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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050
  • 13-10-05 12:51

1996년 초,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에 두 차례 칼럼을 썼습니다. 성경공부 방법론을 말한 것입니다. 들어가면서 제기한 문제는 창세기 4장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왜 가인은 아벨을 죽였을까? 아예 예배를 무시한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어쨌건 그는 예배를 드렸고 자기의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동생 살해의 동기가 된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석할까요? 그런 질투가 있다는 건 그가 적어도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인데, 영적인 질투도 살인의 동기가 될까요? 아무리 읽어도 창세기 4장에서는 그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상상력을 키워야 할까요? 예를 들면 그가 드린 곡식이 합당한 예물이 아니라거나, 곡식 중에서 상한 것만 골라 드렸다는?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이, 곡식도 '소제'로 하나님께 합당하며, 그가 상한 곡식을 드렸다는 말씀이 없으므로 이 또한 억측에 불과합니다.


그 칼럼에서 내가 대답하면서 이끌어간 것은 성경공부의 한 방법으로서 성경 내 성경해석이었습니다. 구약 안에는 찾을 수 없고, 신약으로 들어가 히브리서, 요한1, 그리고 유다서에 각각 가인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창세기 4장 공부는 당연히 이상의 신약 세 권까지 연결해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안에서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질문-응답의 흐름을 읽어내면서 우리는 아직도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책을 읽는 나 자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성경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 관계됨을 어떻게 알며 성경읽기 생활을 통해 어떻게 그 관계를 즐길 수 있을까요? 이 새로운 질문이 1996년 이후 오늘에 이르러 하나의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 지금 집필 중인 <성경으로 성경읽기>입니다.


2012년 봄에 쿰란출판사를 통해 낸 책 에서 나는 성경읽기를 내가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C. S. 루이스(Lewis)나니아 이야기에서 아이들이 옷장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데 착안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그 이전부터 나에게는 성경책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2005년 내 어머니가 사경을 헤멜 때 어머니의 성경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어머니의 성경책 행간에 기록된 브니엘이라...는 손글씨가 어머니가 얍복강가에 선 모습을 연상시켰습니다) 조금 더 소급해 올라가면 2002년부터 시작한 콜롬비아 선교를 통해 생생한 느낌으로 온 것입니다. , 내가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내가 야곱을 만나고, 요셉과 어깨동무하면서 애굽 사막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나올 때 혼자가 아니라 다니엘이나 바울과 동행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사역자, 목회자, 선교사를 만나고, 그들과 같은 동역자를 찾아 구하게 되는 것이며, 그들처럼 핍박에도 이기는 영적 비결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드나드는 생활, 이것이 다이내믹하고 생생한 성경읽기요 성경공부입니다.


물론 여기는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옛날 38선을 넘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그 길을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로 부르심 받고, 성경을 오랫동안 배운 이로서 독자들의 가이드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이 귀중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기도로 응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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