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의 본이 되라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40
- 25-03-23 07:08
너희 중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가꺼이 하며, 낱은 자들에게는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전서 5:2-4. 갈릴리 해변에서 그 아침에 새사명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 사랑으로 목양 사역자의 부르심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3년이 지난 후 물고기 잡으러 돌아갔던 갈릴리에서 주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셨다. 첫 부르심에 초지일관 응답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나 쓰러진 그를 다시 일으키신 주님께서 두번째 부르신 사람도 복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님을 배반했던가! 윤동주가 손으로 발로 써내려간 “참회록”은 그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때 “그 부끄러운 고백”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믿음을 주신 그분께서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힙 13:1-2).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변찮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우리는 스스로 돌아설 수도, 깨끗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러면 양무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주장하는 자세 대신 영무리의 본이 된다. 주님의 명령이다. 명령.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왜 명령하실까? 스스로 할 수 없으니 명령이다. 모든 율법이 그렇다. 하나님의 창조도 구원도 말씀명령의 산물이다. 우리가 무슨 계획 대신 기도하는 것은 주님 명령을 받들고자 함이다. “양무리의 본이 되라!” 어떻게? 예수님께서 친히 그 본을 보여주셨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 아래 무릎을 꿇으셨다. 신약성경은 모두 그 증언이다. 부르심 받은 주님의 종들은 다 그 증인들이다. 오늘 내가 나 된 것도 그분께서 찾아오셔서 불러주신 까닭이다. 김춘수의 “꽃”은 내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불러주신, 그래서 새롭게 그려진 자화상이다. 오늘 복장은 수건을 허리에 두름이다. 오늘 우리의 자세는 양무리 발 아래 무릎꿇음이다. 오늘 우리의 태도는 겸손이다. 겸손이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