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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주일설교#베드로의 참회록#마태 26:57-75

  • 작성자 : pastor
  • 조회 : 8,727
  • 14-12-28 08:07

20141228

금문교회 송년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베드로의 참회록

마태복음 26:57:75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노라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 소리가 너를 표명한다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회에서 재판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직후입니다. 공회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구조는 바깥 뜰이 또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배경은 이 두 개의 뜰을 따라서 두 가지 장면이 펼쳐집니다. 57-68절은 안쪽 뜰에서, 그리고 69-75절은 바깥의 뜰에서 펼쳐진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 등 사복음서가 공히 이 두 장면을 하나의 동시적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오늘 본문인 26, 마가복음은 14, 누가복음은 22, 요한복음은 18장입니다.

비교적 상세한 장면과 인물묘사를 하는 요한복음에 따르면 한쪽 뜰과 바깥 쪽 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뜰의 한쪽에서 공회가 모이고, 다른 끝에 하인들이 모였습니다. 바깥의 뜰은 공회를 중심으로 변두리인 것은 확실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사람들 가운데 모닥불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연중 온도차보다 하루 온도차가 더 큰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밤이 몹시 춥기 때문에 모닥불이 필요했습니다. 요한복음은 특히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요한복음 18:18) 라고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바깥의 뜰에서 불을 쬐고 있습니다. 왜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신 때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까요? 그는 아직도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지금 공회의 재판을 받는 것에 일종의 책임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책임을 느꼈다면, 그는 재판의 자리에 나갔어야 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위한 증인역할을 맡았어야 합니다. 변호인도 없고 증인도 없는 예수님의 재판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그러나 이 불법은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수제자로 자처하던 베드로가 동조한 불법이라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안쪽 뜰은 공회가 열렸습니다. 유대인의 공회란 유대인 자치를 총괄하는 기구입니다. 이 기구는 로마 대제국에 편입된 유대로서는 결코 정치적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이끄는 종교적 기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내부에서는 출교같은 공회의 결정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처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회는 대단히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공회가 열리던 안쪽 뜰과 더불어 바깥의 뜰에는 일종의 모임이 열렸습니다. 거기는 공회에 참석한 공회원들이 데리고 온 하인들이 임시로 모인, 일종의 대기소였습니다. 안에서 부르면, 어떤 모습으로든지 뛰어 들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그들 중 누구에게도 섞일 수 없는 인물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대제사장을 잘 아는 다른 제자 한 사람이 베드로를 이끌어 불 앞에 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벌써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정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여종 하나가 묻습니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모든 사람들앞에서 부인했습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세 번의 부인 중에 첫 번째입니다. 여종이 물을 때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했는지, 베드로가 대답할 때 모든 사람들을 청해서, “모든 사람들!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나는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소!” 그렇게 외친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건 이 첫 번째 예수님 부인의 장면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앞문까지 나아갔습니다. 도망치려는 동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여종이 나섰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이 두 번째 여종은 베드로를 더 압박했습니다. 첫 번째는 갈릴리 사람 예수라고 했고, 두 번째는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했습니다. 납달리가 열두 지파 중 하나로서 같은 행정단위라면, 갈릴리는 일종의 군 같은 행정단위입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안에 포함 된 같은 단위입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여종은 훨씬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고향을 지적하고, 베드로가 예수님과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을 따지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아니었습니까? 주님과 함께 죽겠노라고 장담하던 자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 두 번째 여종에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에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의 사투리 억양이 묻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한 행동을 보십시오. 그는 저주하며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바로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질문과 대답을 정리합니다.

질문

대답

여종 1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여종 2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맹세하고 또 부인: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곁에 섰던 사람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첫 번째 경우에 베드로는 모든 사람앞에서 부인했습니다. 두 번째 경우에, 그는 맹세하고 또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부인은 완벽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까닭은, 그가 얼마나 주님을 분명하게 부인했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불의했습니다. 변호인도, 증인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훈련받은 제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들은 성령충만을 받았고, 그 후에야 주님의 증인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 땅 끝까지 달려가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서신은 물론 목회서신과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었습니다. 교회사의 모든 자리마다 성령님께 붙들림 받은 증인들의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예수님 당신 스스로도 어떤 유리한 변명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재판은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은 공회에서만 아니라, 곧 이어지는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똑같이 작용했습니다. 이때는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도망쳐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공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 신새벽, 닭이 마침 우는 그 순간을 마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75).

2014년 송년주일에 베드로의 참회록을 묵상합니다. 마태복음은 주후 60년대 후반에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가 주후 68년입니다. 엇비슷한 시기입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열 두 제자 중 하나로 세리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과 3년 동안 동행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베드로를 지켜보았습니다. 가까이서 베드로를 지켜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동료 마태가 기록한 베드로의 참회록입니다.

베드로 스스로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의 심정이 깊이 있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가 예수님 생각을 했습니다. 닭이 울 때였습니다.

마가복음 14:72를 여기 인용합니다: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가는 베드로가 닭이 두 번째 울었을 때야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다고 적었습니다. 처음 두 차례 주님을 부인하는 동안에 닭이 이미 한 차례 울었지만, 베드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주님 부인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두 번째 닭소리가 들렸을 때야 비로소 베드로는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누가복음 22:61을 인용합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니라.

누가복음은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보다는,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심, 곧 눈 마주치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베드로와 눈을 마주쳐 보이심이 닭 울음소리를 깨닫게 하셨고, 닭소리가 주님의 경고, 오늘 밤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을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닭이 무슨 인간적인 의도가 있겠습니까? 그 닭을 보내신 분도 주님이시고, 두 차례나 울게 하신 분도 주님 아니십니까?

요한복음 18:27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여기는 베드로가 통곡한 모습이 스케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특징은 하나의 중요한 사건을 여럿으로 나누어 기록합니다. 베드로의 부인사건도 대제사장 안나스의 뜰에 끌려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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