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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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1-16 주일예배#양과 염소 #마태 25:31-4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8,169
  • 14-11-15 17:07

20141116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양과 염소

마태복음 25:31-46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때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신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은 네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구별됩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재림주 예수님께서는 심판주가 되십니다. 누가 지혜롭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순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주인의 뜻을 그대로 이해하고 순종합니다. 받은 달란트를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익을 남기는 행위를 전도선교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들이 지혜로운 자인 까닭은 바로 그 생명구하기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자기 생각대로 주인을 이해합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주인은 굳은 자입니다. 굳었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속이는 자요 파괴하는 자입니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이 주인은 심지 않고 거두고, 헤치지 않고 모읍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상 하나님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선지자를 오랜 세월 동안 보내셨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참으셨고 인내하셨습니다. 소와 나귀 같은 짐승은 자기 집과 주인의 구유를 알고 저녁에 돌아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은가? 탄식하셨습니다(이사야 1). 결국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사역은 고난과 배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거두시기 위해 심으신 분이시며, 심으신 것을 가꾸신 분이십니다.

아울러 주님께서는 거두기 위해 헤치신 분이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얻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산과 골짜기로 찾아 나서셨습니다. 피땀 흘려 찾으신 이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시면서 기쁨으로 친구들을 이웃들을 청하셨습니다. 잔치를 여셨습니다. 이 사실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찾아내기 위해 헤치신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았던 자는 이런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지혜있는 자는 누구이며, 그는 지혜로써 말씀을 순종하여 달란트를 곱절로 늘린 사람이라는 사실인가를 드러냅니다. 이 사람은 또한 양과 염소로 구별된 만민 중에 으로 분류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양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군에 속하며, 양은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주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순종한 사람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마태복음 25장의 세 번째 에피소드,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양이나 염소, 두 종류 중 하나에 속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회색인간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의인도 악인도 모두 섞여 살고 있습니다. 누가 의로운 사람인지, 누가 악한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의인도 그의 의가 드러나지 않고, 악인도 악함을 충분히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주로 오셔서 심판하실 때, 분명히 틀림없이 구별하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구별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웃이 다음의 여섯 가지 경우에 해당할 때입니다.

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이웃이 이상의 각각의 경우에 해당될 때 주님께서 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고

집으로 영접하며

입을 옷을 주고

돌보아 주고

찾아가 방문하는 것

이런 일은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지혜로운 처녀가 했을 일이며, 한 달란트 가진 종이 아니라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이 했을 일입니다. 이처럼 여섯 가지의 경우에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행하는 일은 지혜로운 일이며, 주인의 뜻을 따라 바르게 행동한 경우로서, 이런 일을 행한 자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적은 일에 충성한 자입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즐거운 자리에 초대 받을 것입니다.

여섯 가지 경우를 돌아보겠습니다.

1.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100명이라고 한다면, 음식 걱정하지 않고 언제나 충분히 먹고 음식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어제 우연히 들은 통계로는 30% 정도만 충분한 음식을 먹고 남기고, 나머지 70%는 배고프게 잠들거나 기아선상에 있습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는 명령이 얼마나 시급한지 알 수 있습니다.

2.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었습니다.

세계 인구 중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는 자유를 누리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 평균 수명이 낮은 나라는 질병 때문입니다. 질병의 대부분이 열악한 물 사정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아예 물이 없어 목말라 죽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습니다.

한국이 지금 전세대란이라고 합니다. 전제를 놓는 대신 월세를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한국은 집 없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모기지 걱정 없이 사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요? 이 세상은 집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들을 누가 어떻게 영접할 수 있을까요?

4. 옷이 없어 헐벗었을 때 옷을 나누어 줍니다.

흥부의 자식들은 커다란 천을 구멍 뚫어서 함께 입었습니다. 오늘 옷이 없어 헐벗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는 옷이 있다면 이미 자기 옷이 아닙니다. 옷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5. 병들었을 때 돌보아 줍니다.

이 세상에 병들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모두 질병을 관심있게 돌보아 주고, 기도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특히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과 행동을 해 주어야 합니다.

6. 옥에 갇힌 사람들 찾아갑니다.

미국 인구의 0.7%가 현재 감옥에 있습니다. 이들도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고 꿈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도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옥에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교회는 1221일 주일에 살리나스 지역의 교도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양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다.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고, 내가 옥에 갇혔을 때 찾아와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묻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주님께 그런 일을 해 드린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와 당신을 일치시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염소에 해당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내가 목마를 때 물을 주지 않았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주지 않았다.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지 않았고, 내가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언제 주님께 그렇게 대우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질문은 우리가 만일 주님을 그런 처지에서 발견했더라면 반드시 주님께서 요구하시는대로 해 드렸을 것입니다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작은 자 중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은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씀은, 이 작은 자에게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할 리가 없다는 비판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높은 자와 동일시하지 않으셨고, 높은 자리에 앉지도 않으셨습니다.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세리와 창기들을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런 낮고 천한 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고 바르게 대우해 드렸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누구와 함께 계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친구가 내 친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친구로 모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친구는 이상의 여섯 가지 삶의 문제를 늘 걸머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집 없고

옷 없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무시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실제로는 다수를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소수의 엘리트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십시오. 엘리트들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관심 있게 기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을 결코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한 시간 40분 내려가면 살리나스(Salinas)입니다. 여기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이 태어난 집이 있고, 그를 기념하는 국립 스타엔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가 있습니다. 그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39)<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2)를 쓴 작가로, 196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의 가족사를 그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분노의 포도>가 그랬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데, 굶고 잠드는 아이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썼습니다. 생일인데 축하할 음식이 없는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느냐고 썼습니다. 국립 스타인벡 센터 내부에는 이주민의 판자집을 재구성한 것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뻐걱거리는 문을 열면 그 안에 누더기를 걸친 가족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 스타인벡이 살았고, 그가 가난한 농민들, 특히 이주 노동자 가족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생을 살았다는 것은 정말 귀한 사실입니다. 그는 두 차례나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끝내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졸업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겠지요.

1. 음식문제

배고픔은 널리 퍼져있는 문제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16퍼센트가 영양실조입니다. UNICEF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아동의 50%(1.1 billion)가 빈곤층에 속합니다. 하루 1.25달러로 생활하는 인구가 2008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22.4%입니다. 이중에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인구의 47.5%가 여기 해당됩니다. 우리교회 영어부에서 설교하는 아폴리네리 목사님의 나라 르완다가 이 지역입니다.

2. 식수문제

전 세계에서 78천만 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인구 아홉 명 중 한 명입니다. 전체 미국 국민의 두배 반에 해당합니다. 이들 중 340만 명이 해마다 오염된 물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합니다. 이들 중 99퍼센트는 저개발 국가에서 발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실 물을 주었고는 이런 사람들에게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공급하는 일을 반드시 포함합니다.

3. 주택문제

UN 통계에 따르면 1.6 billion 의 사람들이 기준 이하의 집에서 살고, 천만 명이 홈리스입니다. 우리교회 27명이 단기선교 다녀왔던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지역의 노동자 마을에서 본 참상은 잊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 때의 충격을 되살리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부터 뜨거워집니다. 르완다의 신학생의 집을 방문했던 김지웅 집사님은 통곡하고 돌아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집값과 렌트비는 소위 살인적입니다. 이럴 때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영접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몫입니다.

4. 의복문제

의복은 가장 구체적으로 건강문제입니다. 둘째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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