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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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주일설교 #"나다!" #마태 14:22-3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303
  • 14-06-28 14:49

2014년 6월 29일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나다!”

마태복음 14:22-36

홀로 계시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나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게네사렛에서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동선을 보십시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직후입니다.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불렀고, 이제 흩어져 집으로 갈 때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해가 이미 져서 어두운 때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에서만 “즉시”가 세 차례나 나옵니다.

무리가 흩어져 가는 동안에 주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주님께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 배 안에 있습니다. 바람이 크게 불어 물결이 높게 일었습니다. 제자들은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누군가가 바다 위로 걸어오는데,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서워하며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즉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공포는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즉시” 행동하신 것은, 제자들이 두려워 떠는 것을 보고 계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신적인 권위”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명령하셔서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주님께서 “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람이 거칠게 불었습니다. 그는 놀라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면서 몸이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때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때 “즉시”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더라면 베드로는 물에 빠져 죽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불쌍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그와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태운 배가 바다를 건넜습니다.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락했습니다. 병든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기를 원했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대면 다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즉시” 행동하신 것과,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장면을 집중하여 말씀 전하겠습니다.

1. 주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후 “즉시”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 홀로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목적으로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흩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께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오판하고 놀라서 소리 질렀습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두려움이 오래 가면 병이 됩니다. 병을 고쳐주러 오신 주님께서 병이 생기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실 리가 없습니다.

3.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보시고, “즉시”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에 있는 베드로를 지체하지 않고 도와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즉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사람들에게서 인기가 높아질 때 떠날 줄 알아야 합니다. “박수 칠 때 떠나라!”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칠 때 “즉시” 떠나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추해질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떠날 때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이 놀랄 때, 두려워할 때, 안심시키는 것을 “즉시”해야 합니다. 그냥 놀고 볼 수가 없습니다.

3. 어떤 사람이 죽어갈 때, “즉시” 구출해야 합니다.

이런 세 가지 “즉시”는 우리가 “즉각성”을 늘 실천하고 살아야 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영어로 sense of urgency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런 즉각성을 가지고 있을 때, 용수철처럼 퉁겨져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젊음이 있습니다. 젊음의 특징은 즉각성입니다. 머뭇거리거나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름,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즉각성”으로 “안심하라!” 외치신 후, “나다!” 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을 즉각적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를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즉각적으로 자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영적으로 “투명”해야 합니다. 영적 투명성을 언제나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 속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곧,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내 안에 계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전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다가는 딴 소리 하고 맙니다.

훌륭하시군요!

이럴 때, 곧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가 여러분을 칭찬하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될 것이고, 자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벗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곧장 하나님을 인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때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머뭇거렸다가는 그 손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바로의 신하들이 꿈으로 고통당할 때, “그 꿈을 풀어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즉각 말했습니다. 바로의 앞에 서서도 그랬습니다. “내가 들으니, 네가 꿈을 잘 푼다더라!” 만일 여기서 요셉이 시간을 끌었더라면 그는 하나님을 소개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꿈을 해석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부불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느부갓네살 왕에 두 번째 기회를 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6-18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것이 바로 즉각성입니다. 대답할 필요가 있다면, 어떤(what) 대답을 어떻게(how) 할까? 고민할 것입니다. “말미를 주십시오!” 이렇게 타협을 시도할 것이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결국 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하나님. 저도 많이 고민 해 보았습니다.

저도 쉬운 결정을 한 게 아닙니다. 아시지요?

그러나 즉각성은 “준비된”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요 수입니다. 말하자면 등에 기름이 준비된 여자들처럼, 언제라도 대답할 것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는 시험에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권면이 이렇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 즉각성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준비 없는 자의 즉각성은 재앙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행동하심으로써, 1. 사람들의 인기를 버리셨고, 2. 제자들의 두려움을 씻어 안심하게 해 주셨으며, 3. 베드로를 물속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드릴 때, 주님께서는 “언제” 들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기도는 안 들으시고, 들은 체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즉시”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17-18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할 때, 주님께서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 혹시 더딘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이미 “즉시” 시작하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그 “때”가 이루도록, 그래서 “거둘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천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님께는 하루에 불과합니다.

주님, 제가 천년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불평보다는,

주님. 속히 오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매일 매일을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아보십시오. 우리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렀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천국이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까?

