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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abandonment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419
  • 13-06-12 12:13

유기 abandonment


연세대 신학과에서 1980년대 말까지 구약학을 강의했던 김찬국 교수님은 온화한 미소가 일품이었다. 그가 강단에 서면 학생들은 긴장을 풀었다. 그가 유신정권에 항거하여 투옥되고 민청학련 사건 배후조종혐의로 기소되어 형을 살고 나와 교수직을 잃었을 때 다들 놀랐다. 그런 부드러움 속에 뼛조각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고.


언젠가 그의 설교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강단에 섰는데 교인들이 모두 돌아앉아서, 등을 보고 설교해야 했다고. 대중연설가가 강단에서 긴장하고 떠는 것은 유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높은 데 올라섰는데 모두 주목해 주지 않는다면 '집단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그건 겁나는 일이다. 세상에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인간은 역사에 아무도 없다.


어린 아이의 심리를 연구해 보면, 그가 부모에게서나 형제에게서 유기당한 경험이 극단적 영향을 미친다. 어른이 되어서도, 심지어 죽을 때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유기를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약속을 낸다. 공부를 잘 하겠다, 심부름을 잘하겠다, 말을 잘 듣겠다, 등등. 그 처절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도 설치며 악전고투하지만 실제로 유기가 현실로 나타날 때 그 아이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깊이 입고 만다.


토니는 중국인 형제다. UCLA 경제학과를 거의 4.0으로 졸업한 수재다. 그가 자기 블로그에 abandonment라는 제목의 글을 오늘 올렸다.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과 유기의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썼다. 나는 적어도 10년 전부터 그를 알고 있다. 내 버클리 영어성경공부에 5년 넘게 매주 참석했다. 그가 중증 우울증에 시달려 심각한 병원치료도 받았고, 지금도 테라피스트를 만나는데 (그의 블로그에 적은 사실로 미루어 이제는 숨길 일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가 유년시절 겪은 유기를 그림처럼 기억한다. 그의 말로, 그의 글로, 그의 부모의 고백으로, 나는 그와 그의 유기경험에 대하여 모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 곁 아주 가까운 곳에 늘 있어왔다. 요새도 이메일로 블로그로 찾아와 나누는 커피로.


나는 토니의 그 글에 짧게 댓글을 올렸다. 아바 아버지로부터 유기 당한 33세의 젊은이를 생각하라고. 그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나무 위에서 외쳤다. 예수님이시다. 아들을 유기하신 분을 생각하라. 그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무런 방비책 없이 하늘 고향에서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다. 갓난 아기 모습으로! 아기가 모든 고난을 다 겪을 동안 아버지는 몇 번 하늘에서 천둥 같은 소리를 내려보냈다. 사람들은 그 소리 이상으로 어떤 보호를 깨닫지 못했다. 하늘 아버지께서 천사도 보내시고 성령님도 파송하신 것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예수님의 유기경험. 이 세상의 모든 유기 두려움을 이길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 만나기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만 유기당하신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던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으셨다. 들판을 따르고 강을 건너 바다까지 건너 따라붙었던 무리들이 순식간에 폭도들로 변한 경험이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셨던 그 새벽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가장은 유기의 두려움 속에 떤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엄마만 찾는다.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바라는 것은 점점 마음이 아니라 물리적 수단 뿐이다. 나이 들어 늙어갈수록 그 수단확보에 어려움이 깊어간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더 깊은 고독의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목회는 두려움이다. 교인들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생각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목회할 수 없는 것이 목회현실이다. 그런데 생각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주님께서 선택하신 십자가! 목회자가 유기를 선택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그가 부르심 받은 본래 사명임을 깨닫는다면 상황은 아주 달라져 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은 '이미' 모체로부터 유기를 경험하고 난다. 그래서 울부짖어 그 첫 목소리를 내는가! 묻는다: 유기, 그것은 슬픔인가, 기쁨인가? 스스로 유기를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을 기쁨이라고 생각하라. 사실이니까. 유기는 선택하는 그 순간에 기쁨으로 그 본성을 바꾸는 몇 안 되는 중요한 가치다. 다른 하나는 물론 '사랑'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동시에 고독이 물밀듯 찾아오는 것처럼, 유기를 선택하는 동시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안에서 흘러 넘칠 것이다.


유기를 선택함. 이 무슨 뜻인가? 스스로 광야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광야는 사막이다. 온 세상이 유기한 공간이다. 온 세상이 잊어버린 망각의 자리다. 거기에 자기 발을 들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전에 유대 광야로 나가셨다. 사십일을 거기서 지내셨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부른다. 언어유희일지 모르지만, 미드바르는 "민"과 "다바르"가 결합한 형태다. 민은 "from"이다. 다바르는 "Word"다. 즉 "말씀으로부터!"다. 광야에 유기된 경험은 말씀 앞에 서는 경험과 대단히 흡사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주님을 만나뵙는 것과 당신 스스로 광야 길을 선택하여 거기서 하늘 아버지의 음성 외에 기다리지 않는 경험은 어쩌면 일치한다.


유기를 선택함. 이 세상에 살면서 유기를 선택하는 길은 무엇인가?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가는 것이다. 교회는 유기된 사람의 모임이다. 십자가 하나만 바라보고 모이는 사람들이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은 유기되셨다. 세상에서 쫓겨나 피란처인 교회로 몰려든 성도는 이미 유기된 것이다. 유기. 유기. 유기. abandonment.


유기를 선택하여 예배를 드린다. 예배드리는 내가 하늘에 올라감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림이다. 그분께서 다시 하늘에서 오시는 날, 나는 이 땅에서 예배드리는 유기경험 중에 그분을 뵐 것이다. 한때 유기의 고통 중에 부르짖으셨던 그분, 이제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유기를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영생의 약속을 주심으로써,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 바라보는 당신은 유기의 두려움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이 세상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유기를 겪은 아이가 자란다. 이 세상은 형제로부터 따돌림 받은 아이가 자란다. 이 세상은 학교 그늘진 구석에서 무서운 고독과 함께 눈물을 삼키는 아이들이 자란다. 이 세상은 사회와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쫓겨난 유랑자들이, 탈북자들이, 홈리스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분의 아들유기경험과 그분 아들의 자기유기경험을 성경책에서 읽으며 이 세상 모든 상처 행인들이 예배드리는 성전이다.


교회 목사로서 누가 내 설교를 들으러 올 것인가? 생각할 때마다 이제는 웃음이 난다. 유기된 사람이 올 것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 결국 교회로 올 것이다. 마지막 생각나서 오는 교회. 여기는 사막과도 같아서 한번 발을 디디면 헤어날 수 없는 고독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 그분의 말씀이다. 말씀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 사막이라면, 사막에서 듣는 것은 그분의 음성일 수밖에 없다.


내 권면이다. 유기를 선택하라. 쫓기듯이 어쩔 수 없어서 달리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돌아서서 유기를 선택하라. 지금은 당신이 돌아설 때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할 때다. 나는 스스로 유기를 선택한다. 나는 세상의 내게 떠맡기는 유기를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 나는 가정의 유기를 선택하고, 나는 내가 사랑한 사람의 유기를 선택한다. 그들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버린다. 그리고 돌아선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제 내가 만나뵙는 분은 이 분이시다. 이 세상에 더 이상 고독할 수 없는 그분. 가장 큰 상처로 신음하면서 내가 손을 내미신 나의 주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음성은 그분께서 친히 고독을 선택하셨듯이 우리가 스스로 고독하기를 결정하고, 그분 앞으로 오라는, 그분의 품에 안기라는 궁극적 초청이다. 아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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