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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주일설교#쓸개 탄 포도주#마태 27:27-44

  • 작성자 : pastor
  • 조회 : 8,471
  • 15-01-14 13:58

2015111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쓸개 탄 포도주

마태복음 27:27-44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하였도다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형을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았습니다. 군대에 둘러싸인 힘없는 죄인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대신 홍포를 입혔습니다. 붉은 옷은 군인이나 황제의 복장 색깔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대를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렸습니다. 왕이나 황제가 홀을 들고 선 모습을 풍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왕에게 예의를 갖추는 척 하면서 모독했습니다. 평안할지어다! 이는 만세수를 하옵소서! 그런 뜻입니다.

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침을 뱉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몸에 침을 뱉는 행위는 가장 지독한 모독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는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막대기 같은 걸로 머리를 치는 것은 야만적 행동 아닙니까?

이런 희롱을 다한 후, 다시 홍포를 벗기고 예수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구레네 출신 시몬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시 예루살렘에 어떤 일로 왔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이후 이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고향인 구레네에 돌아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전파했습니다. 먼저 그의 가정이 복음화가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신실한 여인으로서 교회를 섬겼고, 그들의 아들이 루포입니다. 로마서 16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골고다는 해골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어 마시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맛 보신 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쓸개 탄 포도주는 당시 진통제로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죄수에게 주어 고통을 덜어주려는 일종의 배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모든 고통을 그대로 다 당하셨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시편에 예언된 내용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이로써 또 다른 증인이 역사한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희롱했고, 이번에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것도 시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이것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했던 마귀가 주었던 질문들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

여기서 주님께서 뛰어내릴 능력이 있는가 여부가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내려오신다면 주님께서는 그들 조롱하는 자들의 뜻을 따르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뜻대로 주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구속사건을 이루지 못하시고 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합세하여 희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했지만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들이 다시금 증인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한 말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했습니다. 특히 두 명 중의 한 명은 나중에 주님께 부탁드린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23:40-43절은 이 두 번째 강도가 주님께 돌아온 사건을 묘사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첫 번째 강도와 다름 없이 주님을 비방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돌아섰습니다. 첫 번째 강도에게 한 말입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어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께서 그 두 번째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 본문 안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1. 빌라도. 그는 예수님을 사형판결하고 실무자인 군인들에게 넘겼습니다.

2. 군인들. 그들은 에수님께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손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온갖 희롱을 다했습니다.

3. 구레네 시몬.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골고다로 갔습니다.

4. 지나가는 사람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면서 조롱했습니다.

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희롱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했지만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다.”

6. 함께 못 박힌 강도들도 주님을 욕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강도가 회심하여 주님께 구원을 요청했고,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여섯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구레네 시몬과 두 명의 강도 중 두 번째 사람의 경우는 긍정적인 부류에 속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1.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2.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주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모두 주님의 육체의 고통을 덜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1. 쓸개 탄 포도주는 통상모든 죄수들에게 베푸는 선심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몰약 탄 포도주”(마가복음 15:23)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3:36과 요한복음 19:29-30은 신 포도주를 주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거절했다는 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받으셨다고 해서 명예가 실추되거나 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2.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도구로 제시할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피하는 문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진지하고 논의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선택하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칼 포퍼의 말, 피할 수 있는 고통은 극소화하라!” 이것은 하나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굳이 피할 수 있는데 왜 맞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십자가의 길과 전혀 상반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어리석음입니다.

1. 주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속죄를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2.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달려 죽으심으로써 구속의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독교인 작가 필립 얀시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목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의사가 검진합니다. 통증이 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통증이 없다면 전신마비가 온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그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회복할 수 있으며,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한센병(나병, 문둥병)은 고통을 모르게 하는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손발을 잃고 심지어 시력도 상실합니다.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세상에서 고통이 없다면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회복을 절박하게 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가난하고, 병들고, 문제가 많고, 고통에 시달릴수록 신앙이 더욱 더 성장하는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 이 세상에서 다른 누가 결코 누릴 수 없는 영광된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오른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십자가 고난은 억지입니다. 우리의 본인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셨을 때, 우리는 억지라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은 그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라지 않는 고통, 원하지 않는 문제, 이런 것들이 엄습해 올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는 분명히 그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에 대하여 조금 더 묵상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간 구레네 시몬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마가복음은 그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구체적으로 시몬의 두 아들들 이름을 언급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루포가 로마서 의 루포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로마서 16:24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소개하고 문안하기를 청하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족이라면, 루포는 시몬의 둘째아들이고, 그의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특별히 문안하기를 청하는 데 들었을 뿐 아니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다는 표현과, 특히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는 표현은 대단히 강력한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라면 얼마나 깊은 영육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이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 식구들이 이처럼 깊은 영적 신앙생활 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의 식구들, 특히 그의 아내가 사도 바울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훌륭하게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으나, 결과는 그가 십자가를 진 것 아닙니까? 그의 아름다운 열매는 우선 그의 가정 안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일종의 억지가 될지라도, 도리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중에 감사하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이 고난은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묻고 또 물으면서, 이 눈물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진통제를 받지 않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돌로로사.

슬픔

이런 고난의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서, 끝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No Cross, No Crown!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귀한 말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순전하게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신 것처럼, 저희들도 고통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를 온전히 지게 하옵소서.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될 때, 오히려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하옵소서.

날마다 거룩한 길로 나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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