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6-22 주일설교 #고치심과 먹이심 #마태 14:1-21

  • 작성자 : pastor
  • 조회 : 6,232
  • 14-06-22 06:44

2014622

금문교회 주일설교

조은석 목사

고치심과 먹이심

마태복음 14:1-21

세례요한의 순교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하였음이라.

5. 헤롯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오천 명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오천 명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 두 가지 죽음이 들어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세례요한의 경우 그의 육신이 어떻게 죽었는가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헤롯왕의 부정을 좌시하지 않고 지적했다가 그에게 의해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런데 이 죽으심은 암시되어 있습니다. 암시.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드러냄이 목적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이 드러나있습니다.

1. 병고치심, 2. 오병이어로 먹이심. 이 두 사건은 주님의 죽으심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병을 고치시려고 당신께서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병중의 병은 영적인 병인데, 이것은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문입니다. 2. 우리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당신께서 몸과 피를 주셨습니다. 영적인 굶주림은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영적인 병을 고쳐주셨고, 영적인 굶주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신 두 가지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성을 살펴봅니다.

1. 세례요한의 순교, 2. 불쌍한 무리들의 병을 고쳐주심, 3. 그리고 배고픈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함께 놓은 목적이 있습니다. 말씀 혹은 사건을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늘어놓았음을 주목하는 것이 juxtaposition theory입니다. 내용의 뜻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어떤 위치에 놓았는가, 즉 앞뒤에는 어떤 내용이 배열혹은 배치되었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이 등장하고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이 패턴, 즉 세례요한-예수님의 모습은 모든 복음서가 취하는 방식입니다. 세례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거룩하게 구별되어(S)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목적으로 파송된 자이기 때문입니다(P). 이제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 나라 천국에 이르렀습니다(R). 마찬가지로 본래 거룩하신 예수님께서(S) 이 세상에 오셔서(P) 병을 고치시고 먹을 것을 주심으로써 사역을 감당하심으로써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사역입니다(R).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함 받아서(S), 이 세상에 사는 동안(P)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R). 이런 거룩한 삶과 예배를 통하여 이 세상을 떠나서(S) 천국에 이르러(P) 영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 영원히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R).

세례요한이 죽자, 제자들이 그를 장사하고, 주님께 가서 보고 드렸습니다. 이 보고를 받으신 주님께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1. 무리의 병을 고치시고, 2.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연결되는 것을 읽으십니까? 세례요한의 죽음과, 그의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가서 보고드림과, 이 보고를 받으신 주님께서 어떤 반응으로써 특정한 사역을 하심. 이런 일련의 흐름을 주목하시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연결맥락을 읽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fore-runner)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요한-예수님의 연결맥락을 읽으며,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세례요한-예수님-우리의 패턴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우리-->예수님.

이 패턴이라면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의 fore-runners로서 살아야 합니다.

세례요한-->예수님=우리

이 패턴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두 가지 모두 적절한 해석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예수님의 길과 우리 길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의 앞에 서거나(구약의 모든 예언자들과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의 뒤에 서거나(신약의 모든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예수님을 앞선 이들과 동일시하는 은혜를 받고, 신약성경을 읽을 때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동일시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입니다.

세례요한-예수님, 이 연결패턴에서 분명하게 읽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요한이 죽고 예수님께서도 죽으실 것을 미리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과 달리, 주님의 죽으심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시는 사건입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대속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리는 사건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남의 영생을 위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도 다른 이의 죄를 속량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만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병을 짊어지심입니다.

사람의 모든 병은 죽을병입니다. 생로병사. 그렇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주님께서 당신의 죽으심으로써 사람의 병을 담당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은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심입니다.

유월절 전날, 주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예식을 집례하셨습니다.

성찬식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참된 양식, 참된 음료로 주심입니다.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Nothing! 오천 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병이어에 초점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신 예수님께 대한 대답이, “오병이어 외에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