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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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2024 ThankGiving


김위동 콜롬비아 선교사


감사로 드리는 예배  시편 50: 1-15, 22-23

이번 주일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로 지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행위가 주는 유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Thanksgiving Day의 유래를 잘 아시지요, 영국의 국교 성공회(Church of England)는 국가 통합을 위해 개신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국교의 규례와 교리에 반대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갈망한 청교도들이 1620년 9월 16일 Mayflower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하여 영국의 Plymouth 항구를 떠났습니다. 102명이었고 선원들은 30명이었습니다. 약 두 달 동안 대서양을 항해한 후 1620년 11월 11일 메사추세트주 Cape Cod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5주 동안 배 안에 머물면서 정착지를 찾았고 12월 18일 현재의 Plymouth Rock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첫 겨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102명 중 50여명이 죽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인근 인디언 부족(Wampanoag)의 도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Wampanoag부족은 농작물을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제공했습니다. 일년 후 1621년 청교도들은 Wampanoag를 초청하여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403년째 Thanksgiving Day 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하나님께 감사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에 대해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편지에도 감사의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아주 큰 은사이고, 그 자체로 큰 복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사업이 잘되어 큰 이득을 얻거나, 자녀에게 좋은 일이 있거나, 내가 큰 성과 업적을 얻었을 때 감사합니다.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친구나 이웃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합니다. 친구나 이웃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서나,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에라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각 사람에게 큰 힘이 되고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일상생활에서 큰 유익을 얻습니다. 의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1. 행복 호르몬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도파민과 세로토닉 같은 행복 호르몬이 많이 나와, 기분을 좋게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정신건강을 좋게합니다.

2. 면역력도 높여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면역력을 강화시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입니다. 감기나 기타 질병에 덜 걸리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

3. 감사는 혈압을 낮초고 심장박수를 안정시켜 심혈관 건강을 좋게합니다. 

4. 감사하는 마음은 수면의 질을 향상시킵니다. 감사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더 깊고 편안한 잠을 잔다고 합니다. 

5. 감사하는 마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루티솔의 수치를 낮춥니다. 

이렇게 마음의 평안을 얻고 몸이 건강하면 대인관계도 좋아집니다. 부부 사이, 자녀들과의 사이. 이웃들과의 사이가 좋아지고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감사하라. 먼저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행복하게 살아야 전도도 잘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역경 중에서, 어려움과 힘든 상황 중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할 이유는 어려움과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힘든 환경에 빠져서 염려과 걱정 가운데 있다고 하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소화불량이 생깁니다. 염려와 불안이 많으면 깊은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심하면 우울증이 오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농촌에 살았었는데 도시의 집값이 많이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논밭을 팔아서 도시에다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3년쯤 후엔 팔았던 논밭이 있는 지역이 도시에 편입되면서 땅 값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3년 전에 도시에 집을 사지 않았더라면 재산이 더 많이 늘렀을텐데, 이제와서 되돌릴 수도 없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일로 병을 얻어 건강이 나빠져서 얼마 후 죽고 말았습니다. 그 가정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불행이 이어졌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어떤 기회를 잃었을 때에나, 재물의 손해를 보았을 때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켈러, 그는 일생을 시창각 장애를 가지고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손의 감각을 통해 느끼는 자연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선물이며, 그 선물을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래, 감사해야 좋다는 것을 알아, 그런데 감사가 안돼는걸 어떻해. 억울하고 분한게 잊혀지지 않아, 

  시편을 읽어보면,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시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것은 탄식과 간구하는 시입니다. 거의 두 배로 더 많습니다. 3:1-3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6:6,  7:1, 10:1  기도 4:1, 5:1,8 

  대부분의 탄식시와 간절한 기도는, 그 시작은 어려운 사정에 처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마지막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기대로 마침니다. 31:23-24

  고통을 느끼며 울부짖고 탄식하는 이유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형편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을 것 같은 위기 속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건강상 문제일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인간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또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통은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외부의 영향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나의 입장에서 내 중심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이건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닌데, 이런 일을 겪다니 너무 실망스러운데,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참고 견디는 것도 이제 한계를 느껴, 심지어 하나님께서 언제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 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고통에도 뜻이 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제가 선교사로 콜롬비아에서 사역할 때 하나님께 기도도 많이하고 후원교회에 불평도 많이 했습니다. 선교비 후원이 너무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살기도 힘들었고, 선교사역의 진보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천불 후원, 3년 후 부터는 원 1300불, 집세 교육비 선교비 생활비를 다 지출해야 했다. ….  그런 중에서도 믿음으로 신학교를 시작했다. 월 200불 예산으로. 믿음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콜롬비아 형제들, 신학교를 졸업한 형제들이 믿음으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단기선교팀이 방문했을 때, 저는 자동차가 없었다. 신학생들이 자동차를 가져와 도와주었다. 단기선교팀은 콜롬비아 형제들이 돕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선교비 후원이 부족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가장 감사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나의 기대가 무너지면 실망합니다. 내 힘이 부족하면 좌절합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내가 진 짐이 무거우면 고통을 당합니다. 이럴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라면서 나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웃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 도와줍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은 남보다 저 높아지려고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경쟁력을 키우도록 훈련 받습니다. 학교에서, 직업 현장에서, 심지어 목회 현장에서 까지. 그러면서 늘 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네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합니다. 

  경쟁심이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심하게 경쟁심과 비교의식에 잡혀 사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균형을 맞추는 삶, 적당히 조절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 말은 속 마음은 검게하고, 겉은 희게 보이며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비교의식과 경쟁의식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친구 목사, 서울에서 출석교인 2,000명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교회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도 2,000명 출석, 은퇴할 때도 2,000명 성도. 이 사실은 그동안 담임 목사로서 교회 당회로부터 많은 압력과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는 말입니다. 목회는 70세에 은퇴하는데 그는 65세에 조기 은퇴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제가 만났는데, 은퇴하고 나서 평안한 삶을 살게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비교하고 경쟁하는 삶은 정말 피곤하지 않습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선교사로 일하면서 튼 경험이 있습니다. 선교대회에 참석하면 많은 선교사들이 모이고, 그 중에 모범이 되는 선교사가 선교보고를 하며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박수를 받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너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나는 자랑할 것도 없고, 선교의 열매도 미약하여 스스로 능력 없는 선교사로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럼 선교사 대회에 가면 집회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자기 선교사역을 발표하고 싶어서 경쟁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선교사 대회가 저에게 잔혀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 중심의 생각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가 칭찬을 받아야 되고, 내가 높아져야 되는 내 영광을 추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중심의 관점에서 남을 보니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나의 모습이 하나니 앞에서 큰 죄임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에 필요한 은사를 주셔서 사용하는 일군들임을 인정하고 격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그들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도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여러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의 생명도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 각 사람의 생명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비라 볼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다른 무엇 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시편 50장 8-14, 23절. 우리는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의 믿음이 크다고 생각하지요, 나 자신도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더 인정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 41-44절, 예수님께서 헌금하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은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고, 한 가난한 과부는 렙돈 두개를 넣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관심은 비슷합니다. 부자들을 더 존경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부족한 것이 있어서 필요한 물질을 사람들에게 요구하겠습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믿음이 더 귀한 것입니다. 시 50: 14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한다고 하십니다. 많은 헌신 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누가복음 17: 11-1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한 마을에서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서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여주어라”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대로 가다가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

  

  마지막 여러분에게 줄 팁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볼 수 있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 한국 유튜브, 좌파는 좌파 Youtube만 보고, 우파는 우파 youtube만 본다. 우리는 성경을 봅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눈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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