첼리타의 시 “잠 못 이루는 슬픈 밤” 마지막 연입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다시 내 목이 마르다.

내 길은 멀고, 나는 고독하다.

그러나 가깝다.

정말로 가깝다.

내 주님의 나라 가는 그 길.

나는 이 시가, 특히 이 부분이 정말 좋습니다. 그때 내게 이 시를 처음 낭송할 때가 2008년이었습니다.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8월에 가면 만날 수 있겠지요. 이 시를 다시 암송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다시 내 목이 마르다. 내 길은 멀고, 나는 고독하다.

이렇게 이 깊은 곳에서, 그 고독 속에 부르짖는 그 소리를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응답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즉시!

그래서 첼리타는 곧바로 이렇게 응답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가깝다. 정말로 가깝다. 내 주님의 나라 가는 그 길!

성도 여러분. 지금 지루하십니까? 고통의 세월이 길고 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지나갈 것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돌아보십시오. 그 지난 날의 고통, 앞이 보이지 않던 고통의 시간, 밤새 부르짖던 그 날들이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바람 앞에 먼지처럼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보잘 것 없고, 의미없이, 허무하게 살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른 풀 같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시편 143:6

이런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며 내신 응답은 무엇입니까? 어디어디로 가 보라! 이런 것 한번 해 보라. 어디 전화를 걸어보라.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나다!

에고 에이미. 주님께서 당신을 제시하셨습니다. 즉시 회피하신 것이 아니라, 즉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즉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고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것. 이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온갖 부정과 불의, 불신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품고 내려오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 어둠의 세상, 불신과 불평의 세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다 구원 받습니다. 육신의 질병이 낫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먹을 것을 얻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친히 듣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불신과 고독 속에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짐을 다 털어내 버리게 하시고, 모든 고통을 씻듯이 버리게 하시고, 죽음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바로 그 음성, “나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주님 찾아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영광 중에 계신 주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며 우리 구주 모시어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말씀만 주시고 마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나는 전화 한통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나는 선물을 보내면 된다고 말하거나, 나는 무슨 성의표시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내게 찾아오고, 와서 얼굴 보면서 말하고, 그리고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좋은 어머니는 자녀가 필요할 때 함께 있습니다.

섬집아기라는 동요는 좋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다 못 딴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기를 달려갑니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홀로 두고 일 하러 나갔겠지요. 그러나 바람결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느낀 엄마는 다 못 채운 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모랫길을 달려갑니다. 모랫길을 달려가는 모정이 이 동요에 들어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어른들의 과거를 추적해 보면, 이처럼 필요할 때 어머니 아버지의 부재를 고통스럽게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혼자 방 구석에서 울다가 지쳐 잠드는 아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날이 계속되면 아기의 마음 속에 분노와 고통, 슬픔과 고독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의 성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좋은 남편은 아내와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선물로 부재를 변명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부부는 언제 어디서나 동행합니다.

어떤 부부가 위기입니까?

당신은 내가 필요로할 때 없었다.

이건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입니다. 그러면 “치유”할 길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부재의 고통은 끊임없는 동행의 노력으로써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항상 함께 있는 삶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상한 마음의 치유는 의사가 하지 못합니다. 처방전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동행일 뿐입니다. 그것도 즉시!

내게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쩔 수 없이 절망적이고, 당연하게도 좌절이며, 운명적으로 파괴적인 내 인생에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즉각 찾아오셔서, “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내 손을 잡으시고, 내 가슴에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나다! 네가 핍박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여기던, 나다!

세상의 인기에 영합하고, 떠날 줄 모르던 내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보고도 모른체 하던 내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죽어가는 심령들을 오히려 안일하게 대처하던 대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 받은 새로운 인간,

나를 드러내어, 내 속에 계신 주님을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지금 고통스러운 시간, 이 기다림의 목마른 시간은, 오히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그 시간에 비하면 짧고도 짧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주님의 기다리심은 영원이었습니다. 그분의 영원으로써 우리의 기다림을 순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도록 오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기다릴 때, 주님께서 달려오십니다. 가시밭길 헤치고, 광야를 달리며, 물 위를 걸어서, 지금 즉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달려오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을 모셔들일 수 있는 믿음,

겨자씨 같은 그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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