더럽고 추한 것을 몰아내시기로 결심하신 날, 더 이상 악한 것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바로 그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심판이 임하게 되고, 그동안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견디고 끝까지 인내하던 성도들에게는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는 아름답고 귀한 날입니다.
소위 “죄악이 관영”했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매를 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죄에 대한 벌”이 시작되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죄악을 징치하시는 날, 우리 “심판주” 되시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영원한 벌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은 무저갱에 영원히 갇힙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영원한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상 주시는 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가치보편성의 구현”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종교적 타부”로 치부합니다. kwame Anthony Appiah 같은 사람이 한 예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배타적인 그룹에게만 해당하던 규율인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어떤 배타적인 그룹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어떤 한정된 때에 사역하시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교명령은 모든 이들이 성령 받아 거룩해야 하며, 거룩한 성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야 하는 보편적 명령인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도 주님의 준엄한 명령을 거역하고 살아남을 자 없습니다.
환난은 그러므로 주님의 심판의 징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환난으로써 “세상”과 “성도”를 분리해 내십니다. 그리고 진리말씀으로써 천국 갈 선인과 지옥 갈 악인을 구별하십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
이 말씀의 배경은 다니엘서 8:23-25에 나타난 바 “한 왕”의 행실입니다.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반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뻔뻔하며 속임수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속임수를 행하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로운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리라.
다니엘서 8:23-25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 일어날 그리스의 4개 왕국 중 시리아에 본부를 둔 셀류커스 왕조의 에피파네스 안티오커스 4세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예루살렘에 제우스 제단을 설치하여 신성모독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군대를 물리쳐 버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도와주셔서 성전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건이 주전 165/4년에 발생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누카”(Hanukkah)로 부릅니다. 소위 “마카비 혁명”의 배경이며, 이후 “하스모니안 왕조”가 100년 동안 유대인 독립왕국을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자기 스스로를 높이며, 인본주의로써 신본주의를 파괴하려고 계획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자가 멸망의 가증한 물건인 제우스 제단을 거룩한 곳, 즉 예루살렘 성전 안에 설치한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며,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회를 주실 수 없는, 그래서 마침내 “성전청결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하누카”로 기념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의 제우스 제단이 예루살렘에 설치된 사건, 바로 그 때 “하누카”가 발생한 것처럼, 예수님의 예언 속에 들어있는 핵심은 “성전모독”에 대한 강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처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면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바, IN, OUT, IN 같이 하나님의 임재, 떠나심, 재임재 등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 행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과 거짓예배로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졌을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스랍을 타시고 그 자리를 떠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떠나심. 하나님의 부재! 이것은 그 자체로 형벌이었습니다. 이후 헌 담장 털 듯이, 누구라도 간단한 발길질이나 돌팔매질 하나로 간단하게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성전은 그저 하나의 건물, 그것도 어떤 권위도 전혀 없는 빈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놀랍고 놀랍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성전은 “거룩한 산성” 혹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성채”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46편의 비전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46: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11
나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성시화대회 때 설교통역을 맡은 바 있습니다. 흔히 “소돔과 고모라”라고 부르는 샌프란시스코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실 때 그것은 “산성”입니다.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성에 계신가, 떠나셨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믿기는, 아직은 주님께서 계십니다. 아직은 소망이 있습니다. 아직은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상황이 제법 굉장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있고, 거룩한 예배가 있으며, 성도가 피 흘리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의 개가를 매일매일 부르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도나이 쯔바오트 임마누
미시갓브-라누 엘로헤이 야아코브
시편 46:11
임마누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을 보십시오. 마냥 안심하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전서 5:8-9
마귀의 역사가 강하면 강할수록 환난이 극렬하고 견딤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세요. 그것은 도리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제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바로 그 사실을 저들의 발악적인 박해를 통하여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성적으로 사랑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일부의 주장을 벗어나 유럽과 미국은 이미 국가적인 입법과정을 거쳐 합법화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 국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미국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나라에서!
그래서 교회가 핍박을 받습니다. 이 핍박은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승부 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싸워 승리를 거두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대장 예수님은 이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악한 영은 사악한 논리를 가지고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획책합니다. 사악한 논리 중 하나는 바로 “종교적 타부”입니다. “특정 시대 특정 그룹을 위해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윤리강령을 오늘 이 시대 모든 나라에 강요하는 불의”를 타파하자고 피킷을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원토록 할 말은 “아멘!”입니다. 예와 아멘의 아름다운 영적 다이내믹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아멘! 그렇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멘!” “그 진리를 내가 믿나이다!”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종교적 타부로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 진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래서 로마서 1-2장에서 그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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