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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0 성령충만(요한 1:29-34)

  • 작성자 : pastor
  • 조회 : 6,446
  • 13-01-19 20:17

2013120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성령충만

요한복음 1:29-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생전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뵙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정확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예수님을 알았을까요? 뿐만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을까요?

정답은 성령충만입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충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온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세상 모든 인간들 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언어활동에 우선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아멘!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례를 베푸는 것은 이제 오실 그분을 이스라엘에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 그렇게들 물을 때 나보다 더 크신 이가 오신다고 선포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성령님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그래서 세례요한이 보니, 예수님 위에 성령님께서 내려 머물러 계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세례요한은 바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하였습니다.

,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성령님에 충만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성령충만!

이것은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나는 이것 말고 다른 어떤 것을 가지라고 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아멘!

성령충만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성령충만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체적으로 세례요한처럼 됩니다.

세례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먹는 것을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은, 주시는대로 먹었다는 말입니다.

입는 것을 가죽옷을 입었다는 것은, 주시는대로 입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였고, “하나님 나라를 외쳤습니다.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면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자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더 나은 자가 없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을 알고 싶으시면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린아이가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 비밀은 이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충만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세례요한은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면, 천국에서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세례요한보다 큰 자입니다.

! 그렇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든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우리가 성령충만한 것은 같은 것입니다.

누구도 성령충만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것입니다.

내 욕심과 내 판단과 내 감정을 버리고, 전적으로 오로지 단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길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까?

아이한테 물어보세요. “아빠가 못하는 거 있어, 없어?” 아이는 분명히 대답합니다: “없어!”

아이에게 아버지는 전능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아이는 아버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지 않으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그것이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반대는 자기집착, 자기정욕, 육신의 자랑입니다. 이런 사람이 일을 내는 것입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그는 성령충만하지 않고 자기의 분노에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처럼 순진하고, 그처럼 온전하고, 그처럼 거룩한 사람 동생 아벨을!

사람이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그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을 모독한 죄는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왜요?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선함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입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BE STILL!

출애굽기 14장에서 모세는 부르짖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앞은 홍해바다요 뒤는 애굽군대입니다.

그 경우 인생은 절망입니다. 사면초가입니다.

그러나 이것 보세요!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입니다.

강한 척하지만, 실제로 가장 약한 사람입니다.

힘을 과시합니다. 돈 자랑, 권력 자랑, 나이 자랑, 경험 자랑....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내 드러내고 마는 것은 그의 약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당신께서 인자가....”라고 말씀하실 때, 그 뜻은 Son of Man입니다.

철저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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