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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수정) 주일설교 #가장 큰 계명 #마태 23:23-4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864
  • 14-10-11 15:34

22:23-46

가장 큰 계명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날에 예수께 와서 물아 가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 계명만 제대로 지킨다면 다른 모든 계명을 다 지킨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모든 계명을 있는 그대로 다 지킬 생각을 한다면 이런 질문이 쓸데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냥 단순하게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집중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첫째 되는 계명은 신명기 6:4-9, 쉐마에서 났습니다.

둘째 되는 계명은 레위기 19:18하에서 났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가지에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요약으로 마치지 말고, 다시 모든 성경의 계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차례대로 모두 다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이 두 가지 계명을 제대로” “바르게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계명은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은 질문입니다. 정말로 가장 큰 계명을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 아니라, “시험하려고 한 것입니다. 질문의 동기가 대단히 불순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그들이 바리새인이건 사두개인이건, 모두 한 결 같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섞이지 않는데, 지금은 합력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먼저 일곱 형제들의 결혼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는데,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이제는 바리새인들, 그중에서도 율법사가 나섰습니다. 어떤 계명이 가장 큽니까?

이 대답 후에,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이 모인 자리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들의 생각을 환기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군중을 선동하여 자기들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이해하지 못할 인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그들의 관심을 그리스도께로 집중시키려 하십니다.

누구의 자손이냐?

첫 번째 질문은 애매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대한 대답은 복잡한 것입니다. 질문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하고, 들을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지금 다시 주신 이 두 번째 질문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성경에서 읽은 대로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라고 칭했느냐?

그가 한 말을 들어 보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이것은 웬 말이냐?

이런 질문을 받고 그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지도 못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던진 이 그리스도에 대한 질문의 동기 말입니다. 그 동기가 무엇인가 하면, “그들이 그날부터 감히 주님께 묻는 자가 없도록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라고 부른 사실 때문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 더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주(그리스도)께 이르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자들, 원수들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가장 강하고 가장 무서운 능력을 행사하실 것입니다. 원수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무릎꿇을 그 때까지!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였든지 못 이해하였든지, 그들은 예수님의 강력한 어조를 느꼈을 것입니다. 평소 저들에 비하여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권세를 가지신 분 아니셨습니까? 예수님의 권세는 놀라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28-29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사람들의 입을 막습니다. 저들의 질문의 화살을 떨어뜨리시고, 의심의 도성을 무너뜨립니다. 저들이 존경하는 다윗, 그가 입을 열어 그리스도를 라고 불렀다. 감히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러? 그리스도는 적들을 발 아래 둘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다!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교만하게 나서지 말라!

이 말씀이 품는 놀라운 능력권세앞에 저들은 주눅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감히 주님 앞에 나서서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겨우 한다는 것이, 주님의 뒤편에 서, 사람들과 모함하고, 악한 영의 힘을 얻어 예수님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결국 예수님의 발꿈치”(창세기 3:15)나 겨우 상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그것을 두려워하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의 머리를 밟으실 것(창세기 3:15) 아닙니까?

오늘날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는 전체 기조는 안티들의 이런 저런 말들입니다. 몇 가지를 읽어보면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저들이 날리는 화살은 우리의 심장을 꿰뚫지 못할 것입니다. 겨우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인데,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

이것이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는 겨우 원수에 불과합니다. 그들 원수들에게 결정된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하는 것 뿐입니다.

그들을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맞서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저들끼리 모여 따지고 있을 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분은 누구의 자손이냐?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다윗같은 어떤 인간적인 권세 아래 두려고 한다면, 성경말씀을 들고 분명히 선포할 일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7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세상의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지금 세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교만하여, 머리를 치켜 세우고 대듭니다.

그런 자들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웃으십니다(시편 2:4). 또한 그분께서는 분을 내시고 놀라게 하십니다(시편 2:5).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시편 2:6

성도 여러분. 이 세상과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세상권세는 교회를 억압합니다. 물질을 따르고 섬기고 숭배하는 세상의 가치관은 영혼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를 핍박합니다. 성도를 시험하고 진리를 부정하고 말씀에 귀를 막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소리를 높이 외칩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시편 42:3

그들은 완악한 말로 여호와를 대적합니다”(말라기 3:13). 그리고 말하기를, “언제 우리가 주님을 대적했습니까?”(말라기 3:13).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 아닙니까?

이런 자들을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해야합니다. 육신이나 겨우 해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까지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약하고 떨며 슬픔에 잠겨 살아가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가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를 공격하지만 우리는 공격 당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지만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오직 우리가 세상의 더러움에 취했을 때만 세상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을 때, 세상은 우리에게서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강하고,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당당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을 때!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히 율법의 말씀을 걸고 시험합니다. 부활을 모르니, 그 시험은 시험거리가 되지를 않습니다.

율법사들도 율법을 안다고 자처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율법이 마침이 되는 줄을 모릅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말씀이신예수님을 모르고 하는 모든 질문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가장 큰 계명인지 묻지만, 그 계명들을 다 이루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도 모르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은 하늘에 닿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을 믿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다시금 하나 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하늘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부활의 때에 육신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육체의 일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있는 육체의 학대에 눈 감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 과부,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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