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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주일설교, 지혜와 미련 3-선과 악

  • 작성자 : pastor
  • 조회 : 7,786
  • 12-11-25 05:53

20121125

금문교회 주일예배

조은석 목사

지혜와 미련 3: 선과 악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617-2025-2716장 안에서 독특한 위치입니다. 우선 16:1-16까지는 문안인사입니다. 그리고 16:21-23/24도 문안인사입니다. 16:1-16은 편지를 들고 가는 사람 뵈뵈와, 로마 현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안입니다. 27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루포의 어머니라는 무명, 그러나 구체적인 개인이 지시된 여인까지 포함해서입니다. 그리고 16:21-23/24는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 현지에 있는 자들에 대한 인사입니다.

이렇게 두 덩어리의 인사 사이에 권면과 축복의 메시지 16:17-2016:25-27이 들어있습니다.

그 두 덩어리는 로마서 전체를 총정리 하고 있습니다.

16:17-20을 나는 지혜와 미련이라는 주제로 정리했습니다. 실제로 사도바울이 16:17-20절에서 이 두 가지 대칭되는 주제로써 로마서를 통해서 로마교회에 전달하려했던 목적을 짧게, 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입니다. 교회를 흔드는 어떤 세력도 용인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흔드는데 성공했던 사탄이 이제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주제가 강조되었습니다: 1. 사탄의 앞잡이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라, 2. 말씀에 순종하라, 3. 선을 행하는 지혜를 품고, 악의 지혜를 버리라.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발로 밟으신 것처럼, 성도들도 속히 그 발아래 밟을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설교는 3-4를 아울러 전합니다.

16:25-27은 마지막 인사이면서 동시에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대단히 놀랍게도 성탄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구약에 말씀으로 예고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영세 전부터 감취어졌던 분이셨는데, 이제는 나타나신바 되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역사 속에 들어오심으로써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 하도록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의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25-27절을 12월 한 달 동안 설교로 전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1617-20지혜와 미련시리즈의 세 번째 부분(위의 3-4)으로서, 결론입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두 며느리 이야기입니다.

큰 며느리는 시아버지 국에 고기를 듬뿍 넣어드렸습니다. 그걸 눈치 챈 시아버지는 기도 시간에 국을 바꾸었습니다. 눈치가 빠른 큰 며느리는 기도가 끝나기 전에 그것을 얼른 바꾸었습니다. 작은 며느리는 달랐습니다. 고기를 자녀들에게만 듬뿍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큰 며느리의 자녀들은 보고배운 대로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며느리의 자녀들은 자기들밖에 몰랐습니다. 부모에게는 멀건 국물만 있는 국을 주었습니다.

본문은 확실히 창세기 3, 실낙원의 본문이 깔려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창세기 3장의 배경을 두고 지금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은 창세기 3장에 대한 새로운 상황에서 쓰는 새로운 주석입니다. 창세기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로마서 안에는 창세기에 깔려있는 주제들, 예를 들면, 15:6의 믿음으로 의롭다하심 얻음 같은 보석 같은 주제를 포함한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7-20절은 3장의 타락 부분에 집중합니다.)

다음은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권면하는 사탄의 말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것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 하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뱀은 그 정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런 뱀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 .

창세기 3:15

뱀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습니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로써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능력으로써 사망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뱀의 말을 듣다가는 뱀과 함께 망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죽게 되었고, 자녀들에게 원죄의 고통을 안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런데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합니다.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일에 지혜로워야 합니다. 악한 일에는 미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뱀과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을 떠나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사람이 참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는 데는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니 아니하리라.

잠언 22:6

자녀교육의 항상 문제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형제의 우애가 있으며, 받는 것보다는 베푸는 데 더 잘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이 바른 교육의 내용입니다.

지혜입니다.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흔히 지식지혜는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지식이 많으나 지혜가 없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식은 얼마 없으나 지혜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지혜도 지식처럼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까? 지식처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잠언 23:23

지혜는 일단 얻었다면 내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와 지혜와 훈계, 그리고 명철은 사기만 하지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긁어모으기만 하지 쓸 줄을 모릅니다. 돈이 아니라 지혜를 그래야 합니다.

아니, 지혜는 베푼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베풀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혜 없는 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든 어떤 일군 이야기입니다. 밭일 하다가 땅에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샀습니다. 보물을 얻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그 보물을 어떻게 했을까요? 비싼 값에 팔아서 큰 돈을 벌었을까요? 그 많은 돈으로 무얼 했을까요? 큰 집을 지었을까요?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천국비유입니다. 천국을 일단 소유한 사람은 다시 그 천국을 팔지 않습니다. 영원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입니다.

남에게 가르치거나 베푼다고 해서 지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얻은 지혜를 버릴 때는 미련으로써 그 지혜를 밀어날 때뿐입니다. 물병에 물이 가득하면, 좋습니다. 그 물을 다 버리면 공기로 다 채워집니다. 이처럼, 지혜가 다 사라지면 미련이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받아들인 지혜는 결코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지혜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르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실입니다. 선한 데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데까지 지혜롭지 말라. 악한 데는 미련하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것은 무엇이며 악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로마서에서 그 같은 구분을 분명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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