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

성도를 온전하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

수학문제 2 미분 적분


그러면 본래 난해한 수학문제를 어떻게 자기문제로 삼을 것인가. 나는 실존을 성경에서 찾는다. 해서 미적분이 성경읽기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까, 물었다. 인간 죄의 길이다. 에스겔 37장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골짜기로 이끄셨다. 마른 뼈가 쌓여 무더기를 이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나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묘지를 몇 군데 방문했다. 그야말로 뼈만 남기고 다 분해되었다. 살도, 피도. 물론 숨도! 미분이다. 인간 절망은 미분으로 제법 설명한다. 그러면 적분은 어떻게 읽히는가? 에스겔 37 장. 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선 질문명령이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나님 말씀이 내리자 적분이 시작되었다. 미분의 역순이다. 철거덕 철거덕 먼저 낱낱이 흩어졌던 뼈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핏줄도 힘줄도 살도 가죽도 본래 제 자리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사방에 흩어졌던 숨이 돌아왔다. 생령으로 모두들 일어섰다. 하나님의 군대다! 이 사점에서 귀를 때리는 주님의 말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사람 비판은 미분이다. 뼈가 무너져 내린다. 진이 빠져 나간다. 죽음이다. 그러나 이해와 사랑, 품어안기는 적분이다. 새 힘이 솟는다. 미분은 마이너스 에너지. 적분은 플러스 에너지다. 미분은 사람을 시들게 하는 칼날비판이라면, 적분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다. 일으켜 세우는 절대관심이다. 미분을 넘어 적분으로! 하면 무슨 맹장처럼 불필요해 보이는데, 그러면 아예 미분을 무시하면? 잘리버리면? 아니다. 적분은 미분을 토대로 시작한다. 미분 없이 적분 없다. 인간 절망의 자리에 하나님을 뵙는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쳤다. (물론 어떤 죄도 정당화 되지 못한다!) 시내산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의 불꽃 스네를 보았다. 40대 젊은 시절과 달리 그때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 성경에서 나는 다윗, 엘리야, 바울에게서 이런 절망을 읽었다. 하나님께서 적분으로 부르시는 자의 자화상, 그는 인생 미분 끝에 자기를 부정하는 마른 뼈 인생이다. 이 절망은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보라. 적분이다. 죽음의 골짜기를 비로소 벗어난 다윗의 고백: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은혜다! 허나님의 그 한없는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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