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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주일예배 "성전열심"(요한 2:12-22)

  • 작성자 : pastor
  • 조회 : 5,111
  • 13-02-11 17:00

2013210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요한복음 2:12-22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오늘 말씀은 유월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이 더럽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예배 이외의 일로 모여 있는 사람들과 동물 등을 내어 쫓아버리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당신의 에 대한 특별한 표징을 보이신 이후 첫 번째 행하신 일입니다. 이후 성전정화 사건은 한 차례 더 일어나는데, 호산나 외침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전정화는 예수님의 공생애 처음과 나중을 형성합니다.

성전정화 사건은 하누카, 수전절을 상기시킵니다.

마카비 형제들이 주도한 성전정화 사건은 외경 마카비서에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한없이 용서하신 예수님께서 왜 오늘은 이처럼 화를 내셨을까요?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셨을까요?

무언가에 의해 삼켜져 버리신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예수님을 삼킨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기록한 시편에 이미 예언된내용입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시편 69:9

표제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노래입니다. 여기서 소산님은 백합화 곡조입니다. 이것은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곡조입니다. 성전을 생각하면 기쁘고 즐겁지만, 성전을 더럽힌 무리를 생각하면 슬픈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두 가지 중요한 절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유월절과 수전절(하누카)입니다.

유월절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수전절(하누카)

그리스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을 더럽혔는데, 유다 마카비와 그 형제들이 독립운동을 벌여 성전을 회복시킨 사건을 기념합니다. 대개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이르는 8일간 수전절을 지킵니다.

성전을 정화하는데, 등불 하나를 켤 수 있는 기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등불이 8일간이나 켜져 있어서 성전을 정화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촛대를 8가지를 가진 촛대를 사용하여 촛불을 켭니다. 가운데나 한쪽에 아홉 번째 등불을 켭니다. 이것은 섬김의 뜻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마태복음 24:15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예수님의 이 말씀은 167 BC의 성전을 더럽힌 사건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상을 놓고 돼지고기로 제사를 드린 데서 비롯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금지시켰습니다.

이에 마카비와 그 형제들이 예루살렘을 습격하여 성전을 회복시키고, 나라를 세웠는데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100년 동안 유지하다가 끝내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도 수전절과 맥락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12장이 수전절의 배경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심을 받은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붙들린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처럼 예배를 사랑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다윗은 스스로가 예배를 사랑하여 이 시편 69편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후에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는 마음으로도 쓴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손을 통하여 이제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교회는 진실로 깨끗하고 정직합니까?

예배 이외의 어떤 요소도 배격하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전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요소들이 들어오고,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인간들로 가득합니까?

어떤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집 없는 사람이 예배드리러 교회에 갔다가 문밖에서 쫓겨났습니다. 계단에 쭈그려 앉아 슬퍼하고 있었는데 어떤 비슷한 남루한 차림의 젊은이가 곁에 앉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앉습니까?” 그렇게 물었는데, 젊은이의 대답은, “내가 예수다. 나도 거절당했다.”

이 예화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맞는 부분은 많은 교회가 예수님 없이 예배드린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들의 자존심, 명예, 경제와 정치적 이득관계 등이 예배의 중요요소와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런 예배에 주님께서 오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주님을 필요로 할 리가 없습니다.

틀린 부분은,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에서 쫓겨나는 방법보다는 쫓아내시는 방법을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찾아, 명예와 권력을 찾아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연락하는 자리를 좋아하는 무리들은 알고 보면 주님께로부터 쫓겨난 자들입니다. 그들의 거짓된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성전에 합당한 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성전에서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부패했습니다. 종교적 지위를 통해 세상의 권력과 금력을 탐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서기관들은 세상의 세력과 야합하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가르쳐야 할 바리새인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이 성전의 세력들과 결탁했고, 성전에서 장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각각 자기의 집에서 가장 귀한 동물이나 식물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들은 성전에 와서 제물을 사야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지정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바꿀 수 있었고, 그 바꾼 돈으로야 제물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먼데서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들에게서 폭리를 취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이 기도드리며 제사를 드려서 죄 사함 받는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 장사아치들이 돈을 버는 상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노끈으로 회초리를 만드시고, 그것으로 모두 내쫓아 버리셨습니다.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던 예수님께서 그들은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용납하신다면 성전이 계속 더럽혀져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월절과 수전절 사이에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성전 안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 회개하면서 옷을 찢었습니다. 성전에 각종 더러운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다 치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만 아니라,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는 개혁의 범위를 유다의 온 지역에 확대했습니다. 나아가 북이스라엘의 전지역을 정화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시야는 개혁으로써 남북통일을 성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열시키신 이후 약 300년 만에 발생한 통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부정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나라가 분열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함으로써 나라가 통일되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아들들과 손자가 통치하는 유다는 다시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켜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바벨론에 끌려가게 하셨고,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율법책에 예고하신 바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를 사용하셔서 바벨론을 물리치시고, 유대인들을 포수지에서 돌이켜 다시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주님의 종으로서 사역했습니다.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와서 신앙개혁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스라엘이 부패하였고, 말라기 선지자는 부정한 제물을 가져오는 것과,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를 지적했습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에게 패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리스의 안티오커스 에페파네스 4세가 주전 167년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는데, 3년 후 곧 165년에 유다 마카비 형제들이 중심으로 한 마카비 혁명이 일어나 성전을 정화한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일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하실 사건, 영적인 유월절에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에 지탄을 받는 것은,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거룩해져야 합니다.

교회건물을 거대하게 짓는다고 교회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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