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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주일설교#칼을 가지는 자#마태 26:47-5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8,441
  • 14-12-13 18:50


26:47-56


칼을 가지는 자



금문교회 주일예배

20141214

조은석 목사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a.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하시더라.

56b.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칼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요? 그게 어디 될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생각을 경계하셨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47-50절은 유다의 배반 장면입니다. 소위 Judah's Kiss 라고 부르는데, 이건 배반이라는 뜻을 품었습니다. 주의할 것은 그를 47절에서는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고 썼고, 48절에서는 예수를 파는 자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어떤 서술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문에서 제자들이 등장하는데, 예수님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일컫는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두 번째는 51-54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칼을 휘둘렀습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라는 표현은 어떤 인물에 대한 이름을 대신한 표현입니다. 그의 이름을 직접 쓰지 않은 점이 거슬리지만, 그게 마태의 글 쓰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귀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이 대제사장의 종도 그저 이름 없이 그의 신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공통으로 선택한 방법입니다.

이 사건을 놓고 주님께서 어떤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에 대하여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55-56a입니다. 예수님을 붙들러 온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비무장이신 예수님을 잡으려고 무장을 해? 그건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무장하시거나 숨거나 하지 않으셨는데, 이런 방식으로? 그것도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왜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예고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배반을 당해도, 무시를 당해도, 예수님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온갖 박해와 불이익을 당해도, 마치 전혀 모르는 일이 발생한 것처럼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리라고 예고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 뿐입니다.

마지막은 56b입니다. “제자들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붙들리시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자기 생명 구하려고 도망칩니다. 세상에 믿을 인간 하나 없습니다. 그렇게 참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참사랑이 지금 배반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참된 사랑은 언제나 이런 대접을 받는 법입니다.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머리 속에 떠올리신 그 무기가 생명을 지키는 도구입니까? 아니면 비겁을 은폐하는 도구입니까? 불신을 덮는 핑계입니까?

칼을 의지하는 자는 칼로 망합니다.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칼은 안 됩니다.

무기를 사용하는 핑계를 댈 것입니다. “보세요, 주님. 저들은 칼과 몽치까지 가졌습니다. 저는 그저 칼 하나뿐인데요!” 확실히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은 칼과 몽치로 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도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무장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태복음 26:53

주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비무장이신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경찰들이 과잉진압 문제가 큽니다. 그건 경찰력을 우습게 아는 무장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어봅시다. 우리도 칼이나 총을 가져야 할까요? 비상시를 대비해야 하는 건 아닙니까?

그러나 오히려 무기가 없는 사람이 더 안전합니다.

무기를 가졌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사태를 경솔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가 아닌데 위기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대처하는 방안입니다. 다른 지혜를 사용하는 대신 곧바로 자기가 의지하는 무기를 꺼내들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무장하고 있으면 그 무기를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칼이 없는 줄 알아?

무기 없이 사는 사람이 더 안전한 것입니다.

보통은 총 칼 같은 무기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돈입니다. 경제력을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로 사용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복수하는 마음으로 돈을 벌게 됩니다. 그래서 돈이 모이게 되면 무기를 꺼내 보이듯, 돈 자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발생한 대한항공 사건도 결국은 돈 때문에 난 것입니다. 돈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없어서 결핍된 생활입니다. 확실히 그래서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저의 불신, 분노, 무지 등을 쉽게 드러낼 기회가 상당히 많이 봉쇄된 은혜가 있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생활을 돌아봅니다. 지금 칼을 꺼내 든 사람은 그 이름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소위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통된 의견입니다. 무명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름에 민감합니다. 목자가 양을 알 때 그 이름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제자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귀를 베인 대제사장의 종은 말고입니다. 역시 요한은 그 종의 이름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베드로에 대하여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가 지금 주님께서 잡히시는 일에 흥분했습니다. 무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기를 휘둘렀습니다. 주님을 보호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려는 행동이었을까요?

주님을 진심으로 보호하고 자기의 책임을 진정으로 다하려고 했다면, 그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 드렸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행동하지 말고 주님처럼반응했어야 합니다.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름을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건 특별히 그가 제자들의 보편적인 입장을 대변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누구라고 특별하게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이, 누구라도 그 때는 그런 심정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이 본문에서 우리는 비교적 쉽게 우리 자신을 이 사람의 자리에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방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숨겨놓은 방법이라는 건데, 알고 보면 폭력이 대부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것을 이해해 주시지 않습니다. 동의해 주시지 않는 것도 물론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좋은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가 칼을 사용한 사실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총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부하의 총으로 저격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실은 준엄한 주님의 경고를 다시 깨닫게 합니다. 누구든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합니다. 속임수로 부자가 된 사람이라면 그는 속임수로 재산을 잃을 것입니다. 노름으로 돈을 땄다면 그는 노름으로 탕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더욱이 주님께 대한 신앙의 길에서 이 점은 분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거듭 자기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으로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가 닭 울기 전에 주님을 배반할 것으로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잤습니다. 세 차례나 주님의 권면을 듣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영적인 삶을 포기하고 육신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나타난 현상이 을 뽑아 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람은 칼을 빼어 듭니다. 기도 없는 사람의 해법은 무기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때마침 무기가 그의 손에 있었다고 변명하겠습니까? 좀 전에 저는 자기의 차 안에 총이 없는 것이 안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무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멀리 가지 말고, 집안에만 국한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부엌에 칼은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집은 명품 칼도 갖추고 있어요.

창고에 가면 여러 종류의 연장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건축하면서 보니까 요새는 못을 박을 때 쓰는 총이 있습니다. 한 뼘이나 되는 대못을 방아쇠 하나로 쏘아 박는데, 못 머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깊숙이 박힙니다. 탄창처럼 생긴 못 셋트를 끼고 방아쇠를 당기면 순식간에 20-30발이 날아갑니다.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자동차도 흉기가 됩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이 차로 돌진한 경우가 신문에 가끔 납니다. 높은 아파트는 건물 자체가 흉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 겁나서 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문제는 칼 자체가 아니라, 그 칼을 사용하는 자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먹기로 하면 세상 모든 것이 다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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