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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홍성혁 목사 설교#누가22:35-46#습관기도

  • 작성자 : pastor
  • 조회 : 1,583
  • 19-12-07 19:20

습관을 따라 기도하라!

날짜: 2019128(금문장로교회 주일설교)

본문: 22:35-46

홍성혁 목사 (서울신학대학 교수)

1. 우리의 일상은 불확실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전혀 뜻밖에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게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신앙적으로 좌충우돌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메아리 없는 신앙 현실로 인하여 지치는 바람에 실망의 늪에 빠지거나 막연한 낙관주의적 신앙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도외시 한 채 손에 잡히는 인간적인 방법을 구하기도 합니다. 구약 시대의 많은 사역자들, 곧 예언자와 제사장도 그러했습니다(*영광의 신학). 요동치는 세상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불행에도 손 놓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 자신들의 일상에서 느껴지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의심은 그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 콜카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197912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녀의 일생은 빈민과 병자를 위한 섬김과 돌봄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200793일자 기사에서 테레사 수녀가 1948년부터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자신에게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하려 해도 혀가 움직이지 않아 말을 할 수 없다고 자신의 고해 신부에게 고백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으로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기도로 일관한 수녀가 그런 고백을 했으리라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 무용론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수십 년을 기도한 성녀(聖女)도 기도 응답의 문제로 씨름하다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기까지 하는 마당에,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들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생생하게 느껴지십니까? 오늘 본문을 따라가며 일상의 롤러코스트 속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의 현존과 씨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대적자들의 음모 속에 십자가와 죽음을 향해 가시는 과정에서 제자들이 갖추어야 될 자질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35-38절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운데 제자들이 경험해온 상황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말합니다. 35절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예수님을 따르면서 제자들이 겪은 경험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돈을 보관하는 전대와 물건을 보관하는 배낭도 없고 발을 보호하기 위한 신발이 없었을 때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녔을 때 돈과 물건과 건강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발을 밟는 곳마다 믿음의 식구들과 다른 사람들이 이들에게 먹을 것과 쓸 것과 신을 것을 주고 보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큰 문제없이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러나 앞으로 이와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36-37,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돈 가방과 물건 가방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고까지 말합니다. 겉옷은 밤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생명과 같은 도구입니다. 그런 도구를 팔아 검을 사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검은 생명을 빼앗는 도구인데 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49-51절에서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칼로 쳐 떨어뜨린 것을 보시고 더 이상 칼을 사용하지 말고 참으라고 만류하며 오히려 그 종의 귀를 치료해줍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않고 생명을 살림으로써 검이 필요 없음을 말해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38절에서 제자들이 보소서 여기 검이 둘 있나이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검을 문자적인 의미로 의도하신 게 아닙니다. 비유적인 의미로 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책망의 뜻을 내비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검을 비롯하여 돈과 물건 가방을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35절의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신 겁니다. 그 상황은 37절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 5312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세상의 구원을 담당하실 고난의 종이신 예수께서 불법자로 간주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불법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돈 가방과 물건 가방과 신발 없이 보낼 때 랍비로 대접받던 상황과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범법자로 몰면서 예수와 제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대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제자들이 돈과 물건 가방과 검을 챙겨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물건들은 비유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사방에 대적이 포진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6:11-18,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예수님께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영적인 무장이 돼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4. 변화된 상황, 곧 적대적이며 두려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준비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최악의 적대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줍니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는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 가셨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636절과 마가복음 1432절에서는 겟네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41절에도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 가신 것은 기도하러 가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하시되 습관을 따라가셨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상황과 무관하게 늘 기도하는 게 습관이 돼 있었던 겁니다. 상황이 좋을 때도 그랬지만, 좋지 않을 때도 초지일관 기도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곧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빠져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넋이 빠진 상태가 아니라, 늘 그랬듯이 기도하셨습니다. 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두려움보다 기도 습관의 힘이 더 컸던 겁니다.

5.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자기 비움과 자기 내려놓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에도스)이란 말은 전통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앞에서는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이 되면 자기 내세움이 아닌 자기 비움이 가능해집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자기를 내세울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의 꿈과 벨사살 왕의 징조를 예견하고 맞추었습니다. 다리오 왕(주전 522-486) 때는 세 사람의 고관 중의 한 사람이 될 정도로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시기한 다른 고관들이 다니엘의 허물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허물을 찾을 게 없자 그들은 나라의 법을 통하여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의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법령을 공포했습니다(6:7). 이 때 다니엘은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평소에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법은 딱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부분 법령에 규정된 30일 정도 기도를 중단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떻게 했나요?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법을 어겼을 때 닥쳐올 징벌이 두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에 하던 대로”, 곧 습관을 따라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자기 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기 목숨을 내려놓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때까지 해오던 습관적인 기도 훈련이 자기 비움자기 내려놓음을 가능하게 했던 겁니다.

6. 예수님께서 습관대로 기도할 장소로 가서 따라온 제자들과 따로 떨어져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먼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고 명령합니다. 거의 똑같은 명령이 본문의 마지막 절인 46절에서 재차 나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40절의 유혹이나 46절의 시험은 모두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peirasmo,j,)입니다. ‘유혹시험자기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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