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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무엇이 보이느냐#마가8:22-26

  • 작성자 : pastor
  • 조회 : 975
  • 20-07-15 21:29

2020719

금문교회 주일예배 Golden Gate Presbyterian Church Sunday Worship

조은석 목사 Rev. Eun Suk Cho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마가복음 Mark 8:22-26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And they came to Bethsaida. And some people brought to him a blind man and begged him to touch him.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And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 of the village. And when he had spit on his eyes and laid his hands on him, he asked him, “Do you see anything?”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하거늘

And he looked up. And said, “I seep people. But they look like trees, walking.”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Then Jesus laid his hands on his eyes again. And He saw everything clearly.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하시니라.

And he sent him to his home, saying, “Do not even enter the village.”

오늘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 보이느냐?”(Do you see anything?)입니다. 주님께서 맹인을 찾아가셨습니다. 침을 사용하시고, 안수하시며 치료하실 때, 그 불쌍한 맹인에 대한 관심사랑이 단번에 드러나는 질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찾아오시고 치료하시는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을 떠나셨습니다. 배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 도착하신 곳이 벳새다(Bethsaida) 지역입니다. 갈릴리 바다 동북쪽 해변입니다.

벳새다(Bethsaida)에서 맹인을 고치신 이 사건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마가복음 고유의 사건입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주목하지 않은 이 평범한 일이 오늘 말씀의 본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에서 맹인 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사람들이 데려온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손을 대시고 고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맹인의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일대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시력을 회복시켜주신 이후에 주님께서 그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하셨습니다. 그에게 옛날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설교도 말씀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벳새다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2.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3. 예수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5. 사람들이 보이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고 모든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7. 그를 마을로 돌아가지 말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지난 주 달마누다 지방 때 본문처럼 촛대”(메노라, menorah)구조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하신 질문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8.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벳새다(Bethsaida)는 두 단어가 결합된 복합명사로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beth)과 새다(saida)입니다. 그 뜻이 사냥의 집”(house of hunting) 혹은 어업의 집”(house of hunting)입니다. 역사적으로 벳새다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로, 벳새다는 베드로(Peter)와 안드레(Andrew), 그리고 빌립(Philip)의 고향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Now Philip was from Bethsaida, the city of Andrew and Peter.

요한복음 John 1:44

둘째로, 누가복음Luke 9:10-17에 따르면 오천 명을 먹이신 지역입니다. 마가복음Mark 6:30-44를 직후에 나오는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과 연계해서 읽으면, 오천 명 먹이신 사건은 벳새다 맞은편이었습니다.

두 복음서를 함께 읽으면 벳새다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적어도 가까이 경험한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적 중에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경험한 범위로 가장 큰 것이 오천 명 먹이심입니다. 그 지역이 벳새다입니다.

1. 예수님께서 벳새다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던 달마누다(Dalmanutha) 지방을 떠나셨습니다. 배를 타시고 갈릴리 서쪽 해변에서 동북쪽(North-East)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벳새다 지역입니다.

2.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 사람 맹인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10:46-52에 기록된 바디매오”(Bartimaeus) 같은 이름도 없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이 신앙고백과 함께 간절한 치유요청도 없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And when he heard that it was Jesus of Nazereth, he began to cry out and say, “Jesus,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And may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가복음 Mark 10:47-48

그래도 그에게 좋은 점은, 바디매오(Bartimaeus)와 달리 그에게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었거나, “좋은 이웃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손 대시기를”(to touch him)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중풍병(paralytic) 친구를 침상째 메고 와서 지붕을 뜯었던 그런 사람들과도 달랐습니다. 그 때는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니

An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마가복음 Mark 2:5

그런 극적인 장면”(dramatic scene)도 전혀 연출되지 않은 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들에 피었다가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스러지는 풀꽃”(wild flowers)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벳새다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common; ordinary)한 사람이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주님께서 평범한 이 사람을 대하시고 고치시는 방법이 대단히 특별(special)합니다. 평범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우하시는 예수님의 목회! 우선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 마을 벳새다는 완악하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Then he began to denounce the cities where most of his mighty works had been done, because they did not repent.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But 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e day of judgment for Tyre and Sidon than for you!

마태복음 Matthew 11:20-22

어쩌면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은 마을사람들의 믿음 없는 행태로부터 분리시키시려는 목적이 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메시아/그리스도 비밀의 일환이 분명합니다. 사복음서가 근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특히 마가복음에 따르면 특히 십자가-부활-오순절 등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메시아/그리스도의 정체성에 이를 때까지는 예수님께 대한 불완전한 이해가 퍼져나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빌라도에게 고소한 예수님의 죄목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의 왕아닙니까?

4. 눈에 침을 뱉으시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그를 고치신 방법이 특별합니다. 그의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손을 그에게 대신 것입니다. 치료하실 때 손을 대신다면 주로 환부에 대시므로, 침 뱉으신 그의 눈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침과 손. 이 두 가지를 사용하신 치유사건, 이것은 요한복음 못 듣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을 에바다!” 명령하여 고치셨을 때와(마가복음 7:31-37),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셨던 때(요한복음 9:1-41) 때와 같습니다. 침으로써 치유하신 행위에서 드러난 것은 새 창조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실 때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이제 그 창조주의 모습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다음과 같은 정언이 성립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새 창조입니다.

Healing of Jesus is New Creation.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Do you see anything?

이 질문은 복음서 전체를 통해 유일한 경우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이 치유가 확실한지 여부를 그 당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 능력이 의심되는 순간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치료에 깊은 관심을 보이심입니다. 그가 보지 못할 때도 그가 보지 못함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헬라어를 직역하면:

혹시 무엇을 네가 보느냐?

If anything do you see?

문장에서 단어의 순서가 내용을 결정하는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별한 단어에 강조되는 초점이 잡힐 때입니다. 여기서 그 초점은 무엇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이제 비로소 보게 되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보게 되었는지 그것을 궁금해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번역 보이느냐?” 보다는 네가 보느냐?” 해야 정확한 해석입니다. 이 질문은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인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무엇을 보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시력 회복의 단계를 결정할 것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한다면 그의 시력은 다음 단계까지 거쳐 완전한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바리새인들과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 앞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고, “진리가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시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본다고 하니 문제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blind, you would have no guilt. But now that you say, ‘We see,’ your guild remains.

요한복음 John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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