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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주일설교 #어머니 믿음 #마태 15:21-39

  • 작성자 : pastor
  • 조회 : 6,284
  • 14-07-12 11:21

2014713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어머니 믿음

마태복음 15:21-39

가나안 여자와 딸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치유하심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사천 명 먹이심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마태복음에 사용된 늘어놓음(Juxtaposition)을 근거로 상황을 설정합니다.

21-28절은 어떤 이방인 어머니가 딸을 위하여 예수님께 치유를 간구하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어머니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29-31절은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와 치유 받는 장면입니다.

다리 저는 사람

장애인

맹인

말 못하는 사람

기타 여럿

보세요. 이들이 직접 주님께 온 것이 아닙니다. “큰 무리가이들을 주님께 데려와 예수님의 발 앞에 앉혔습니다. 누구일까요? 큰 무리? 앞선 에피소드(21-28)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자면,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머니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병자를 데리고 주님께 와서 주님의 발 앞에 앉게 했다는 그 행위를 보면, 분명 큰 무리어머니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3-16입니다.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여기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모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리치는 제자들을 거역하여 끝내 주님 앞에 이끈 것도 틀림없이 어머니들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사천 명 먹이시는 사건(32-38)에서도 그 불쌍함은 어머니가 자식들을 품에 안은 모습에서 극대화 될 것입니다.

14장 마지막 에피소드로 거슬러 올라가면 게네사렛에서 모든 병든 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모티브(motiff)는 분명히 혈루병 걸린 여인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9:20-22를 참고하십시오. 여자가 치유를 위해 주님께 조심스럽게, 그러나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다가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14장에서 15장에 이르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믿음이라는 중요한 모티브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모티브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자기의 몸에 자식을 아홉 달 품었다가 고통 중에 낳아, 눈물어린 기도로 기르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과 자식의 생명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자식 사랑이 부족합니까? 흔히 어머니 사랑은 뜨겁지만 아버지 사랑이 차갑다고 하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어머니와 아버지를 하나로 묶어 어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구별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차라리 억지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유다의 변명”(창세기 44:16-34)에서 읽습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창세기 44:30-31

자식을 위한 사랑은 무엇으로 확증됩니까?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유산으로 상속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이삭의 믿음이 야곱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야곱의 믿음이 유다와 요셉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참고. 출애굽기 3)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믿음의 유산을 상속하는 믿음의 조상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어머니의 믿음이 자녀에게 상속될 수 있다는 사실고, 상속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믿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보편적으로 자네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녀에게 생명을 주고 하나님께 그 복을 비는 법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어머니가 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가난하다고, 자식들을 끌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못된 여자도 있습니다. “나 살고 싶어!” 부르짖는 자녀들의 입을 막습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식들을 무시합니다. 마땅한 양육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어머니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여자들이 어떤 어머니로 주님 앞에 서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모든 어머니들은 주님께 나가기 위해서 도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자녀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모들이 마땅히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 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말씀으로 양육하는데도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경우, 그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잘 알고 말씀에 순종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양육하고, 자녀들은 말씀을 따라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선 어머니를 보십시오. 자기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을 일치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창세기에 나타난 아버지를 보십시오. 야곱은 벤야민의 생명과 자기생명을 일치시켰습니다.바로 이 점에서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말씀을 따라서 부모에게 공경을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 나온 어머니는 그의 믿음을 누가 주신 것입니까? 스스로 얻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똑같습니다. 죄인입니다. 훌륭하다는 어머니나 못된 어머니나 다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에 대해서 그들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마땅한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그 헌신은 그들이 칭찬받아야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자식도 효도한다면, 그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께 나온 모든 사람들이 치료받고 배고픈 가운데 먹을 것을 해결하고 주님께 아름다운 은혜를 받게 된 모든 것들을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 즉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를 공경합니다. 배고픈 자가 배불리 먹고, 모든 병든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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